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도시, 암스테르담에 가다

[유럽배낭여행기] 개방적인 것 VS 퇴폐적인 것

등록 2003.11.19 10:53수정 2003.11.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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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중앙역 전경. 역을 중심으로 뒷쪽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앞쪽으로는 시내가 펼쳐져있었다. 바로 이 시내 중심에 홍등가가 자리잡고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전경. 역을 중심으로 뒷쪽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앞쪽으로는 시내가 펼쳐져있었다. 바로 이 시내 중심에 홍등가가 자리잡고 있다.김태우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기 이전에 내가 네덜란드에 대해 알고 있었던 지식은 많지 않았다.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아 풍차가 많은 곳이며, 튤립을 중심으로 원예산업이 발달된 곳이고, 붉은 악마의 영웅인 히딩크의 조국이라는 것 정도였다.

오렌지 유니폼의 영웅들이 토탈사커를 만들어낸 곳.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축구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축구를 만들어낸 곳. 히딩크의 열렬한 팬인 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유럽 내에서도 성과 마약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명성이 높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분위기는 다른 유럽의 중앙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럽 각도시의 중앙역이 그러하듯 수려한 디자인은 내게 좋은 느낌으로 와닿았다.

하지만 중앙역을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에 펼쳐진 홍등가는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유럽배낭여행 안내책자를 통해 홍등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접한 홍등가의 분위기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막연하지만 우호적이었던 네덜란드에 대한 느낌들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창녀들의 방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홍등가. 그곳은 욕망의 거리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은 속옷만 걸친 창녀들의 몸매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욕망과 호기심으로 흐려져 있었다. 몇몇 남자들은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쇼윈도우의 창녀들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당히(?) 그녀들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서 왜 그토록 암스테르담에 숙소를 잡기가 어려웠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 길에 보았던 홍등가는 네덜란드의 이미지를 망쳐 놓았다. 이미 기대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홍등가를 빠져 나올 때, 욕망과 비릿한 정액 냄새로 속이 메스꺼웠다.

마리화나를 팔던 차이나타운 근처의 암스테르담 거리.
마리화나를 팔던 차이나타운 근처의 암스테르담 거리.김태우
그뿐만이 아니었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간 차이나타운의 거리에서는 마약을 팔려는 호객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레게파마를 한 흑인이 내게 다가와 “고니찌와” 하면서 인사를 했다.


함께 암스테르담을 관광했던 일본인 배낭여행족은 내게 마리화나가 담배보다 중독성이 없으며 단순히 한번의 경험 정도야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는 마리화나를 피워보고 싶은 눈치였다. 마리화나를 파는 술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암스테르담의 거리 구조는 마리화나를 비롯한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섹스를 하기 위해 홍등가로 갈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어떻게 이런 쾌락과 타락의 유혹이 한 나라의 수도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한국 배낭여행족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네덜란드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GNP 5% 정도를 정부가 인정한 공창(公娼)과 마리화나를 통해 거두어 들인다고 한다. 상업적 이익이 도덕적인 양심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달리 그들의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이건 혼전성교나 동성애를 인정하는 성의 개방과 관련된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고 성을 매매하고, 마리화나의 복용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아무리 성과 마약의 매매가 암스테르담에서는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그건 더러운 욕망을 파는 관광전략일 수밖에 없다.

개방적인 것과 퇴폐적인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돈을 받고 성을 상품화하여 파는 것이 개방적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서둘러 암스테르담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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