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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오른쪽 아래어금니가 살살 아파온다. 그 쪽으로 음식물을 씹을 수도 없고, 찬물이나 더운물이 닿아도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 손으로 만져 봐도 아무 이상이 없고 입을 벌리고 거울에 비쳐보아도 멀쩡한데 통증이 심하다. 내가 이가 아프다고 호소하자 아내는 얼른 치과에 다녀오라고 성화이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프다. 교동에서 치과에 한번 다녀오려면 하루가 걸린다. 교동에서 강화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타고 또 병원에 가서 기다리고 하다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10일 오후에 우체국을 다녀오다 아내가 슈퍼에 식료품을 사러간 사이 차 운전석에 앉아 후사경에 오른쪽 아래어금니를 비쳐보았다. 차안에 밝은 햇살이 들어와 잘 보인다. 아 그런데 오른쪽 아래어금니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가 상했단 말인가? 그래서 아팠던 것이다.
이제 비로소 이가 아팠던 이유를 알게 된 셈이다. 치과에 가서 신경치료를 받고 봉을 해 박으면 될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된다. 나는 어지간해서 병원을 잘 안 간다. 특히 치과에는 정말 가기 싫다. 16년전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 사랑니를 뽑다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정선에서 기차를 타고 남면이라는 곳에 내려 면단위 작은 보건진료소를 찾아갔다. 정선읍내에도 보건소에 치과가 있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예약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할 수 없이 남면에 있는 보건진료소 치과를 찾았다. 밤새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발목까지 빠지고 길이 꽁꽁 얼어붙었다. 날씨도 춥고 이까지 아프니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온다. 인상을 잔뜩 쓰고 보건진료소 문을 두드렸다.
젊은 공중 보건의였다. 치과 대학 재학 중, 군대에 가는 대신 보건의로 온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내가 사랑니가 아파서 왔다고 하니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표정으로 반갑게 대해준다. 치과용 의자에 앉은 채 마취를 하고 사랑니를 뽑는데 잘 안 뽑히는 모양이다. 이를 조각내서 뽑는데 마취가 풀려서 그런지 저절로 비명을 지르게 된다.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니 또 마취를 하고 치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X-ray를 찍는다.
X-ray를 12번을 넘게 찍었나 보다. 그렇게 2시간을 넘게 씨름을 했는데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 보건의는 도저히 자기 실력으로는 치근을 뽑을 수 없으니 강릉보건소에 협조요청을 해 앰뷸런스를 부를 테니 강릉 보건소에 가서 마저 뽑으라는 것이다.
나도 오기가 났다. 나는 괜찮으니 계속해서 마저 뽑으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창문으로는 함박눈이 쏟아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세상에 그런 고문이 없었다. 치과 전용 의자에 드러누워 고초를 겪으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3시간이 지났을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마지막 치근을 뽑았다. 보건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보건의는 핀셋으로 치근을 집어 보이며
"죄송합니다. 이제 다 뽑았습니다. 사랑니를 이렇게 힘들게 뽑기는 처음입니다. 제가 기념으로 선생님 사랑니 조각을 유리병에 넣어 잘 보관하겠습니다.”
입안 전체가 헤져서 벌집 쑤셔 놓은 것 같고, 마취가 덜 풀려 안면 전체가 뻣뻣하다. 그 때 얼마나 혼이 났는지 간신히 집에 돌아와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그 때의 경험이 내 뇌리에 각인(刻印)되어 치과만 떠올려도 끔찍하다. 아무 예고 없이 이가 상한다든지 몸에 병이 찾아온다. 반갑지 않은 손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고 거절 할 수도 없고 피해 달아날 수도 없지 않은가. 내 몸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긴 고통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아내는 지금 당장 치과병원에 다녀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아내가 하도 성화를 하니 아프다는 말도 못하겠다.
초겨울 날씨가 잔뜩 흐린데 황사까지 겹쳤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무래도 틀렸고 내일은 꼭 치과병원에 다녀와야겠다. 이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아내의 성화를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눈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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