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건물에는 쥐새끼들 없나요?

등록 2003.11.18 23:26수정 2003.11.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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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갑자기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야! 저 쥐새끼 봐!”


그래도 사내자식들이라고 위기에 처한 엄마를 구하겠다며 큰 아이 인효는 파리채를, 작은 아이 인상이는 회초리를 들고 부엌으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저요? 우리 집에서 제일 약아빠진 저는 그냥 뒷짐지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났죠.

“뭐여? 또 뭔 놈의 쥐새끼여….”
“이 놈의 쥐새끼들이 이제 겁도 없이 내가 빤히 보고 있는데도 슬금슬금 기어 나오네.”
“어디 쥐구멍이 있나보네….”

우리 부부는 이러저러한 정황을 놓고 그동안 3마리의 쥐가 부엌에 잠입해 있었다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찍찍이를 놓아 3 마리 모두 소탕했는데 또 다른 쥐새끼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잡혀 죽을 바에야 동료들 복수도 할겸 실컷 골탕을 먹이겠다는 심사였나 봅니다.

얼마 전, 쥐새끼들 등쌀에 못 이겨 부엌 밖으로 연결되는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아 놓았는데 잠시 부엌문을 열어 놓은 사이를 틈타 침투해 들어온 쥐새끼들이었습니다. 싱크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눈에 보이는 음식물에 입을 대고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심지어는 물에 담가 놓은 두부까지 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쥐새끼는 아주 약은 놈이었습니다. 찍찍이를 두 군데로 나눠 설치했는데도 전혀 입을 대지 않았습니다. 싱싱한 멸치에 먹다 남은 소시지 조각까지 찍찍이에 얹어 놓았는데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찍찍이를 교묘하게 피해 호박을 갉아먹었고 멸치보다는 전혀 맛이 없는 전기밥솥 모서리까지 갉아먹었습니다.


a 쥐를 잡기 위해 멸치와 소세지 조각을 얹혀 놓은 찍찍이를  모셔놨는데도 그 유혹을 피해 호박만 갉아 먹었습니다.

쥐를 잡기 위해 멸치와 소세지 조각을 얹혀 놓은 찍찍이를 모셔놨는데도 그 유혹을 피해 호박만 갉아 먹었습니다. ⓒ 송성영

아마 이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어딘가에 물어다 놓은 음식물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쥐새끼들도 이러한데 100억을 먹었다는 정치인들이 과연 100억만 먹었겠습니까?

마지막 남은 그 쥐요? 잡았지요. 아무리 쥐새끼가 약삭 빠르다해도 사람 잔머리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며칠동안 용케도 찍찍이를 피해 다니더니 결국은 '쩍'하니 달라붙고 말았습니다. 쥐가 입 댈만한 것을 철저히 봉쇄했으니 제 놈이 잡힐 수밖에요.


밖으로 나가라고 부엌문을 열어 놨을 때 나갔으면 목숨이라도 부지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부엌의 음식 냄새가 죽도록 좋아서 나가기 싫었다면 감춰 둔 것을 야금야금 먹을 것이지, 좀더 많이 감춰두고 먹겠다고 욕심부리다가 황천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죽은 쥐를 밖에 내다 버리면서 ‘부정한 돈 먹고 사는 정치인들 돈줄 차단하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사실 쥐새끼들도 살아 있는 생명인데 쥐를 잡을 때마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집쥐는 음식물을 훔칠 뿐 아니라 오염시키고 가스관을 갉아서 사고를 내기도 하고, 전기 코드를 갉아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페스트와 발진티푸스 등의 균을 옮겨 전염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다들 짐작하고 계셨겠지만 부엌에 들어온 쥐들을 다 소탕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 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엌에 들어와 잡힌 쥐새끼는 어쩌다 재수 없이 걸려든 좀도둑에 불과한 것들이었습니다.

진짜 도둑놈들은 밖에 있었습니다. 허술하게 보관한 고구마는 물론이고 기둥에 걸어놓은 옥수수며 해바라기까지 갉아먹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개밥 푸대를 푹하니 줄어들게 했습니다.

화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열 받는다고 몽둥이 들고 기다렸다가 후려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먼저 열부터 식혔습니다. 검은 돈 먹고도 '쪽수'로 밀어붙이며 당당하게 거드름 피우는 정치인들 보기 싫다고 텔레비전을 박살낼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열 받으면 나만 손해봅니다. 내가 열 받았다고 쥐새끼들이 눈이나 꿈쩍할 것 같습니까? 열 받으면 쥐구멍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몽둥이 들고 설쳐대면 결국 우리 식구들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당장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다들 경험해 보셨겠지만 저 역시 어렸을 때 어지간히도 '맞짱'을 많이 떴습니다. 사소한 시비 끝에도 ‘맞짱 한번 떠 볼텨!’ 그랬습니다. 맞짱을 뜰 때 첫 번째 불문율이 ‘절대로 흥분하지 말 것’ 입니다.

