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 금감원 등 정부 책임져야 한다

[대안칼럼-36] 카드위기 2 - 카드시장에서 자유방임주의의 승리

등록 2003.12.09 12:47수정 2003.12.1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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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 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LG 카드의 유동성 위기로 불거진 ‘금융 대란’에 대해 신용카드 거품 원인과 정부 부처 대응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이찬근 교수(인천대), 정승일 박사(대안연대 정책위원)가 공동으로 쓴 두 번째 글로 정부의 무분별한 카드 정책에 대한 비판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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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과 2000년 초에 재정경제부는 내수도 부양하고 세원도 확대하려는 취지에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 70만원 규제 폐지(99년 5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 도입(99년 8월), 기업접대비의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2001년 1월), 카드영수증 복권제(2001년 1월) 등의 정책을 통해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였다.

정부의 이 같은 신용카드 장려책들 모두가 오늘날의 신용카드 연체율 확대를 낳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일부는 기업투명성 및 세무투명성 확대에 기여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의 폐지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카드발 금융위기 위험을 태동하게 하고 수수방관하게 만든 제도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어떤 논거에서 그것을 추진했는지를 반드시 따져 보아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맥킨지 보고서가 이미 카드대출 규제를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맥킨지 컨설팅, 그리고 그 배경에 포진해 있는 IMF와 세계은행은 금번 카드 위기에 대해 도덕적, 정신적 책임을 져야 한다.

카드규제 완화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 규제개혁위원회

한편 정부 관료들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99년 5월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재정경제부가 '발의'한 카드사 현금서비스 규제 폐지안을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가 '의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재정경제부와 규제개혁위원회는 현 카드 사태를 일으킨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강봉균, 이헌재, 진념, 전윤철 장관으로 이어지는 재정경제부는 사실상 98년 이래 오늘날에 이르는 가계금융, 카드금융 폭증을 결과한 앵글로색슨형 금융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책임부서다. 또한 이헌재(현 김&장 고문)에서 시작되는 역대 금감위원장들 역시 카드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규제개혁위원회의 역할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카드규제 완화에 대한 최종 의결권을 가진 부서는 재정경제부가 아니라 규제개혁위원회였기 때문이다.

98년 4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설립되어 정부의 각종 규제를 “자유시장 경제”의 이름으로 완화, 폐지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규제개혁위원회(행정규제개혁위원회)는 경제 사회제도의 탈규제를 통한 앵글로색슨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조직이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권 보호 규제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노동권의 약화와 정리해고 허용을 요구했던 것도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이며, 의료관련 규제 폐지를 통해 다국적 제약사들의 횡포와 한국 의료계의 냉혹한 상업주의를 제도적으로 허용한 것도 규개위였다. 최근에는 스크린쿼터 제도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급진적 자유주의와 규제개혁

한국의 공병호, 김정호 등이 속한 자유기업원이 추종하는 자유주의자 하이에크의 경제사상에 따르면 모든 (정부)규제는 관료들의 불필요한 간섭과 정경유착을 낳음으로써 비효율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모든 규제를 없애고 정부간섭을 일체 배제하는 순수한 “자유방임 시장경제”를 창출하게 되면 경제는 최적의 효율성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카드위기가 일어나건 금융위기가 일어나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자유로운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금도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은 규제개혁위원회와 자유기업원을 앞세워 “영업의 자유”를 방해하는 스크린쿼터, 노동권 보호규제, 환경관련 법규 등 각종 규제를 폐지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물론 국내 재벌만이 아니라 외국자본 역시 스크린쿼터, 환경규제, 노동권 보호 등에 관한 한 자유기업원과 완전히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드사 영업 규제완화의 경우 LG카드, 삼성카드를 주축으로 하는 여신업전문금융협회와 전경련이 적극적으로 재경부 등에 로비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99년 5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이전까지 10여 년간 유지되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를 폐지함으로써 카드사들이 자기판단 하에 무제한으로 카드대출을 늘리는 것을 허용하였다.

카드 확대가 한국금융의 미래라는 맥킨지 류의 주장이 “시대의 대세”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약속하던 그 시절에 그 누가 그것을 거부했겠는가? “합리적 기대”를 가진 신용카드사라면 당연히 신용카드 확대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었다. 분명 “시장은 합리적으로 작동”하였다.

