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생활터전, 울어버린 상인들

[현장] 서울시, 경찰-용역직원 동원 청계천 노점상 강제 철거

등록 2003.11.30 12:45수정 2003.12.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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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김은성·이승훈 기자
사진 : 김진석 기자


청계천 노상 점포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30일 서울시는 예고한 대로 공무원과 경찰, 용역 철거반을 동원해 옛 청계고가 주변에 늘어서 있었던 노점 적치물을 쓸어냈다.

a 청계천의 아침이 밝아 왔다. 청계천의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청계천의 아침이 밝아 왔다. 청계천의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 김진석

서울시의 강제철거 작업은 날이 밝은 오전 7시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인들은 청계천일대에 경찰이 배치되기 시작하자 경찰과 용역 철거반의 진입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여 경찰과 철거반의 진입에 대비했다. 이와 동시에 청계천 6가에서 8가에 이르는 청계천 복원 공사 구간 곳곳에서도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밤을 꼬박 새운 상인들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용역이 왔다! 남자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a 강제 철거를 막기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강제 철거를 막기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 김진석

상인들은 공사장에 널려진 폐타이어와 나무판 등을 옮겨와 바리케이드를 보강했고 상인들이 불길 속에 던져 넣은 휴대용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도로 주변에는 노상점포 철거에 동원될 지게차, 포크레인과 철거된 적치물을 실어 나를 트럭 수십 여대가 속속 도착했다.

a 노점상인들과 철거 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다

노점상인들과 철거 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다 ⓒ 김진석

7시 30분경 서울시 공무원과 철거 용역업체 직원 3500여명이 투입돼 옛 청계고가 입구인 광교 부근부터 노점 적치물 철거에 들어갔다. 철거가 시작되자 노점상 1300여명은 격렬히 항의하며 철거반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나, 대규모 철거반원들과 지게차, 덤프트럭, 포크레인 앞에 속수무책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8시경부터 일부 상인들은 청계천 7가에 집결해 설치한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고 깨진 보도블록과 소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으나 청계 7가와 8가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된 철거작업을 막아내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매연에 기침을 하며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기자 노점상들은 청계천 8가로 일시 후퇴했다. 그 후 불을 진압하기 위한 소방차 2대가 왔고 이어 비상 사태를 대비한 구급차도 도착했다.

"이런 일엔 안 오는 게 좋죠"
철거용역원들에게 듣는 청계천 노점상 철거

청계천 6가, 9가 앞에서 철거를 돕는 용역 2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거리 정비'라는 노란 완장 차고 9가 앞 쓰레기를 수거하던 건설업계원 김아무개씨는 "노점상인들과 조금이라도 안 부딪치려고 노력한다" 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씨는 "마찰을 빚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며 "이런 일엔 가급적 안 오는 게 좋죠" 라고 씁쓸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지도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용역들이 먹고살기 위해 온 일용직 근로자들일 것" 이라며 "특히 일요일은 건설 쪽에 일이 없어 불려온 경우도 많다" 고 했다.

또한 "용역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소속이나 출신은 알기 힘들다"고 말하며 "이번 철거원들은 지도부와 명령을 받고 온 단순 용역들이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철거가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다" 고 덧붙였다.

300여명의 용역들이 운집한 청계천 6가. 이곳의 용역들은 그 모습도 가지가지다. 노숙자를 비롯해, 아주(?) 점잖아 뵈는 어르신, 덩치 좋은 젊은이들까지 소속을 알 수 없는 각기 다양한 이들이 운집했다.

이중 공무원으로 용역에 참가한 김아무개씨를 만나봤다. 그는 용역들은 용역사, 건설현장, 시, 군청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모여든다고 설명했다. 김씨 역시 "같은 서민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기 철거원으로 온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지시를 받고 온 사람들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일은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철거는 불가피 한 것 아니냐 ? 우리도 서울시와 노점상들의 합의가 잘 돼 이런 곳에 오지 않았으면 한다" 고 밝혔다. / 김은성

a 지게차로 좌판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지게차로 좌판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 김진석

