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 해병대가 포로로 잡은 이라크 군들을 끌고 가고 있다. 이제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강력한 공격으로 미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미 국방부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격이 거세지고 이에 따라 미군 사상자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제2의 베트남'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 전부터 제기되었지만, 군사력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자신감과 이라크 내부 사정에 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판단으로 미국은 '제2의 베트남'을 자초하고 있다.
베트남전의 후유증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정작 그 교훈을 망각한 채 씻을 수 없는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베트남과 이라크는 정치, 문화, 지정학적 위치 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약 40년전과 오늘날, 미국이 베트남과 이라크를 상대한 방식과 그 결과는 대단히 흡사한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전쟁의 해부, 베트남전의 역사(Anatomy of a War, a history of the Vietnam War)의 저자인 가브리엘 콜코 캐나다 요크대 역사학 교수는 < The Age >에 기고한 글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프랑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시 정보 보고를 무시하고 베트남전에 개입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점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정보기관의 평가를 무시하고 침공을 강행한 것부터가 '닮은꼴'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처했던 것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과도 흡사한 것이다.
또한 미국이 40년전에 베트남전 개입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해 후세인 정권의 테러 연계와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왜곡·조작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의 오판과 기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40년전에 미국은 "베트남전 개입의 명분으로 베트남이 공산화될 경우 공산주의의 '확산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들었지만 이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정권을 살려둘 경우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가져올 것이라며, 이를 예방하고 중동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침공을 강행했지만, 중동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정작 테러와 반미감정이다.
미국, '쇠망치 작전'으로 성공할 수 없어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패퇴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공산주의를 '절대악'으로 보았던 과거 미국의 정권들은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신들의 개입을 베트남 민중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독재정권 하에서 고통받았던 이라크 민중들이 자신들을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베트남 민중들이 미군과 맞서 싸웠듯이 오늘날 이라크인들 역시 미군을 점령군으로 바라보면서 저항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머리 속에 30-40년전의 베트남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점령 초기에 미국에게 호의적이었던 시아파마저 미국에게 등을 돌리고 이들 중 일부가 게릴라가 되고 있는 있다는 것은 이라크에서 미국의 설땅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황한 부시 행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조기에 주권을 이라크에 이양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무력진압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격이 거세지고 이에 따라 미군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미국은 F-16 전투기와 아파치 헬기, 그리고 위성유도폭탄까지 동원해 전시를 방불케 하는 게릴라 소탕 작전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 작전명을 2차 대전 당시 나찌 독일이 사용한 바 잇는 '쇠망치(Iron Hammer)'로 명명해, "부시와 히틀러는 닮았다"는 국제사회의 비아냥을 자초하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자비한 진압 작전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괴멸이 아니라 한층 강력한 반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미국이 또 다시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폈던 존슨 행정부는 이를 두고 미국의 승리가 임박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베트콩은 1968년 구정 대공세에 나서 전세도 역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여론이 존슨 행정부를 등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1990년대 초 소말리아 역시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에 다수 소말리아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미군은 조기에 무하매드가 이끄는 무장세력을 궤멸시킨다며 무자비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를 통해 반군 세력을 척결되기는커녕 소말리아의 미군 지지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돼 오히려 무하매드의 후원 세력만 키워주고 말았다. 결국 '무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던 미국은 베트남과 소말리아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쇠망치' 작전을 비롯한 미국의 무자비한 이라크 저항세력 진압작전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작전이 '테러'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 수뇌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고강도 진압작전은 저항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못지 않게 이라크 민간인에게 "저항세력에 협력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공격 대상이 무차별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도 삶의 터전과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테러'의 기본적인 속성을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주입시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할 때,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이미 그 자체가 테러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정작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를 근절시키기는 커녕, 한층 강력하고도 무차별적인 테러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시, 존슨의 전철 밟나?
베트남에서의 철수 불가를 고수했던 존슨 행정부는 결국 재선 출마도 포기하고 베트남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의 닉슨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부시의 머리속에 35년전 존슨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시의 딜레마는 이라크 저항세력을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지만, 미군을 더 보낼 경우 재선 전략에 엄청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있다. 발을 뺄 경우 이라크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군대를 더 보내면 미국으로 돌아오는 미군 사상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콜코 교수는 "베트남전은 미국 여론에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점증하는 미군 사상자와 추락하는 미국의 위상 속에서 미국 여론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는 향후 부시의 이라크 정책 변화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베트남전 교훈에 대한 망각 현상이 미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전투병'으로 시작했던 베트남전 파병이 결국 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가져왔듯이, 700명의 의료·공병대대로 시작된 이라크 1차 파병이 3천명 규모의 전투-비전투 혼성 부대 파병으로 이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베트남의 사례와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은 한국군의 사상자 발생 및 3차, 4차 파병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함을 경고해주고 있다.
지난 11월 초 미국에서 만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역사에 대한 망각'을 든 바 있다. 초기에는 "이라크 침공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양심적인 목소리를 외면했다가, 죽어가는 미군들을 보면서 뒤늦게 베트남전의 악몽을 떠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뒤늦은 각성을 하기 전에, 정말 신중하고도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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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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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교훈' 망각한 부시, 존슨의 전철 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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