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에 대한 과세는 '당위성'의 문제

불법정치자금 과세 주장하는 법률전문가 이전오 변호사 인터뷰

등록 2003.11.27 13:34수정 2003.11.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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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정치자금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권력형 부정부패를 통해 수수한 불법적 이득에 대해 엄정하게 세금을 물리는 것이 법률적으로 당연하다며, 과세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 법률 전문가를 만났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작년에 귀국한 이전오 변호사는 현재 한국에서 조세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미국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정치인이 두 번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것은 깨끗하지 못한 정치인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미국민들의 인식 탓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불법적 이득에 철저히 과세하는 조세 시스템이 이러한 풍토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불법 정치자금 등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 국세청이 거듭 밝히고 있는 과세불가의 이유가 법에 근거한 것이 전혀 아니라며, 국세청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불법정치자금 등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한 경제적 이득에 대해 철저하게 과세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변호사는 "과세 당국과 언론은 이러한 주장을 권력형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하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처럼 이야기하는데, 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함에도 못하고 있던 것을 정상화시키자는 요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a 이전오 변호사

이전오 변호사 ⓒ 사이버참여연대

우리 나라에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알려져 형사처벌을 받은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정치 활동을 하는 게 너무나 일반적이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정치인으로서 깨끗하지 못한 돈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 인생에 결정적인 치명타다. 공직을 사퇴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유권자가 그런 정치인을 절대로 재선시키지 않음으로써 철저히 심판한다. 소속 정당 또한 해당 정치인을 보호하려고 했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에, 당사자를 퇴출시키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모종의 거래 관계가 개입된 검은돈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 자금을 받는 과정에서 절차 정도만 어긴 것이라고 하더라도, 큰일난다. 돈 문제에 관한 한 깨끗하지 않고서는 정치인 행세 못한다. 일단 발각되면 영구 퇴출 당하니까 불법적인 금품수수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하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미국은 세법차원에서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였나?
"미국에서도 1930년대, 40년대에는 '적법하게(lawful)' 얻은 소득에만 과세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초창기 세법에는 소득의 정의 자체를 적법한 소득만 소득인 것처럼 명시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50∼60년대가 되면서 적법하게 얻은 소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과세하면서 불법적으로 얻은 소득에 대해서는 왜 과세하지 않느냐, 형평에 전혀 안 맞는 거 아니냐, 하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여론 또한 과세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결국 미국은 세법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세법에서 'lawful'이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불법소득에도 어김없이 과세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하지만 우리 국세청의 경우, 과세불가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소득을 불법적으로 얻었느냐 합법적으로 얻었느냐와는 무관하게 모두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세계적인 흐름일 뿐 아니라, 조세형평성에도 맞는 일이다. 우리 나라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국세청은 불법정치자금 등과 같은 불법적 이득도 과세 대상이라고 하는 분명한 원칙 하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행 세법으로도 증여세를 당연히 과세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문제는 국세청이 이를 '과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당위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과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과세 가능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과세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과세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위법한 방법으로 취한 이득에 대해 과세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불법소득에 대한 과세가 적법소득에 대한 과세보다 훨씬 더 당위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국세청이 이의가 없다면, 국세청이 과세 가능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것은 과세당국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과세할 수 없다는 국세청의 태도가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태도 때문이다."

국세청이 과세불가의 이유로 제시하는 세법적 근거라는 것도 매우 자의적인 법해석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뇌물 등 불법적 이득은 대가성이 있기 때문에 증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가성이 있다'라는 말은 무언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돈을 주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미에서 쓴 표현에 불과하다. 국세청이 "대가가 있기 때문에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고 말할 때의 '대가'는 세법상에서 증여 여부를 따지는 '대가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이는 뇌물을 줄 만한 동기가 있다는 의미,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동기야 물론 있겠지만, 그 동기가 과세를 못할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불법정치자금 문제만 하더라도, 국세청이 '대가'라는 단어와 상속증여세법 46조에 대한 잘못된 법해석에 집착한 나머지 과세불가 입장 계속 고수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의거한 정치자금에 한해서만 비과세 한다는 조세특례제한법 76조와 같은 조문은 둘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무조건 비과세하면 되지 법이 왜 필요한가."

대가성이 판명되면 받은 돈을 몰수·추징하게 되는데, 여기에 과세까지 하면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형사처벌의 일종인 몰수·추징과 조세법 상의 과세는 분명 목적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사기로 1억 원의 이득을 올린 사실이 들통나 감옥에서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해서, 이 사람이 피해자에게 1억 원을 변상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형사처벌과 민사처벌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형사처벌을 했다고 해서 과세처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전혀 법적 논리가 아니다."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불법자금 수수사실이 밝혀졌을 때, 지금처럼 국세청이 설득력 없는 이유로 과세불가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대신,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나?
"보완은 둘째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과세 가능하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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