불길이 다 잡힌 8시께 용역들이 서서히 접근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노점상들은 도로변의 벽돌을 깨 던지는가 하면, 가스통에 라이터를 대고 위협하기도 했다. 노점상들은 망연자실해 넋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이제 남은 것이라곤 악밖에 없다며 사투를 벌이는 이도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곳곳에선 복원 공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용역 부를 돈이면 우리 노점상 살리고도 남겠다!", "한 개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서민들끼리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이라크전이 따로 없다!" 등 갖은 비판과 욕설이 난무했다.

a

ⓒ 김진석

바리케이드 사이로 용역들과 노점상들은 몇 번의 실랑이를 벌였다. 점차 그 거리가 10m에서 3m로 좁혀지면서 첨예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3m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고 양쪽 다 큰 부상 없이 대치 상태만을 유지했다.

노점상들이 청계천 6가 앞에서 용역들과 투쟁을 벌이는 동안 청계천 8, 9가 일대의 노점들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를 안 노점상들이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몇 곳의 노점들은 5t짜리 트럭에 실려가고 난 뒤였다. 이를 지켜본 노점상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철거반원들과 처절한 충돌이 빚어졌다.

철거반들이 노상에 들이닥치고 눈앞에서 자신의 노상 점포가 철거당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한 상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너희들에게 빼앗기느니 차리리 태워버리고 만다"며 노상에 쌓여있던 물건들에 불을 질렀다. 일부 상인들은 분노의 표시로 팔려고 보관 중이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또 철거된 적치물을 실은 트럭 아래 드러누워 "가려면 나를 깔고가라"고 울부짖었다.

이곳에서 20년째 장사를 해왔다는 아주머니 한 분은 "우리는 청계천 복원에 찬성하고 공사를 방해한 적도 없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며 "서울시가 장사하면서 공사 진행할 수 있다고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a 한 노점상인이 자신의 좌판이 철거 되자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다

한 노점상인이 자신의 좌판이 철거 되자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다 ⓒ 김진석

저항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대부분 사라진 11시경부터는 지게차 100여대가 본격적으로 노점 적치물을 인도에서 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계 6, 7가에서 본격적인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철거작업이 먼저 끝난 청계 8가 쪽에서는 삼삼오오 모여든 상인들이 없어진 가판대 대신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컵라면으로 늦은 아침을 대신하고 있던 상인들은 "이거 다 철거한다 해도 갈 곳이 없는 우리는 내일부터 길바닥에 돗자리 깔고 장사할 것"이라며 "서울시의 강제철거에 끝까지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서울시가 강제 철거한 노점상 적치물은 530여점에 이른다. 이들 적치물은 난지도 매립장 등 서울 각지에 마련된 보관소로 옮겨졌다. 서울시는 "철거 적치물에 식별 스티커를 붙여 상인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철거과정에서 파손된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점상들은 그 동안 서울시에 "청계천 인근을 풍물거리로 만들어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상가의 상품 무단 적치, 불법 노점 등으로 청계천 복원공사가 늦어지고 있다"며 "자진철거하지 않는 불법 노점에 대해서는 강제 철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전국노점상연합회는 "청계천 노점자리 사수와 청계천 일대 풍물거리 조성 등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때까지 강력하게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 좌판이 철거된 청계5가. 수 십년간 지켜온 노점상인들의 생활 터전이 불과 4시간여 만에 사라졌다

좌판이 철거된 청계5가. 수 십년간 지켜온 노점상인들의 생활 터전이 불과 4시간여 만에 사라졌다 ⓒ 김진석



"나라가 날 보고 도둑질을 하라 하네"
18년 땀서린 장사터에 앉아 눈물짓는 신정순씨 사연

18년 동안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한 신정순(51)씨는 자신의 자리에서 연신 쇠파이프를 두드리며 좀처럼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용역들이 청계천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18년 간 삶의 터전이 됐던 자신의 장사 터를 사수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점상은 내 전부인데... 이것말고 무얼 할까 생각할 틈조차도 없이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신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신씨의 말과 말 사이엔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왜 지금 당장 이어야 하는가?"라며 "한 1, 2년만 여유를 줘도 다른 길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 작게 울먹이기 시작했다. 애써 울음을 삼킨 그는 "총, 칼을 들고 은행돈을 훔쳐야 꼭 강도가 아니다" 며 "지금 나라가 노점상들에게 도둑질을 하게 만들고 있다" 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계천 복원 공사에 맞춰 서울시로부터 받은 홍보문이나 설명문조차 없었다며, 유일하게 받은 건 강제 철거 통보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신씨는 "어떻게 아무런 대책 없이 노점상들은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느냐"며 끝내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는 "차라리 나 한 사람 죽어 해결될 수 있다면 정말 죽기라도 하겠다" 며 "너무 답답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또 신씨는 "그간 내가 어린 자식을 남에게 맡겨두고까지 노점을 위해 땀흘렸던 인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냐" 며 "한국에서 살려면 무조건 강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 김은성