열 받게 되면 손발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되려 쌍코피 터지게 됩니다. 감정을 가라앉히면 상대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이 보이면 상대의 공격을 적당히 피할 수 있고 또한 손쉽게 반격할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를 보면 절대로 요란을 떨지 않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어깨를 곧추 세우고 한 방을 노립니다. 결국 나는 요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즐기면서 한 방을 노리기로 했습니다. 고양이처럼 말입니다.

개밥 푸대에 시선을 집중하고 마당 한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드디어 이놈들의 소굴을 포착했습니다. 마루로 올라서기 전에 야트막한 뜰팡이 들어서 있는데 그 뜰팡에 구멍을 내놓고 들락날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밥 푸대를 점찍어 놓고 쉴 사이 없이 물어가고 있었습니다.

a 어느날 갑자기 개사료가 줄어들어 어쩐일인가 했더니 바로 이놈 짓이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개사료가 줄어들어 어쩐일인가 했더니 바로 이놈 짓이었습니다. ⓒ 송성영

불법 대선 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이라도 된 기분으로 척하니 캠코더를 설치하고 쥐새끼들의 움직임을 6mm 테잎에 담아 두었습니다(<오마이뉴스>에 쥐새끼들의 실상을 다 까발겨 놓겠다는 심사였지요). 그리고는 놈들의 소굴인 쥐구멍을 틀어 막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구멍을 막고 다음날 보니 그 옆에 또 다른 구멍을 파 놓고 낼름낼름 도둑질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에 걸쳐 구멍을 세 개씩이나 막았는데도 막아 놓는 족족 뚫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찍찍이와 쥐덫까지 설치했지만 내가 감당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동안 잡은 것들은 잔챙이에 불과했고, 쥐구멍 깊숙한 어딘가에 쥐새끼들을 번식하고 있는 ‘왕초 쥐새끼’가 있을 듯합니다.

a 구멍을 막아놓았는데도 그 옆에 다시 구멍을 뚫었습니다.

구멍을 막아놓았는데도 그 옆에 다시 구멍을 뚫었습니다. ⓒ 송성영

쥐구멍에 푹 빠져 있는 내게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에이그, 그래서 잡히겠어, 진작에 고양이를 풀어 놓았어야지….”

아내의 말이 백 번 맞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쥐 잡는데는 고양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고양이를 사오겠다고 작심한 지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를 언제 키워 쥐새끼들을 잡나’ 라는 어리석은 속셈으로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히 혁명적인 방법을 구사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쥐새끼 잡는데 혁명이라는 게 뭐 있겠습니까? 곳곳에 쥐약을 놓거나 다 큰 고양이를 모셔 오는 것이었지요. 이 방법도 괜찮긴 하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습니다.

쥐약을 놓게 되면 손쉽게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쥐약을 놓게 되면 죽은 쥐들이 집안 곳곳에 처박혀 썩는 냄새가 진통하게 될 것이고 전염병도 옮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 집 개가 먹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쥐약 파동이 잠잠하면 다시 쥐들이 꼬일 것이고 또 불안하게 쥐약을 놔야 할 것입니다. 악순환이죠.

큰 고양이 역시 무리가 따를 것이었습니다. 집에 붙어 있지 않을뿐더러 주인에게조차 발톱을 세우고 덤벼들지도 모릅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정권처럼 제 마음대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쥐새끼들 이상으로 음식물에 입을 댈 것입니다.

결국 털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기 고양이를 데려 오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빤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쥐새끼들을 사냥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검은 돈으로 정치를 하는 비리 정치인들이 그렇듯이 쥐들 또한 사람의 눈을 피해 다니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잡은 쥐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 쥐보다는 조금 큰 중 쥐들이었습니다. 큰 쥐는 쉽게 덫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당장 아기 고양이에게 그런 영악한 쥐새끼들을 잡아주길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 식구가 아기 고양이를 믿고 보살펴 준다면 언젠가는 쥐새끼들을 소탕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고양이도 못된 짓을 한다고요?

아기 고양이는 크면서 쥐들처럼 싱크대에 올라가게 될 것이고 가끔씩은 멸치 대가리를 비롯해 이러저러한 음식물에 입을 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쥐새끼들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그런 대로 봐 줄만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고양이의 버릇을 고칠 것인가?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대선비리 수사하는 검찰이나 정치 개혁하겠다는 청와대 감시하듯이 그것은 바로 우리 식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식구가 고양이의 못된 버릇을 내버려둔다면 쥐 잡는 일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쥐들과 한통속이 되어 쥐잡는 일 팽개치고 생선에만 눈독을 들일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쪽수'를 믿고 그러는지 아니면 집주인이 헐렁해 보여서 그러는지 집안 곳곳에서 쥐새끼들이 설쳐대고 있습니다. 당장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 시간을 두고 길들여 나가야 겠습니다.

그 아기 고양이가 다 커서도 쥐를 소탕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구요? 찍찍이나 쥐덫을 부지런히 놓아가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볼 요량입니다. 아기고양이가 커서도 소탕을 못하면 그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 중에서는 분명 쥐새끼들을 소탕하게 될 똑바른 놈이 나오게 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서울하고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에도 쥐새끼들이 많을까요? 검은 돈을 먹고도 당당한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사당이 텔레비전에 화면에 나올 때마다 그게 늘 궁금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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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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