카드여신 완화 - 카드발 위기의 태동과 전개

문제는 카드사들의 자기판단 능력 즉 고객신용평가능력이 확충되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고삐를 풀어놓았다는데 있었다. 리스크 관리라는 기초학습도 없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풀려난 가출 청소년과도 같은 신용카드사들은 높은 마진의 현금서비스가 고리대금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이 높다는 것을 알고는 마구 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LG, 삼성 등 후발 카드사들은 길거리 모집 등을 통해 신규 카드 시장을 선점해 갔다. 맥킨지와 블룸버그,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해, 그리고 이헌재-강봉균 장관에 의해 “한국금융을 이끌 미래 지도자”로 선정된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의 국민카드 역시 마찬가지로 카드영업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카드 남발을 제대로 감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99년과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벤처 호황에 따라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영미형 시장개혁의 성공”을 구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2000년 여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정부는 “소비 견인형 경제성장”을 경제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KDI와 금융연구원 등 국책, 민간 연구소들이 나서서 “소비는 미덕”이며 “소비 견인형 성장이야말로 선진국형 성장”이라는 주장을 폈고 모든 경제 언론들이 맞장구를 쳤다. 카드여신 및 가계여신 규모가 선진국, 즉 영국과 미국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식의 주장이 언론을 주도했다.

보수와 개혁을 막론하고 경제의 앵글로색슨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대세에 맞서 카드여신 한도 규제를 재도입하자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다만 카드여신 감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금융감독위원회만이 길거리에서 남발되는 카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최소한 가두모집 행위만이라도 금지시키려고 시도했을 뿐이었다.

길거리 카드모집 규제와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

정부는 신용카드 남발이 위험스런 양상으로 확산되자 2001년 들어 뒤늦게 길거리 회원모집 규제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당시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가두모집 규제조치를 만들어 규제개혁위원회(당시 공동위원장 강철규 현 공정거래위원장)에 넘겼으나 규개위는 ‘반 시장적 규제’라며 반대했고 길거리모집 금지는 그로부터 1년 뒤인 2002년 5월이 돼서야 시행됐다.

그렇다면 오늘날 재벌개혁과 재벌규제에 앞장서고 있는 강철규 교수가 카드사 영업규제 폐지를 공동위원장으로서 결정한 사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것은 강철규 교수가 대변하고 있는 시카고 학파의 경제사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카고 학파의 경제사상 역시 정부규제와 정부개입은 정경유착과 모랄 해저드, 비효율성의 원천이라고 본다. 사실상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이 시작한 오늘날의 신보수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공동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자유기업원이 추종하는 자유주의자 하이에크의 경제사상과 시카고 학파 사상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점은 오늘날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경련 및 자유기업원과 마찬가지로 스크린쿼터 폐지,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금지 폐지를 요구하면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자유기업원과 강철규 교수는 재벌개혁에 관해서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벌 문제에 관한 한 자유기업원의 입장은 매우 자가당착적이다. 왜냐하면 한국 재벌의 성장과정에서 1970년대, 80년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정부개입과 정부보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가당착적인 자유기업원에 비해 강철규 교수의 입장은 훨씬 더 논리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강철규 교수 등 재벌 규제론자들은 과거 재벌의 성장과정 전체를 정부개입 및 정부규제의 덕택으로 인한 “비효율적 정경유착”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정부특혜에 바탕을 둔 비효율적, 비시장적 기업조직이며 따라서 약화, 해체되어야 한다.

오늘날 시카고 학파의 미국 금융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아닌 시장 즉 주식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저해하는 기업 시스템, 예컨대 재벌체제를 약화, 해체시킴으로써만 최적의 효율성을 구현하는 “이상적 주식시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드시장에서 자유방임주의의 승리... ‘보이지 않는 손’은 이성적?

2001년 여름, 길거리 카드모집 불허조치가 규제개혁위원회의 거부로 시행 불발되면서, 카드사들의 영업을 제어하는 마지막 제도적 고삐가 풀려 버렸다. 정부의 규제와 금융감독이라는 “보이는 손”의 고삐에서 풀려난 카드사들은 이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감독에만 맡겨지게 된 것이다.

카드금융 시장에서에서 자유방임주의가 승리함에 따라 아담 스미스의 위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자유시장”에서 작동을 개시했다. 관료와 금융시장, 재벌과 시민단체에 뿌리내린 “자유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의 신봉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개혁된 한국금융시장이 효율적 선진금융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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