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과 발룻은 민족 고유의 맛일 뿐이다

필리핀 마닐라 3박4일여행기(6)

등록 2003.12.03 05:58수정 2003.12.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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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안에서 달콤쌉싸름한 추억의 맛을 되새기다

a 필리핀의 과일가게, 진열대에 가득한 듣도보도 못한 열대과일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진 촬영도 못해서 사진을 빌릴만큼 과일 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필리핀의 과일가게, 진열대에 가득한 듣도보도 못한 열대과일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진 촬영도 못해서 사진을 빌릴만큼 과일 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 도브

초콜릿보다 달콤하고
과일보다 상큼하며
담배보다 끊기 힘들다는


사고는 싶은데
파는 곳을 알 수 없는
아! 사랑이여
원태연/<지루한 행복>


어메이징쇼가 끝난 후 허전해진 마음을 채울 건 없을까하는 생각에 근처 과일 가게를 들렀다. 사랑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있어 맛있는 미각을 느끼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받은 행복인가?

과일가게 앞 진열대에 가득 진열된 먹음직스러운 과일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역시 필리핀은 열대 국가답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열대 과일들이 부지기수이다.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라면 망고라 할 수 있는데 이밖에도 두리안, 망고스틴, 람브딴, 파파야, 코코넛, 바나나, 파인애플 등등 이름 모를 남국의 과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a 열대과일 람브딴, 꼭 빨간색 성게같이 생긴 표면을 비틀면 속에 하얀색의 달콤한 과육이 나온다.

열대과일 람브딴, 꼭 빨간색 성게같이 생긴 표면을 비틀면 속에 하얀색의 달콤한 과육이 나온다. ⓒ 김정은

자연스럽게 태국에서 너무나 맛있게 먹어 인상깊었던 과일 람쁘딴에게로 가장 먼저 손이 갔다. 빨간색 성게 모양의 가운데를 약간 힘주어 비틀어 돌리면 쏙 나오는 하얀 속살의 달콤한 과육의 맛, 한 입 베어물고 오물오물하니 혀 안에서 깔깔한 씨의 촉감이 느껴진다.


그래, 이 독특한 느낌. 태국여행 때 이 람브딴을 처음 맛보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빨간색 털이 북실북실 나온 모습이 그다지 맛있게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껍질을 벗겨 먹어본 그 하얀 속살의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은 처음 접하는 맛이었고, 난 그 맛에 폭 빠져 밤새도록 람브딴 까먹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몰랐다.

그런데 까먹기가 좀 불편한 게 흠이란 생각을 했는데 우연히 안마를 받다가 태국의 안마사가 람브딴 하나를 꺼내더니 너무나도 손쉽게 속살이 쏙 나온 람브딴을 나에게 먹어보라며 권하는게 아닌가?


그때서야 난 약간 위쪽에 힘을 주어 비틀어 돌리면 손쉽게 뚜껑이 열리며 속살이 보여지는 람브딴 먹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때의 그 추억을 아련히 되살리다 보니 이 때가 아니면 이런 싼 가격에 열대과일 먹기는 어렵다고 중얼거리며 마치 못 먹어보던 것 한풀이라도 하듯 람브딴은 물론이고, 망고스틴이며 망고 등등 과일이란 과일을 있는대로 사 가지고 와서 과일 껍데기가 수북할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석류같은 껍질을 까면 하얀 마늘 쪽 같은 과육이 나오는 망고스틴의 새콤달콤함도 별미였고, 필리핀의 대표적인 과일인 망고도 신선했다. 그런데 열대과일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으로도 도저히 친하지 못한 과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구린내 나는 과일, 두리안이다.

내가 처음 두리안을 접한 건 아주 오래 전 홍콩에서였다. 슈퍼마켓에서 맛있고, 비싼 열대과일이라 하여 잘라 파는 한 덩이를 멋도 모르고 사 가지고 친구 집에 와서 먹으려고 풀었는데 그 때 그 오묘한 냄새(좋게 말해서 오묘한 냄새나 막말로 하자면 썩는 구린내)가 어찌나 나든지 한 입 베어 물다가 먹지 못하고 버린 처참한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 바람에 그 후부터 두리안만 보면 십리밖으로 달아날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내가 두리안의 참 맛을 알지 못해서라며 열대과일 헛 먹었노라고 측은해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두리안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맨 처음 그 처참했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필리핀에서 만난 과일 람브딴은 내게 여전히 아름다웠던 예전의 추억을 생각나게 한 반면, 두리안은 예전의 당황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할만큼 예전의 그 맛과 별 차이가 없었다.

과일에의 기억이 생생한 것처럼 과일가게에서 향긋한 과일 향기를 맡으니 향기는 어느덧 꽝꽝 숨겨두었던 내 추억의 고리를 풀어놓았다.

7000만(?) 필리피노의 기호품, 발룻과 졸리비

우리나라에 4000만의 밤참거리로 메밀묵과 찹쌀떡이 있었다면 7000만 필리피노의 간식거리로 매우 유명한 음식은 바로 발룻과 토종 패스트푸드 점 졸리비(jolibee)이다.

a 반부화된 오리알을 삶은 발룻, 보기에는 끔찍해도 우리의 메밀묵, 찹쌀떡과 같은 필리핀 사람들의 간식이다.

