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서울에 사시는 어머님께서 김장을 마치셨다며 김장김치, 청국장 등을 보내주셨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비닐에 국물이 새지 않도록 겹겹이 싼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아무리 비닐을 꽁꽁 묶었어도 김치와 청국장의 냄새만큼은 묶질 못했는지 청국장과 김치의 묘한 냄새가 어우러지며 거실을 점령해 갑니다.
"우와~ 냄새난다."
아내가 부엌에서 냉장고에 넣을 것과 바깥에 내놓을 것 등등 구분을 하는데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침이 입안 가득 고입니다. 더는 못 참겠습니다.
"우리 김치하고 뭐 좀 간단하게 먹을 것 없을까?"
잠시 후 작은 상에는 군만두와 김치가 올라왔습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큰 배추김치를 죽죽 찢어 만두를 싸서 한 입에 넣는데 평소 때는 김치를 별로 안 먹던 아이들인데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김치를 찢어놓기가 무섭게 경쟁적으로 젓가락질을 합니다.
"맛있냐?"
"엄청 맛있다. 할머니가 만든 김치가 역시 최고다."
우체국 택배로 서울에서 제주까지 오느라 적당히 익은 김치는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내친 김에 저녁 식단까지 전합니다.
"오늘은 신김치에 오겹살 썰어 넣은 청국장찌개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야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치를 먹었으니 그 김치가 맛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아이들까지 할머니가 만든 김치가 맛있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고 아내가 김치를 못 담그는 것도 아니고, 김치를 담그면 다들 맛있다고 먹는데 젓가락을 쉴새없이 머물게 하는 그 매력의 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는 손맛이겠지요.
모든 음식의 맛은 손끝에서 온다고 합니다.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적지도 않게 조물거려주어야 음식의 맛이 깊어진다고 합니다. 그 손맛은 사랑의 맛일 것입니다. 양념으로는 낼 수 없는 맛,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손끝에 배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먹었던 그 맛에 대한 향수겠지요.
뇌리에 깊숙하게 자리한 본능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언젠가 먹었던 그 향수같은 맛이 혀끝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그 맛의 기운이 혀끝에 닿는 순간 침이 돌고, 침이 도는 순간 미각을 온통 그 맛으로 집중시키는 것이죠.
자연의 품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유년시절을 보냈던 분들이 보리수, 개암, 으름덩굴, 칡뿌리 등등의 맛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제주는 겨울에도 푸른 것들이 많습니다.
날씨도 따뜻해서 육지처럼 '김장'을 거창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김장철도 아닙니다. 그러니 또 한편으로 김장김치라는 것이 주는 맛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김치는 갖가지 양념이 잘 배어 있어야 제 맛이 납니다. 어느 한 쪽의 양념이 지나치게 되면 제 맛을 낼 수 없습니다.
문득 작금의 현실들을 돌아봅니다.
우리 나라를 커다란 김장배추라고 생각해 봅니다.
배추를 잘 절여서 이것저것 모아 버무려 김장을 해보면 무슨 작품이 나와야 할 것인데 배추가 문제인지 아니면 양념인 문제인지 영 맛을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 맛깔 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저기 돌아보아도 영 살맛 안 나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대로 더 갖겠다고 아우성이고, 또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만큼 갖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덜 갖겠다고 싸우는 일을 보지 못합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할 줄 아는 미덕을 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김장김치.
그 한 포기에 들어있는 조화로움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맛깔 나는 김장을 담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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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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