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 쓰는 기쁨, 한국인은 모르나요?

[캠핑카 타고 유럽여행4] '나만의 자전거' 만드는 크로넨씨

등록 2003.12.10 13:57수정 2003.12.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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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암스테르담에서는 피해서 운전해야 할 것들이 유난히 많다. 버스와 트램,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

암스테르담에서는 피해서 운전해야 할 것들이 유난히 많다. 버스와 트램,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 ⓒ 권기봉

이런 교통 지옥이 없었다. 물론 서울에서 운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만. 한번이라도 이곳에서 차를 몰아 본 사람이라면, 특히 웬만한 화물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육중한 캠핑카를 몰아 본 이들이라면 암스테르담에서의 운전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도심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도로 상황은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운하로 둘러싸인 도심으로 진입한 후부터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차를 주차하고 싶은 곳은 바로 저기인데도 일방통행을 무시하고 달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제자리 돌기를 여러 번 거듭한 후에서야 애초 목적했던 곳에 멈춰섰다. 더군다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은 곤욕 그 자체이다.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도 문제였지만, 무슨 장애물은 그리도 많은지. 트램이나 버스, 오토바이는 그래도 양호한 편. 일방통행이라 마주 오는 차만 없었을 뿐이지, 끊임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보행자와 자전거에 골치가 아팠다.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우선인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건 너무했다. 별다른 신호없이 유유히 차도를 건너는 보행자들로 우리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게다가 약 80만 명의 인구가 산다는 암스테르담에 무려 60만 대가 넘는 자전거가 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철조각을 하는 목수

a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두었을까?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두었을까? ⓒ 박해얼

암스테르담에서의 운전이 비단 이방인들에게만 곤욕스러운 것은 아닌가 보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의 운전에 학을 뗄 즈음 도착한 지버그 캠핑장. 그 바로 옆 공터에 있는 허름한 작업실에서 만난 버로우 크로넨씨 역시 이곳에서의 운전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암스테르담 외곽의 캠핑장으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 양쪽으로 특이한 철 조각품들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철판에 구멍을 뚫어 특이한 형상을 한 것부터 그저 단순하게 용접을 해 만들어 놓은 듯한 것까지. 길 한쪽의 작업실로 보이는 비행기 격납고 비슷한 건물 주변에도 각종 철 조각들이 가득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학창 시절 조각을 전공했던 샘 형이 특히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누가 저런 걸 만들고 있을까.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하고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로 연신 중얼거리는 샘 형의 눈이 유독 빛나보인다.


a 암스테르담 외곽의 한 작업실

암스테르담 외곽의 한 작업실 ⓒ 박해얼

“그냥 만든 거예요.”

마침 그곳에서 용접 중이던 크로넨씨의 대답은 샘 형의 기대치고는 너무 간단 명료했다. 그는 일이 끝나는 금요일마다 이곳에 와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재미 삼아.

친구들도 일을 마친 후 가족과 함께 가까운 데라도 소풍을 가거나 테니스를 치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 철 조각은 그저 하나의 취미에 불과한 것이라고 45세의 크로넨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원래 직업은 목수다. 목수가 웬 용접? 나무 만지는 일도 좋지만 이렇게 철과 함께 있는 것도 삶의 한 활력소가 된다고. 덧붙임에 한계가 있는 나무와는 달리 철조각은 생각 여하에 따라 붙이고 뗄 수 있어 나무를 다룰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크로넨씨는 철 조각에 들이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심혈을 기울이는 작품 때문이다.

그가 주말마다 뚝딱거리는 까닭은?

a 원래 직업은 목수이지만 요즘엔 특별한 일이 하나 생겼다

원래 직업은 목수이지만 요즘엔 특별한 일이 하나 생겼다 ⓒ 박해얼

“암스테르담, 운전하기 참 힘들어요. 솔직히 운전하기 쉬운 도시가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 암스테르담은 주차하기도 굉장히 힘들지요.”

서유럽에서 모나코와 말타 다음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일까? 시골이라면 모르겠지만, 암스테르담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교통문제는 피해갈 수 없을 듯.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옛 도심에 대해 ‘일방통행’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암스테르담은 더 남다른 구석이 있다. 1614년 핸드릭 스테츠 주도 아래 기존의 도시를 둘러싸는 운하를 만들면서 이후 일방통행로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던 것. 그래서 현재 도심의 거의 모든 도로가 일방통행로다.