반부화된 오리알을 삶은 발룻, 보기에는 끔찍해도 우리의 메밀묵, 찹쌀떡과 같은 필리핀 사람들의 간식이다. ⓒ 김정은

발룻은 필리핀 남성들이 즐겨먹는 간식거리인데, 오리알을 부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리가 되다만 오리알을 삶아서 파는 음식이다. 난 비록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았지만 마닐라의 중산층이 사는 동네면 밤늦은 시간에 항상 뜨거운 상태를 유지한 채 "발룻", "발룻" 하며 팔러 돌아다닌다니 영락없는 우리네의 옛날 메밀묵과 찹살떡 장사와 같지 않은가?

문득 친근감을 느끼며 직접 본 발룻의 모양은 껍질을 깨기 전에는 그냥 보통 달걀 삶은 것처럼 보였지만 껍질을 까기 시작하니 어떻게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엽기적이고 징그러웠다. 이처럼 끔찍하게 생긴 것을 그 속에 생긴 물까지 쪼로록 마시면서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문득 주위에서 "그냥 삶은 달걀 맛이네", "맛있네", "고소하네"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또 한번 머리를 큰 망치로 한 대 크게 맞은 것처럼 멍했다.

"아! 또 나의 못된 선입견이란 망령에 사로잡혔구나, 우리가 보신탕을 먹는 거나 이 사람들이 반 부화 오리알을 먹는거나 똑같이 그 민족 특유의 기호일진대 타인의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머릿속으로는 크게 반성하면서도 입으로는 발룻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기에 결국 먹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합리화시키기로 했다.

"보신탕을 먹는 거나 오리알을 먹는 거나 그 행동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것들을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먹는 자유도 있다면 먹지 않을 자유도 있다. 내가 그것들을 먹는 사람들의 특유의 기호를 이해하듯 그네들이 그것들을 먹지 못하는 내 특유의 기호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a 졸리비의 마스코트인 꿀벌, 상류계층이 아닌 일반 필리핀 아이들의 꿈은 바로 졸리비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것이라 한다.

졸리비의 마스코트인 꿀벌, 상류계층이 아닌 일반 필리핀 아이들의 꿈은 바로 졸리비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것이라 한다. ⓒ JFC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구석구석 다람쥐 모습을 한 것 같은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알고보니 그 간판은 다람쥐 모습이 아니라 막강한 맥도날드조차 이곳에서는 맥을 펴지 못하게 기를 죽여놓았다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토종 패스트푸드점 졸리비의 마스코트인 꿀벌의 모습이다.

1975년에 조그만 아이스크림 체인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계속적인 성장 속에 Jollibee Foods Corp(JFC)를 설립하고, 햄버거 체인과 피자와 파스따 전문점인 그리니치(Greenwich), 오리엔탈 푸드체인 쵸킹(Chowking)과 프랑스식의 베이커리 카페 전문점인 Delifrance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 본사를 둔 Tokyo Teriyaki House의 주식 90%를 획득, 이를 기반으로 삼아 전 세계 주요도시에 15개의 체인점 오픈 계획 등 세계로 진출 의욕을 이루어가고 있는 회사인데, 지난번 외신보도에 의하면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랭킹에서 삼성과 1,2위 각축을 벌이는 기업이 바로 이 '졸리비(Jollibee)'일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패스트푸드로 성공한 이 회사의 저력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필리핀 사람들의 열정적일 정도의 국민적인 지지와 사랑이 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현지 필리핀 사람들의 경제수준으로 그렇게 싸지 않지만 빈민가의 사람들 또한 하루 벌이를 몽땅 이 졸리비 음식을 사먹는 것으로 탕진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과연 대단한 사랑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구수한 육수의 맛 불랄로(Bulalo)

a 따까이따이 근처의 불랄로 음식점

따까이따이 근처의 불랄로 음식점 ⓒ 김정은

a 소의 다리살을 고아 만들었다는 불랄로, 고기를 찍어먹는 매큼새콤한 간장의 맛이 개운하다.

소의 다리살을 고아 만들었다는 불랄로, 고기를 찍어먹는 매큼새콤한 간장의 맛이 개운하다. ⓒ 김정은

따까이 따이 근처에 가다보니 이상한 이름의 음식점 간판이 많이 보인다. 불랄로(Bulalo)라는 필리핀 고유음식 전문점이란다.

불랄로라는 발음을 얼핏 들으면 우리말의 '불난로'라는 발음으로 듣기 쉬워 느낌에 전골요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추측이 비슷하게 맞은 것 같아 오히려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소의 다리 살을 푹 고아 만든 것 같은데, 삶은 다리 살을 잘 발라 고기는 필리핀 고추를 다지고 라임 즙을 넣은 간장에 찍어먹는데, 고기 살은 매우 질겼지만 보통 편육 맛이고 간장 자체가 개운한 맛이 나와 먹을 만했다. 국물 또한 우리나라 고기 육수 맛이 난다고 나 할까?

밥과 함께 더불어 나오는 쌀 국수 볶음 같은 음식도 김치 생각은 났지만 먹을 만했다. 그렇지만 정작 난 음식보다 그 질긴 다리 살을 잘 들지도 않은 칼로 깨끗하게 골까지 발라주는 그 식당 종업원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필리핀의 음식은 중국, 스페인,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채롭고 복합적인 맛이 난다고 하는데, 한국인 입맛에도 상당히 맞는 편이라는 소리가 헛소리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역시 어디를 가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음식이요, 가장 고생하는 것도 음식 아닐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낯선 이국의 음식 메뉴 판에서 나름대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 하나를 골라 그 음식이 성공했을 때 그 뿌듯하고 짜릿한 느낌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아무도 못 찾은 보물을 찾아낸 느낌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고른 음식이 전혀 먹을 수 없을 만큼 후회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비록 먹지 못해 배는 고프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색다른 추억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맛있는 음식을 끊임없이 찾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 멋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하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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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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