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양이 기르는' 사람한테 시집가야 돼?"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의 사랑이야기(10)

등록 2003.12.02 10:43수정 2003.12.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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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어제 저녁 우리집 다섯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은빈이 말 한마디로 뒤집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내가 밥을 먹던 도중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야, 너희들 이 다음에 장가가려면 고향이 농촌인 아가씨를 색시로 택해. 알았지?”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인가? 애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아내가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농촌출신 여자가 일도 잘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어른 공경도 잘한단다.

거기에다 집안이 농촌이면 득 보는 게 많다는 것이다. 먹을 식량이며, 양념거리, 겨울김장, 철따라 싱싱한 채소며 다 얻어다 먹을 수 있으니 한마디로 수지 맞는 장사라는 말이다.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말이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아내가 웃자고 한말이다.

겨울김장이 끝났으니 하는 말이다. 요즘은 옛날처럼 겨울김장을 많이 하지 않는다. 김장하는 일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돈주고 김치를 사 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시골은 그렇지 않다. 한 집 당 배추 200~300포기하는 것이 예사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살아도 겨울김장을 그렇게 많이 한다. 많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식들에게 다 나눠주기 위해서이다. 자식들이 출가해서 나이가 40~50대가 넘었는데도 겨울김장을 다 해서 준다. 그게 부모마음이란다.


겨울김장만이 아니다. 고춧가루, 마늘, 양파, 당근, 고구마, 감자 고추장, 된장, 참기름 등등 허리 굽은 부모가 애써 키워 생산한 것을 자식들에게 퍼준다. 조금도 인색함이 없다. 그래서 늦가을 철이 되면 배 터에는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식량과 김장을 가지러 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차량행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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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식량을 대주고, 김장을 해주고 양념거리를 주는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어느 때는 조금 너무한다 싶을 때가 있다. 부모님들은 한여름 뙤약볕에서 더위와 씨름을 하며 두더지같이 일을 하느라 고단한 몸 제대로 한번 쉬어 본 적도 없고, 사지육신이 골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는데….


자식들은 부모님 걱정은 없이 주말에 승용차 타고 내려와 바리바리 챙겨서 그 다음날 올라간다.

시골에서 오래 살다보면 보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내가 저녁밥을 먹다가 속이 상한 김에 애들에게 한마디 농을 한 것일 게다. 이 다음에 장가가게 되면 꼭 고향이 시골인 여자를 신부로 선택하라고. 그런데 옆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던 막내 은빈이가 끼어든다.

“그런데 엄마! 그럼 나도 고양이 기르는 남자를 신랑으로 얻어야 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30초 정도가 지난 다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제각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을 ‘고양이 기르는 사람’으로 혼동을 한 모양이다. 한참동안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나 아내의 말과는 다르게 오늘의 농촌현실은 고향이 시골인 사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교회 교인들 가정에 시집 장가 못간 처녀 총각들이 수두룩하다. 거의 30이 훌쩍 넘었다. 그게 제일 큰 걱정거리이다.

‘고향이 시골인 총각, 처녀’를 신랑이나 신부로 맞는 사람은 그야말로 수지맞는 일이다. 내가 은빈이게 말해주었다.

“그래 은빈아! 너는 이 다음에 꼭 고향이 시골인 사람한테 시집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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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아내는 신이 나서 은빈이에게 고향이 시골인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좋은 점을 설명한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은빈이가 엄마 얘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듣는지 모른다. 벌써 시집을 가고 싶은 것일까?

은빈이가 시집을 갈 20년 후, 농촌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람은 살고 있을까? 은빈이가 시골출신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될 것인가? 아무것도 장담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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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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