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이웃인가 이방인인가

8일부터 대대적인 단속... 단속추방에 맞서 한달째 농성

등록 2003.12.08 13:08수정 2003.12.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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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합법화한다고 해놓고 강제추방과 인간사냥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쓰다 버리는 걸레입니까? 우리도 인간입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하산(25·방글라데시)은 "이제 어느 정도 기술도 익히고 한국말도 배워 제대로 일할 만하니까 불법체류라 하여 나가라고 한다"며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배타적 민족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a 지난 10월 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행진 도중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비두. 경찰은 이날 비두의 윗옷을 강제로 벗기고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수갑을 채워 붙잡아 갔다.

지난 10월 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행진 도중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비두. 경찰은 이날 비두의 윗옷을 강제로 벗기고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수갑을 채워 붙잡아 갔다. ⓒ 평등노조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 도입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이주노동자가 2003년 4월 현재 37만명을 넘어섰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들의 생활은 그러나 365일 끊이지 않는 단속추방의 공포와 장시간 노동, 저임금으로 노동착취에 멍들고 있다.

이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국내 노동자와 부당하게 가르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우리 내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러한 환경 요인 때문이다.

우리 내부에 깊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이러한 배타적 민족주의를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박노자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으로 진단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이 가져온 일상의 차별과 패거리문화 같은 전근대적 유물을 버릴 것을 충고했다.

세계자본이 풀뿌리 사회를 파괴함으로써 이주노동자 발생


최근 전 지구 차원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는 한 강연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자본은 평등한 관계를 깨뜨리고 차별을 만들기 위해서 노동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개별 노동자 간에 끊임없이 경쟁과 분열을 부추기고, 그 결과 차별을 하고 노동 통제를 용이하게 한다.


강 교수는 이주노동자의 발생배경에 대해 "거대 자본에 의한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자립적인 생활시스템이 깨지게 되는 것"이라며 "자기나라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활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은행 같은 세계자본이 풀뿌리 사회를 파괴함으로써 풀뿌리 민중들이 자기 고향을 제 발로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는 말이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계시스템 허물지 않으면 우리 모두 희생자"

a 1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10월 12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투쟁결의대회

1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10월 12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투쟁결의대회 ⓒ 석희열

그는 특히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 "우리 사회에는 '삼중의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종주의를 대부분 사람들이 묵인하거나 부인하는 '자기 기만'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삼중의 인종주의란 기업가에 의한 경제적 차별, 한국인 노동자에 의한 사회적 차별, 정부에 의한 제도적 차별로 복합적 차별주의를 말한다.

강 교수는 "이러한 삼중의 인종주의가 해체되고 지양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강화되는 것은 한국사회 전체가 인종주의적 현실 자체를 도외시하거나 묵인 또는 부정하는 자기 기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 얼마나 되나?

법무부는 지난 1일 9월부터 11월까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중 노동부의 취업확인을 받은 외국인에게서 합법화 신청을 받은 결과 대상자의 80.9%인 18만4199명이 합법화 조치를 마쳤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 수는 대략 37만명에서 4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을 세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첫째는 합법취업자로서 교수나 강사, 기술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약 3~4만명), 둘째는 산업연수생, 연수취업자, 해외투자기업 연수생 같은 연수생노동자(약 6만명), 셋째는 합법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노동자(약 10~12만명)와 등록노동자(18만4천명)다.

18만여 명이 법무부의 합법화 조치로 등록을 마침으로써 2003년 12월 현재 미등록노동자(법무부에서는 이들을 불법체류자라 부른다)는 10~12만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전체 이주노동자의 최고 32%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싱가포르, 대만의 경우에는 불법체류율이 2~7%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산업연수생제도에 따른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국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고 하루 평균 12~13시간, 한달 평균 276시간을 일하면서도 임금은 7만원에서 21만원 밖에 받을 수 없는 제도적 모순과 정부의 근로감독 소홀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산업연수생들은 이러한 혹독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공장으로 도망쳐 연수생 신분을 버리고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연수생 신분에는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이 불법체류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적용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의 미숙함이 이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다는 반증이다. / 석희열
또한 강 교수는 "체불임금과 산업재해, 인권침해로 고통받지 않은 이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비인간적 대우와 멸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서 "하루 220~250명의 산재노동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하다 잘린 손가락이 해마다 트럭 두 대 분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라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3D업종이라도 생활에 꼭 필요한 경우, 국가가 지원을 해서라도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부당한 차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서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며, 그래야 자본에 의한 지배 메카니즘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또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계시스템을 허물지 않고는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해 개인적인 동정심이나 연대감을 넘어서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억압의 사슬을 깨뜨려야 한다"며 "이는 형편이 나은 우리가 도와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과 우리는 거대한 차별과 위계의 구조 속에서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사회의 '말없는 공범관계' 이제 청산해야"

강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노동관계법으로 외국인의 고용 취업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비판하고 자유로운 작업장 이동권까지 보장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고용허가제 시행을 계기로 그간 우리사회의 '말없는 공범관계'가 철저히 청산되기를 소망한다"면서 "이제 더 이상 시기상조론이나 비용상승론, 노사불안론 같은 고리타분한 '자기 기만' 논리가 나와서는 안되며, 한 걸음 더 나가 노동허가제 도입으로 '노예 경영'의 마지막 잔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3년 12월 현재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10만에서 12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와 경찰의 합동단속이 시작된 이후 이들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대부분 단속의 칼날을 피해 지방으로 숨거나 명동성당과 교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재중동포 5500여 명은 지난달 법무부에 냈던 국적회복 신청이 거부되자 곧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단속추방에 반발해 25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2400여 명은 한국 정부에 국적회복을 요구하며 16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속추방정책은 쇠사슬…지난 11월에만 4명 자살

정부는 내년 8월 1일부터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 실시하는 외국인고용허가제 시행에 앞서 3년 이상 4년 미만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업장과 거주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단속을 펼쳐 강제로 추방한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 360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은 지난달 17일부터 열흘 동안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1223명을 적발했다. 이들 중 3년 이상 4년 미만 불법체류자는 외국인보호소에 일시 수용했다가 전원 강제출국 조치한다.

a 지난달 15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강제추방 반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24일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8일 오후 단속추방 반대 항의집회를 열 예정이다.

지난달 15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강제추방 반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24일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8일 오후 단속추방 반대 항의집회를 열 예정이다. ⓒ 평등노조

이런 가운데 지난달 11일 이후 보름 사이에 정부의 단속추방 공포에 질린 외국인 노동자 4명이 정부의 이주노동정책에 항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또 다시 이주노동자 문제가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서선영 선전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이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라며 "이는 고액의 브로커 비용을 요구하는 외국인 인력정책과 정부의 강제추방이 맞물려 만든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추방 중단 ▲고용허가제 및 산업연수제도 폐지 ▲노동허가제 도입 ▲ 모든 이주노동자 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연행자 석방 ▲노동3권 및 노동비자 보장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편 법무부와 경찰은 오늘(8일)부터 오는 19일까지 토·일요일을 제외한 열흘 동안 2차 합동단속을 벌일 예정이다. 정부의 합동단속과 강제추방을 둘러싼 인권유린과 선별 구제에 따른 형평성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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