아래는 강제철거 직전까지의 청계천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것이다.

29일 저녁 7시
강제 철거 앞둔 청계천 8가 '폭풍전야'

서울시는 30일 밤을 기점으로 청계천 일대 1500여점의 노점상들에 대한 강제 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전국노점상연합 및 관련 단체 3000여명이 청계8가에서 강제 철거에 반대하는 투쟁 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5일 노점상과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하여 노점상은 단속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어기고 청계천 노점상들에게 '동대문운동장과(물품보관소 및 주차장으로 쓰이는 동대문 축구장) 중랑천 둔치 등의 임시시설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하나로 청계천로의 보도와 차도 정비공사를 하고 있는데, 상가의 상품 무단 적치, 불법 노점 등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공사도 늦어지고 있다는 게 서울시의 변.

그러나 노점상들은 2년도 채 안돼 헐릴 동대문 축구장 이전에 강하게 반발을 표하고 있다. 노점상들은 △미처 장사 터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폐쇄 공간이다 △2년 후 마땅히 옮겨갈 곳이 없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서울시의 어떤 대책도 없다 △1500여 명 중 단 400여 명만이 선별돼 옮기는데 그 기준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전을 반대했다. 이에 강제 철거를 집행하려는 서울시와 노점상들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대규모 충돌 사태가 우려된다.

어스름이 깔리자 청계천 8가엔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급하게 장사를 마감한 노점상들은 굳은 표정으로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저녁 식사까지 일찌감치 마친 노점상들은 각종 쓰레기 및 골동품 등으로 청계천 8가 라인 전역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결사저지 의지를 다지고 있다. 또 쇠사슬과 자물쇠로 덮개가 쓰여진 노점들을 단단히 여미는가 하면 노점상들의 각종 차량들로 노점 일대를 철두철미하게 막아놨다.

이를 지켜보는 청계천 점포 상인들의 마음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 결의를 다지고 있는 노점상인들을 지켜보며 청계천 상인들도 "그래도…, 설마하니…." 라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한 낱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청계천 8가엔 투쟁을 준비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노점상인들의 담배 연기와 한숨 소리로 가득했다. YTN은 한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 내일 아침 서울시가 철거반원 3천 여명을 동원해 청계천 일대 노점 강제철거에 나설 것이라 보도했다. 이를 위해 42개 중대 4000여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30일 새벽 0시
전국 노점상 1500여명 운집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a 29일 밤. 청계천 노점상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29일 밤. 청계천 노점상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 김진석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전국노점상연합(이하 전노련) 및 관련 단체 노점상 1500여명이 청계천 8가에 모여 결의를 다졌다. 저녁 7시부터 설치된 바리게이드가 점점 더 길게 그리고 높이 쌓여간다. 타이어, 널판지, 냉장고, 의자 등 각종 고물로 쌓인 바리게이드가 차선을 점령해 2차선 도로를 1차선으로 만들었다. 집회장 곳곳에는 추위를 달래기 위한 모닥불이 피어올랐고 차도가 1차선으로 좁혀지자 교통이 혼잡해졌다.

“투쟁으로 투쟁으로 청계천을 쟁취하자!”
“투쟁으로 투쟁으로 생존권을 사수하자!”
" 투쟁없이 쟁취없다! 투쟁으로 승리하자!“

추위와 어둠의 적막을 깨고 노점상들의 힘찬 함성과 박수 소리로 연대사가 시작됐다. 연대사는 전노련 부의장 김인수(51)씨,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정광훈(65)씨, 중구노점상지역의장 홍경희(47)씨 등으로 이어졌다.

