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찍은 사진김강임
특히 이중섭은 1951년 36세 이해초 가족과 부산을 떠나 제주도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러 날 걸어서 서귀포에 도착, <피난민과 첫 눈>은 이때의 체험을 그린 것이다.
서귀포에서 만난 주민이 방을 내주어서 안착하게 되었으며, 피난민에게 주는 배급과 고구마로 연명하는 한편, 게를 잡아 찬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장차 벽화를 그리기 위해 갖가지 조개를 채집하여 솜으로 싸 두고, 선주에게 사례하기 위해 6폭의 병풍 형식의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다.
부산에서 열린 월남작가전에 출품하기도 했고, 12월 다시 부산으로 가다. 오산학교 동창을 만나 범일동에 있는 판자 집을 얻게 되었다.
어려움이 계속되어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곧 일본의 친정으로 갔다. 부인과 두 아들에게 보내는 그림편지. 박고석, 한묵 등과 기조 동인을 결성하고 르네상스 다방에서 전람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