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아파트, 옥석 가리기

무턱 대고 사는 것보다 꼼꼼하게 따지는 게 중요

등록 2003.11.26 08:56수정 2003.11.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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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시장이 청약 수요 실종으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1순위 마감은 무난할 것으로 여겼던 파주 교하지구 내 신규 분양 아파트의 경우 곳곳에서 2순위 마감은 고사하고, 3순위 마감도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3순위에서도 청약 수요를 채우지 못해 미분양이 된 곳도 있다. 지난 18일 포천에 선보인 K건설 아파트는 1단지의 경우 104가구, 2단지는 136가구가 3순위에서도 청약 수요가 없어 미분양됐다.

비단 이런 현상은 수도권 지역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6차 동시분양에 들어간 인천에서도 일부 단지의 경우 미분양이 된 상태고, 서울지역도 순위내 마감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이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은 "청약 시장이 실수요 위주로 재편된 만큼 과거와 같은 가수요에 기댄 청약 1순위 마감은 힘들 것"이라며 "서울지역도 비인기 지역 아파트는 미분양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입장에선 미분양은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이다. 업체는 빨리 아파트를 팔아 자금을 돌려야 하는데,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엔 자금이 막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업체들은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이를 빨리 팔아치우기 위해 고객을 끌기 위한 분양가 세일작전을 펴곤 한다. 분양가 인하가 어려울 경우엔 중도금 무이자, 이자 후불제 등 수요자에게 유리한 금융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과정에서 미분양 아파트의 또 다른 장점인 청약에 제약 조건이 없다는 점이 부각된다. 실상 미분양 아파트는 청약 통장 없이 구입이 가능한 게 사실이다. 한 마디로 누구나 돈만 있으면 이런 저런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물론 미분양 아파트는 재당첨 제한 또한 받지 않는다. 이 말은 청약 통장 가입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도 기간과 순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분명 비수기철에 나오는 미분양 아파트는 잘만 고르면 실수요자에게 유리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건설업체들도 이런 점을 부각해 미분양 주택을 털어내기 위한 갖가지 묘안을 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분양 주택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양가 인하, 마이너스 옵션제 선택 많아

주택업체들이 흔히 미분양을 털기 위해 내세우는 금융 전략부터 살펴보자. 주택업체들이 내세운 금융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분양가를 인하하는 방안이고, 둘째는 중도금 무이자 대출과 이자 후불제 등 이자를 감면해 주는 것이다.

분양가 인하방식은 당초 책정된 가격에서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다. 업체입장에서는 이익금을 많이 남기지 못하더라도 빨리 팔아 자금을 돌릴 수 있고, 수요자 입장에선 분양가 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어 단면만 보면 건설업체와 수요자가간 ‘윈-윈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건설업체의 경우 분양가 인하를 크게 내세우면서 광고지의 귀퉁이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글씨로 ‘마이너스 옵션’을 내세운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이것이 분양가 인하의 숨겨진 키워드다.

이른바 ‘마이너스 옵션’이란 마감부분을 시공해 주지 않는 조건으로 분양가를 싸게 제시하는 방안이다. 즉 벽지나 주방기구, 욕실기구 등을 갖춰 주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해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마이너스 옵션제를 도입할 경우 전체 분양가의 20 ~ 30% 정도는 낮출 수 있다라고 보고 있다. 일면 수요자에게 유리한 제도가 아니냐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제도는 결코 소비자에게 유리한 제도는 아니다.

일단 분양 받은 뒤 입주할 때 필요한 것만 마감시공을 하겠다는 의도지만, 한 개인세대가 이를 감당할 경우 일괄적으로 시공할 때 보다 1.5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분양 당시와 입주 당시 마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개인이 부담하기엔 만만치 않다. 그리고 문제는 이렇게 개인이 시공한 부분에 대해 하자가 발생할 경우엔 아파트 시공회사가 하자 보수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마이너스 옵션은 이래저래 수요자에게 불리한 구석이 많은 제도인 셈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들은 마이너스 옵션을 뻔히 선택하면서도 분양가 인하 효과만 강조해 미분양을 털어내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 배경엔 ‘나중에 입주할 때 결국 자신들에게 마감시공을 맡겨, 결과적으로 빠진 분양가 만큼 받을 수 있다’ 라는 복선이 깔려 있는 셈이다. 건설교통부가 최근 분양가 인하라는 명분하에 ‘마이너스 옵션’을 제도화하는 것에 대해 ‘건교부가 실상을 몰라도 정말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중도금 무이자, 이자 후불제 등 금융조건, 분양가 높으면 혜택 줄어

중도금 무이자 혜택이나 이자 후불제 역시 따져보면 크게 수요자에게 유리한 혜택이 아니다. 중도금 무이자는 말 그대로 중도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의미로, 수요자 입장에선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을 공짜로 대출 받아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건설업체 입장에서 따진다면,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불리한 제도로 보인다. 그러나 분양가를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 쌍문동에 분양한 모 건설업체의 경우 중도금 무이자를 내세워 미분양 주택을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22평형이 1억 6700만원으로 인근 20평형대 신규 아파트 시세 1억4000만원 보다 높다.

물론 마감재 등에 따라 분양가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도금 무이자에 따른 건설사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킨 흔적이 농후하다.

이자 후불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자 후불제의 경우 입주 후 중도금 대출에 따른 이자를 수요자가 다시 내야 하는 금융조건이다. 물론 중도금 대출에 따른 이자를 꼬박꼬박 내는 수요자 입장에선 본다면 ‘안 해주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분양가 자체가 높게 책정돼, 수요자에게 제시된다면 이러한 혜택 역시 무의미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이자 후불제를 내세운 파주 교하지구 내 모 아파트의 경우 평당 분양가격이 700만원 내외다. 주변 신규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평당 640만 원 내외란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가 높은 셈이다.

같은 맥락하에서 인천 6차 동시분양에 나온 S아파트 역시 ‘이자 후불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분양가격이 턱없이 높다’라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려는 이들을 살펴보면, ‘아파트가 싸기 때문’, ‘청약하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까’, ‘각종 금융혜택을 받아 임대용 사업을 염두에 둔 사람들’ 등 다양하다.

하지만 입지가 떨어지거나 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아파트의 경우 입주시점에서 전세가 나가지 않거나 나중에 되팔 때 거래가 되지 않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시세차익형 투자뿐만 아니라 실수요 입장에서도 미분양 아파트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최근 청약 시장을 살펴보면 1, 2순위에서는 미달됐다가 3순위에서 급격히 청약자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가 청약하는 데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집중 매입하는 양상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대로 미분양 아파트는 ‘미분양 될 만한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 입각하면 3순위 청약률 급증은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무리 계약이 100%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3순위에서 로열층이 미분양으로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단지와 입지 여건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실패 등으로 미분양 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분양 아파트는 분양가격이 높거나 주거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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