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면 밥이 나와요, 돈이 나와요?”

[취재결산] ‘새벽을 여는 사람들’ 50회를 돌아보며

등록 2003.12.12 16:57수정 2003.12.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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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은성·노유미 기자
사진 : 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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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김진석, 노유미 기자와 함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하 새벽)'을 연재하는 김은성입니다. 어느 덧 새벽이 시작한지 8개월 만에 50회를 넘기고 책 출판(1월예정)이라는 의외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식상하지 않을까? 이미 뻔한 얘기일 텐데'라는 주변의 우려와 '정말 새벽에 밤새며 취재할까?'라는 의문에 아랑곳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숱한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의 인생을 훔쳐보겠지요. 아마도 절 만났던 많은 분들은 꽤나 당황스러우셨을 겁니다. 소위 '머리에 피도 안 마른'사회 초년생이 그것도 초면에 당신의 인생을 보여달라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새벽을 취재하기 전에는 솔직히 남들 자는 시간에 일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100회 달성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정작 스스로는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고 무사히(?) 50회를 넘겼습니다.

취재가 쌓일수록 지면에 담지 못한 말 못할 일화들도 같이 쌓여갑니다. 새벽을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취재원 섭외입니다. 취재원들 대부분이 인터넷보다는 TV나 종이신문에 더 익숙한 분들이 많아 매체 설명부터 시작해 섭외까지 하다보면 그냥 며칠이 흘러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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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또 소개받아 어렵게 섭외가 되더라도 당일 취재원 거부로 한 밤중에 막막함을 안고 거리를 헤맨 일도 있습니다. 행여 전화벨이 울리면 취재 불가를 알리는 통보일까 싶어 순간 취재를 할 수밖에 없는(?) 온갖 말들을 준비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듭니다. 어쩌다 의외의 곳에서 섭외가 돼 일이 잘 풀릴 때는 전화기에 대고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발 그냥 가만 놔두면 안 되나요', '평범한 사람이라 할 말이 없는데요', '나 같은 사람이 뭘 그런 걸 하나요','뜻은 알겠지만 다른 사람 알아봐요' 등의 말과 대응해 설득하다 보면 가끔 본의아니게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생깁니다.


어떤 날은 종일 섭외를 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기도 하고, 취재허가 통보를 기다리느라 초조함에 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냥 사는 것도 팍팍해서 힘들어 죽겠는데 뭔 놈의 취재래요? 취재하면 밥이 나와요, 돈이 나와요? 기자 양반이 세상 물정을 모르나본데,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도와주려면 그냥 묵묵히 살게 내버려 둬요. 괜히 취재니 뭐니 해서 안 그래도 힘든데 쓸데없이 힘빠지게 하지 말고.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알면 취재하자는 얘기 못해. 차라리 취재 할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거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게 우리 생활이에요. 솔직히말해 우리 같은 사람들 일하느라 팔자 좋게 신문 볼 틈도 없어요. 하루하루가 피곤한 사람들한테 취재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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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취재 거부를 알리는 어르신의 이 말 한 마디가 오래도록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전화기로 전해오는 어르신의 투박하고 갈라진 목소리만으로도 삶에 짓눌린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면 과연 저의 오만이었을까요. 평소와는 달리 아무런 대응도 못 한 채 조용히 수화기를 내렸습니다.

보통 때라며 ‘또 이번엔 누구를 대신 섭외해야 되나?’ 한숨지으며 허탈하게 앉아있었겠지만 웬일인지 그 날 만큼은 거절을 당해도 막연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항상 취재를 하면서도 ‘왜 새벽을 해야 되는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해 갈증을 느끼던 저에게 어르신의 갈라진 목소리가 뜻하지 않은 답을 던져주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그분의 인생을 훔쳐보고 싶습니다. 물론 밥을 주지도 돈을 주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들고 희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믿습니다. 응어리진 삶의 무게를 많은 독자 분들과 나누다 보면 가벼워지지 않을까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상상을 해봅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슨 취재냐고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 사는 게 팍팍해 죽겠다는 사람일수록 새벽 취재팀이 달려 갈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잠시 잊어버렸던 당신 삶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서 혹은 이웃집에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평범한 사람들. 웃다가 울고, 화내며 싸우고, 밥 먹고 땀 흘리며 사는 ‘우리’ 얘기를 꾸밈없이 취재하겠습니다. 새벽을 통해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취재냐?’ 라는 말 대신 ‘나 정도는 취재해야지’ 라는 말을 들었으면 하는 철없는 바람과 함께.

새벽은 100회까지 계속 될 것이고 당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삶의 '용기' 가 될 수 있음을 전할 것입니다. 혹시 독자 분들 주변에 새벽에 일하시는 평범한(?) 분들 없나요? 희망을 더할 수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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