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고 싶은 그 길, 문경새재

겨울 초입, 한 여름의 추억을 떠올리다

등록 2003.11.25 17:16수정 2003.12.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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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나는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한 곳으로 문경새재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넘었다는 호젓한 산길 10킬로미터를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우리 가족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 그 여름의 추억을 되집어 본다.

경상도 지방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은 풍기와 단양을 잇는 죽령(689m), 문경과 충주를 잇는 새재(조령, 632m) 그리고 이화령(632m), 계립령(520m)이 있다. 옛날 조선시대의 유생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로 꼭 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죽령으로 넘으면 '주르륵' 떨어지고 추풍령으로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재는 그 험준함이 나는 새도 쉬어간다해서 '새재(鳥嶺)'라고도 하고 '새로 난 고개'라서 새재로 부른다고도 한다. 한편 조령산과 주흘산의 깎아지른 골짜기 사이로 난 길이라서 '새재' 즉 '샛재'인데, 발음하기 좋게 '새재'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 경상도 지방에서 '쌔'라고 부르는 억새가 많아서 새재라 불렀다고도 한다. 그 이름에 연유해서 한자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문경쪽에서 넘어와야 제 격이긴 하지만 오르막이라 아이들이 힘에 부칠 것 같아 내리막길이 되는 충주쪽으로 길을 잡았다. 충주쪽에서 새재를 넘을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관문이 바로 조령관(문경쪽에서는 영남 제3관이라고 부른다)이다.

a 조령관(영남 제3관)

조령관(영남 제3관) ⓒ 이양훈

조령은 임진왜란 당시 전략적 요충으로 급히 막아야 할 요새지였으나 도원수로 전권을 위임받은 총사령관 신립이 탄금대로 가는 바람에 비고 말았다. 급한 대로 신립은 관문에 허수아비를 세워 군사들이 있는 것 처럼 위장을 해놓기는 했으나 까마귀들이 허수아비의 머리위에 앉았다 날아가는 것을 본 왜군들이 가짜인 줄 알고 손쉽게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관문을 넘으면서 다시한번 조령의 험준함에 혀를 내 둘렀다고 한다. 만일 탄금대가 아니라 이곳에서 왜군을 막았더라면 어떠했을까.

a 호젓한 산 길이지만 넓게 다듬어진 새재

호젓한 산 길이지만 넓게 다듬어진 새재 ⓒ 이양훈

새재는 더이상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넘었던 그 길이 아니다. 물론 옆으로 옛길을 복원해 놓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걷는 새재는 아스팔트로 포장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다지고 넓혀 놓았다. 이미 60년대에는 차들이 다니기도 했다. 새재에 차량의 왕래가 끊긴 것에는 사연이 있다.

이 지역의 택시 기사분에게서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대구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에서 처음 교사생활을 했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다시 문경을 찾아서는 바로 이 길을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넘었다 한다. 그리고 던진 한 마디!


"이 길은 차들이 다니지 않게 보존했으면 좋겠다!"

그 한 마디로 새재에 차량의 통행이 끊기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한 편에서는 1981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차량의 출입을 금지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새재는 지금 한국인이 가장 걷고 싶어하는 옛길이 되었으며 지역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만일 차량이 통행하게 된다면 어느 누가 이곳을 걸어볼 생각을 할 것인가? 훌쩍 차를 타고 넘어가면 10분이면 족한 거리를 말이다.


다람쥐들이 전혀 사람을 겁내지 않는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지만 신경은 늘 뒤편에 있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뒤를 돌아본다. 차가 올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넓은 길을 사람이 가운데로 걷고 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샌가 왼쪽편으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습관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a 조곡관(영남 제2관) 이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가 없다.

조곡관(영남 제2관) 이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가 없다. ⓒ 이양훈

새재의 세 관문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조곡관은 1975년에 복원한 것이다. 옛 이름은 '조동문'이었지만 지금은 '조곡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왼편에 보이는 절벽을 보라! 이 곳을 통하지 않고는 넘을 수가 없는 바로 그 곳에 관문이 있다. 그만큼 요충지라는 얘기.

a 조곡관 현판

조곡관 현판 ⓒ 이양훈


a 조곡폭포

조곡폭포 ⓒ 이양훈

조곡관 바로 옆에 있는 조곡폭포. 아스라한 직벽에서 4~5단을 떨어지는 시원스런 이 물줄기로 인해 잠깐이지만 다리 아픈 것도 잊게 된다.

a 음각된 공덕비

음각된 공덕비 ⓒ 이양훈

자연암반에 새겨진 공덕비. 지방관의 공덕비는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의 주린배를 짜내어 억지로 세우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그 지방관이 다른 곳으로 가게되면 이 땅의 민중들은 가장 먼저 공덕비를 부수고는 했다. 부수지도 못하게 아예 자연암반에 세긴 공덕비를 보고 있자니 인간의 욕심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a 조령원 터

조령원 터 ⓒ 이양훈

'조령원 터' , '원'이란 일종의 국립호텔.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새재를 넘었다 한다. 조령원은 터의 크기로 보아 그 규모가 대단히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a 태조왕건 촬영장

태조왕건 촬영장 ⓒ 이양훈

1관문 직전에 세워져 있는 태조왕건 세트장. 저 건물이 모두 플라스틱에 고무로 만든 '가짜'이다. 여기를 보고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가짜처럼 보이는 착시를 경험하게 된다.

a 주흘관(영남 제1관)

주흘관(영남 제1관) ⓒ 이양훈

영남쪽에서 문경새재를 넘는 첫 관문이다. 이렇게 지난 여름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자니 마음은 이미 새재에 가 있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물든 길도 좋을 것이고, 새하얗게 눈꽃이 핀 길도 좋을 것이다.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이름모를 산새들이 정겹게 노래하는 새재!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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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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