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언론 '최병렬 단식' 비판여론 모르쇠

<참언론 참소리 36>국회 파행 책임 불구,한나라당 입장만 대변

등록 2003.12.09 14:31수정 2003.12.1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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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10일간의 단식을 풀었다. "특검 거부 철회와 국정운영 방식 변화"를 내걸고 단식투쟁에 들어갔지만 '국회 재의를 통한 특검 통과'에 은근슬쩍 단식을 끝냈다.

이는 단식 전부터 이미 공개된 절차였지만, 굳이 단식에 국회 파행까지 거치면서, 더욱이 애초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난 상황에서 합의를 본 까닭은 무엇일까?

최 대표의 단식이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최근 실시된 몇 가지 설문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 대표의 단식 전 한나라당 지지율은 20% 이상으로 줄곧 1위를 유지했지만, 단식 후에는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난 3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민주당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왜 국회 정상화를 요구하지 않는가?

'국정 운영 파행', '다수당의 횡포'로 시민들로부터 냉대 받았던 최 대표의 10일간의 단식. 이 문제를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지역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시민들의 비판 여론보다는 한나라당 입장을, 한나라당 중에서도 강경파 입장을 주로 대변했다.

대구 <매일신문>은 노 대통령의 '특검 거부'와 최병렬 대표의 '국회 거부' 둘 다 잘못이라고 질책하면서도 국정혼란의 1차 책임은 대통령에게 전가했다(11월 26일자 사설 <대한민국 싸우지 마>, 11월 29일자 사설 <조 대표 출범, 정치복원의 계기로>).


몰상식적 행위(특검 거부)가 반이성적 저항(국회 거부)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언론의 일반적 특징이다. 대립되는 주장에 양측이 모두 틀렸다고 지적할 뿐 해결 방법에 대해 뚜렷한 처방을 제시하지 못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특검 결의는 국회, 거부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고, 합법적으로 재의결 절차가 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 새해 예산안과 각종 민생법안을 볼모로 '특검 거부권 철회'를 강요하는 제1야당의 주장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시민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이 네티즌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만1165명 가운데 61.6%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특검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특검 거부권 철회"에는 27%만이 동의했다.

인터넷 한겨레가 11월 26일부터 시작한 '라이브 폴'에서도 '최 대표의 단식과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전체 응답자 6907명 가운데 75.5%인 5215명(12월 1일까지)이 "국정을 내팽개친 다수당의 횡포"라고 응답했다. 국회 다수당이 법에 규정한 대로 재의결을 추진하는 대신, 국회를 공전시키고 단식 '투정'을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 파행'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 '국회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내용은 <영남일보> 사설 한 건이 전부였다.

10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난 의총: '강재섭의 힘'?

<영남일보> 12월 1일자 사설 <국회부터 정상화시켜라>는 "정치권의 관심이 경제 발전이나 국민 생활 안정이 아니라 내년의 총선에 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며 "총선만 생각하지 말고 민생을 생각하고, 정당만 생각하지 말고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신문 11월 26일
매일신문 11월 26일매일신문
11월 23일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할 경우 전면투쟁에 나서겠다"는 기본입장을 천명했고 이어 24일 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는 지도부의 '전면 투쟁' 방침을 전폭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의총에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수로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결의하고 10분만에 서둘러 해산했다. 대통령 탄핵, 의원직 총사퇴, 그리고 장외 투쟁 등 간단치 않은 사안들에 대한 결의치고는 너무 일사천리로 끝나버린 의총이었다.

이와 관련, 최 대표의 단식이 시작된 11월 26일, 매일신문은 <특검정국 '강재섭의 힘'>(26일자)이라는 기사에서 강재섭 의원이 "최 대표에 힘을 모아주자"고 주장하며 당내 이견을 잠재웠다고 부각시켰다. 중도파에 속하던 강 의원이 긴급 의총을 주도했던 모습이 매일신문 눈에는 자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신문이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한나라당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3일 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최 대표의 단식 나흘째인 29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특검 거부 철회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던 것이다.

최 대표 단식장 뒤에 걸린 현수막의 문구 "나라를 살리겠습니다"가 '한나라'를 살리자는 것인지, 아니면 '나(최병렬)'를 살리자는 것인지 분명히 하라는 네티즌의 쓴소리는 사이버공간 속에서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대구경북지역 의원 중에도 '강경 투쟁'에 문제를 제기한 의원이 있었다. 지난달 25일 비공개로 진행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안택수 의원(대구 북을)은 "조건부 등원 거부를 하자. 국회에 예산·법률안이 산적해 있는데 그것을 볼모로 노 대통령과 싸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노 대통령이 거부를 철회하는 것을 조건으로 등원 거부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주장은 지역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뀌는 민심, 바뀌지 않는 지역 언론

지역의 물갈이 논란이 뜨겁다. <영남일보>가 지난 10월 창간기념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민 65.3%가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 물갈이를 원하고 있고, 한나라당 경북도지부가 지난 28일 공개한 '경북지역 정치의식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1200명 중 53.3%가 현역의원을 교체하겠다고 답하고 있다.

한나라당 주장을 대변하며, 대구경북지역에 한나라당 1당 독재를 직·간접적으로 옹호해왔던 지역언론은 이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민심은 바뀌고 있지만, 민심을 대변해야 할 지역언론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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