물론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이들이라면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렌테라는 한적한 고장 출신인 크로넨씨에게도 이 교통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그런 그에게 몇 주전, 운전으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히 우편물을 보낼 것이 있어 10분 정도 될까, 비상등을 켜고 잠깐 주차를 했지요.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바퀴에 주차위반 자물쇠가 채워져 있더라구요.”

a 크로넨씨의 야심작, 3륜 동력 자전거

크로넨씨의 야심작, 3륜 동력 자전거 ⓒ 박해얼

그래서 결국 결심했다. 주차하기에 무리가 없고 어떤 딱지도 떼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교통 수단을 직접 만들기로. 그것은 다름 아닌 3륜 동력 자전거.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에는 아직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3륜 동력 자전거를 단속할 규정이 없어요.”

크로넨씨는 웬만한 짐도 너끈하게 실을 수 기능을 갖춘 동력 자전거를 만들어 차도가 아닌 자전거 전용 도로를 달릴 생각이다. 다른 자전거나 보행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속도는 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봤자 자전거인데, 이동하기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위험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네덜란드에는 총연장 1만 km가 훨씬 넘는 자전거 도로가 확충되어 있다. 웬만한 곳에는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가 시민들의 주요 교통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암스테르담에만 해도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3층짜리 자전거 전용 주차 건물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이다. 교차로에서 자전거가 길을 건너고 싶을 때 버튼을 누르면 파란 불이 들어오는 등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라는 인식은 이미 그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한다.

심지어 실수로 자전거 도로에 들어섰다가 위협스러운(?) '따르릉' 소리를 들어야했을 정도이다. 게다가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차량 출입을 막고 '자전거가 왕'으로 통하는 교통환경을 마련하기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가히 자전거 천국이라 할 만 하겠다.

“앞으로는 주차비나 주차위반 딱지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주차 공간 찾느라 괜히 시간 허비할 필요도 없고. 이게 완성되면 자동차 운전하면서 받을 온갖 스트레스는 내 일이 아니겠지요?”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써요

a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자전거 전용 주차장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자전거 전용 주차장 ⓒ 권기봉

그런데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해서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크로넨씨 말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이 그리 주목받을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을 때 직접 만들어 쓰는 것에 대해 별 부담감이 없어요. 이게 돈이 훨씬 적게 먹힐 뿐만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든다는 쾌감도 작지 않거든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가구 부문을 시작으로 DIY(Do It Yourself; 재료를 사다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한 때 녹즙기와 돌침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이내 사그라든 것처럼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무엇을 직접 만들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차라리 돈 조금 더 들이더라도 완성품을 구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주5일에서 나아가 주4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곳이 많아 자기 시간을 내기가 수월한 편이고, 오밀조밀한 아파트만 아니라면 웬만한 집에는 차고나 창고가 있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적인 제약도 그리 심하지 않다.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오비’나 ‘이케아’ 등 DIY에 필요한 공구나 부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대형 매장까지 잘 갖춰져 있어 DIY를 하기에 별 무리가 없다.

“자전거말고도 저희 집 식탁이나 가구도 직접 만들었어요. 부품만 사다가 설명서 보고 조금만 뚝딱거리면 완성되거든요. 만들면서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고요.”

a 이게 뭐란 말인가!

이게 뭐란 말인가! ⓒ 최승희

조만간 크로넨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3륜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누빌 계획이다. 오토바이 엔진을 달았기 때문에 그리 힘이 들지도 않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크로넨표 자전거’가 탄생하는 것이다. 주차 공간 찾기 걱정 없고, 주차비, 교통 체증 모두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제때 기름만 넣어주면 만사 OK인 그의 자전거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크로넨씨를 만난 지 두어 시간 흘렀을까?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기가 눌려 자전거 타기를 겁냈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그의 작업실에서 나오던 길, 저 멀리 우리 캠핑카가 보이는데, 앞 바퀴에 뭔가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볼 때에는 샛노란 색깔이 눈에 확 들어와 참 예뻐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게 웬걸, 주차위반 자물쇠가 떡 하니 채워져 있는 것 아닌가! 자동 주차비 지불 기계에 선불로 두 시간 어치를 내고 나갔던 길인데 바퀴를 잠궈버린 것이다. 주차비 유효 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도착했을 뿐인데 69유로, 우리 돈으로 1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만 하다니!

"크로넨씨, 그 자전거 한대만 더 만들어주면 안되나요? 그것 타고 여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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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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