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투쟁에 앞서 '재의결' 나서라

[김재홍 칼럼] 어떤 경우도 '대선자금 수사 마비'는 안돼

등록 2003.11.25 11:50수정 2003.11.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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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거부권 행사 직후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긴급회의에서 최병렬 대표와 이재오 총장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만

대통령 측근비리를 겨눈 특검법안이 25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거부됐다. 노 대통령은 거부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밝혔다. 무엇보다도 검찰이 현재 수사중인 사건이니까 그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누이 얘기돼 온 내용이기도 하다.

검찰의 수사권은 행정부의 권한에 속한다. 이에 비해 특검은 국회가 의결해서 행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여기서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을 중도에 특검으로 가져간다면 국회에 의한 행정권 침해라는 것이 강금실 법무장관의 견해다. 3권분립 정신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은 강 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검찰 수사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회가 검찰의 수사 마무리를 본 뒤 재의결해 달라면서 조건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 해석보다는 향후 정국 전개가 문제

이같은 헌정에 대한 법 해석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분석하는 편이 더 쉽게 정국상황을 이해하는 길이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한 특성이었고 이번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청와대 당국자들은 특검법안을 받아들이려 해도 할 수 없게 몰아간 것이 한나라당 의총의 '전면투쟁' 결의라고 불만이었다. 유인태 정무수석도 처음엔 수용검토 쪽으로 비쳐졌으나 막판에 "최병렬 대표의 강경일변도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수용불가로 돌아섰다. 정무 라인과 달리 문재인 민정수석은 처음부터 검찰권 보호에 무게를 두어 특검에 부정적이었다.

청와대 정무 라인은 최 대표가 사전에 압박한 강수를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한 전략이거나 비자금 수사로 몰린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청와대의 참모들 중엔 한나라당 '책사'들이 노 대통령의 저항적 체질을 잘 알고 일부러 압박해서 거부권을 유도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않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곧 야당의 강경투쟁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해진다. 거기서 노림수는 비자금 수사선상에 오른 한나라당 간부들이 검찰 소환에 불응해도 국민의 눈에 별로 띄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또 검찰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어떻게 공정하게 수사하느냐면서 자기들이 수사에 불응하는 명분으로 삼을지 모른다. 거부권과 야당의 전면적 장외투쟁은 어쩌면 모든 비자금 수사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거부권 행사, 정치적으로 유감이나 법적으로 합헌

우리는 어떤 명분으로도 부패비리에 대한 수사가 저해되는 반개혁적 일이 벌어져선 안된다는 것을 여야 모두에 촉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노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기를 바랐다. 중요한 것은 그에 상응해서 한나라당도 일반검찰의 대통령선거 비자금 수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는 양비론이 결코 아니라 정치권의 부패비리를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하는 개혁 요구였다. 검은 돈 거래를 개혁하는 데 여야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결정됐다. 정치적으로 유감이지만 법적으로 합헌이고 원칙적으로 3권분립 정신에 바탕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국회를 버리고 길거리로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국회의 절대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지배적 패권정당 아닌가.

장외투쟁은 총선 전략과 비자금 수사 회피용

그런 다수 정당이 행정부를 상대로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은 세계 의회정치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개헌과 대통령 탄핵만을 제외하고 모든 입법과 예산 등 모든 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 정당이 국회를 버리고 장외로 나간다는 것은 극단적 정략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말 넉달도 안 남은 총선 전략과 검찰의 비자금 수사를 회피해 보자는 꼼수가 아니고는 납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재의결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은 옳지 않다. 최병렬 대표는 장외투쟁에 앞서 특검법 재의결에 나서는 게 마땅하다.

국회가 재의결을 하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가 종결된 뒤 특검법을 정부안으로 고쳐서라도 대통령 측근비리에 한 줌의 의혹도 없도록 재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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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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