꽃꽂이에 푹 빠진 전직 군인 아저씨

남성 플로리스트 황규무씨

등록 2003.11.18 09:42수정 2003.11.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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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소중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때로는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꽃을 찾는다. 행복의 순간을 찾는 사람들 틈에서 황규무(46)씨는 꽃꽂이 하는 남자로 통한다.


멋진 예술 작품으로 탄생되는 꽃꽂이는 보통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이러한 통념을 깨버린 몇 안 되는 남성 플로리스트다. 그의 전직은 꽃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직업군인이다.

"꽃꽂이에 입문한 지 5년째입니다. 그 전에는 직업 군인 생활을 15년 동안 했어요. 퇴역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화원을 연 아내를 돕기 위해 시작했죠"

엄밀히 따져 첫 입문은 20대 초반 시절. 꽃을 집에다 장식해 놓을 정도로 좋아하던 그는 화원에 자주 놀러 다니며 배울 기회를 가졌지만 잠깐이었다. "그때 배우기 시작했으면 꽃에 대해 더 많이 알았을 텐데…"라며 한껏 욕심을 부려보는 그가 본격적으로 꽃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부터다.

꽃 공부를 해오던 그의 아내가 가게를 열었고 처음에는 아내가 주문하는 대로 재료를 사오는 역할을 맡았다. 가게를 여는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10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가게에 매달리며 가사 일과 병행하는 그의 아내를 위해 그는 결심했다. 아내를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끔 꽃 공부를 하기로 말이다.

"물건만 사다줬는데 그 일도 힘들더군요. 뭔가를 알아야지 사다 줄 텐데 어떤 것이 필요하고 뭘 사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니까 답답했어요."


지금까지 모아 온 꽃꽂이 노트는 황규무씨의 재산
지금까지 모아 온 꽃꽂이 노트는 황규무씨의 재산권윤영
그는 화훼협회를 찾아본 후에 꽃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1주일에 한 번 하는 레슨을 5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찾아갔다. 매주 만드는 꽃꽂이를 사진으로 찍어 설명과 함께 적어 놓는 꽃꽂이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껏 모아 온 꽃꽂이 노트를 보고 "이 자체가 내 재산"이라고 말하는 그는 판매도 중요하지만 꽃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배워나가고 있다.

미니스케치 노트도 늘 그의 곁에 있다. 연필과 지우개는 필수.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거나 잡지를 보고 괜찮다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스케치를 한다. 메모하는 습관은 으뜸이라고 그의 아내는 이내 남편을 칭찬했다.


처음에는 다투기도 많이 했다. 서로 작품에 대해 보는 관점이 달랐다. 시간이 차츰 흐르자 서로 조화를 이뤘다.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이들 부부의 장점.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함께 일하다보니 손님이 주문을 하면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한 명이 꽃을 포장하면 어느새 다른 한 사람은 리본을 만든다.

'우악스러운 저 손으로 어떻게 꽃을 만지지?'
'웬 아저씨가 꽃을 포장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손님들도,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기 일쑤였던 손님들도 한 번 그의 실력을 맛본 후로는 그를 찾는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황규무씨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황규무씨권윤영
아내 김혜원(42)씨는 "처음에는 남편이 저를 도와주는 처지에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내조를 해 줘야 할 처지가 됐어요. 제가 봐도 실력 있고 야물딱진 면이 있어요"하고 치켜세웠다. 화훼학과의 강단에 섰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는 지난 4월 대전시 기능경연대회 '화훼장식파트'에 출전에 은상을 탔고 대전시 대표로 전국기능경연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지난 달에 있었던 (사)현대화훼협회 작품전시회에서도 그의 작품은 돋보였다.

"여성들은 꽃의 아름다움을 많이 따지지요. 그것도 매력 있지만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꽃꽂이 하면 병에 오아시스를 넣고 꽃을 꽂는 것이나 막연히 바구니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공간 장식 측면에서 어엿한 예술이지요."

그는 꽃꽂이로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찾았다.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뭔가에 도전한다는 것도,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하면 할수록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20~30년이 흘러도 계속 꽃을 배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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