김인수(전노련 부의장, 51):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청계천 복원 개발과 아울러 황학동 벼룩시장을 새롭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서울시는 10월 16일 인도 축소 공사를 함에도 청계천 노점상을 인정할 것이라고 한 우리와의 약속을 어겼다.

서울시와 정부는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최소 생계 보장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죽지 않는 한 청계천에서 모든 삶을 끝내고 싶다. 이는 단순히 청계천 노점상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 노점상들의 문제이다."

정광훈(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65): “이미 정부는 이기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여러분은 이미 이긴 것과 다름없으며 결코 폭도가 아니다. 오늘 과정을 통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얻어가길 바란다. 불량정권에 대한 오늘의 투쟁이 반드시 승리하길 바란다.”

홍경희(중구노점상지역의장, 47): "우리는 청계천 복원 공사와 인도 축사 공사를 통해 이미 두 번이나 양보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노점상을 인정하겠다’는 약속을 번번이 어겼다. 반드시 우리는 사기꾼 이명박과 썩어빠진 세상을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다.”

청계천 곳곳엔 '청계천 공사 빌미 삼은 빈민 탄압 중단하라!', '서울시는 졸속행정 중단하고 도시서민 생존권 보장하라!', '생계대책 수립한 후 생태복원 실시하라!' 등의 깃발과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IMF와 빚 보증으로 뇌졸중을 얻었다는 박순임(58)씨는 "구호조차 외칠 기력은 없지만 앉아있는 것만으로 노점상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없는 사람들을 왜 자꾸만 못살게 구느냐"며 "도대체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이렇게 짓밟혀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이었다.

한편, 청계천에서 십여 년 간 장사한 곽세현(44)씨가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개발이 청계천의 주인인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결국은 우리 같은 서민이 아닌 있는 사람, 투자를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개발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노점상도 엄연히 자신의 땀으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이다. 왜 같이 살 궁리는 안하고 무조건 철거만 하려 드는가?"

그는 "청계천은 다름 아닌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며 "서울시가 생존권은 물론 청계천 노점상으로서의 자부심 마저도 앗아가려 한다" 고 덧붙였다. 또 "청계천 노점상들 중 25%가 장애인 혹은 농촌에서 올라 온 사람, 전과자 등으로 사회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돕지는 못할망정 왜 무조건 잘라내려고만 하냐?"고 따지듯 반문했다.

한편, 전노련 사무처장 최인기(38)씨는 “정부와 어떤 물리적 충돌이 있더라도 목숨을 걸고 총력 투쟁을 벌일 것이다”라며 다짐했다.

청계천 8가에서 결의를 마친 이들은 청계천로변 양쪽 입구인 6가와 9가 쪽으로 팀을 나눠 대열 정비를 가다듬었다.


30일 새벽 05시
밤사이 기온은 뚝 떨어지고... 새우잠 청하는 노점상인들

아스팔트와 쇠파이프가 부딪치는 묵직한 마찰음이 새우잠 청한 노점상들을 깨운다. 밤사이 뚝 떨어진 기온 덕에 장갑과 수건 등으로 무장한 노점상 200여명이 쇠파이프를 들고 청계천 6가 청평화 시장 앞에 집결했다.

그들은 쇠파이프로 땅바닥을 두드리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8시에 집행될 철거 반대 투쟁 결의를 다졌다. 곳곳의 모닥불은 꺼지고 다산로의 청계도로 공사도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주위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새벽 3시경. 청계천 일대는 '폐허'를 방불케 할 만큼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부서진 공사 안내 표시판과 고물상들의 잔해들이 차도를 전부 점령했다. 철거 진입을 막기 위해 싸놓은 고물상들이 모닥불의 연료가 되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온이 점점 떨어질수록 모닥불은 더 크게 피어올랐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불 앞에서 몸을 녹이다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취재 공세에 지친 노점상들은 쉬이 인터뷰조차 응하지 않았다.

덮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불로 둔갑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말소리 대신 잔기침 소리가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한편, 청계천 6가 앞 청평화 시장의 다산로에선 육중한 소음을 내며 청계천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를 지켜본 노점상들은 "하긴 재네들도 먹고 살아야지…." 라는 말은 던지며 새우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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