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를 지배하는 '메트로섹슈얼'

베컴이 직접 쓴 <데이비드 베컴 : 마이 사이드>

등록 2003.12.13 18:11수정 2003.12.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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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은 영민해 보이는 인도 소녀가 거칠기 짝이 없는 남자들을 모두 제치고 경쾌한 슛을 터뜨리면서 시작한다.

축구를 몹시 좋아하는 제스의 방을 도배하다시피 한 베컴의 브로마이드는 이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장식한다. 제시에게 베컴이라는 축구선수는 프리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스타’보다는 인도의 풍습에 얽매여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해방구를 자처한다.


이렇듯 영화의 소재로까지 끌어들인 ‘축구’라는 스포츠는 명실공히 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현란한 드리블과 공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는 과단성, 그리고 폭발적인 득점력에 더해진 잘생긴 외모. 작년 월드컵에서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녔던 데이비드 베컴의 두 번째 자서전 <데이비드 베컴:마이 사이드>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그의 진솔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94년 영국 작가 마크 심슨은 “소비자본주의가 시장확대를 위해 쇼핑을 충분히 하지 않는 수수한 남성들의 지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란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매스컴들은 베컴을 지목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두 번이나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놓게 된 이유는 이러한 그의 외적인 모습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려는 일부 시각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의 자존심’으로까지 불렸던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 경위와 스타가 아닌 감정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도 들어있다.

“내가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데에는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에 대한 그의 태도도 한몫했다. 퍼거슨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축구 구단에 입단한 것처럼 느끼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이 된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의견이 맞지 않다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가족 같은 따뜻함을 느꼈다.”

“내게는 가혹했던 1998년이 지나자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관련하여 보도되었던 나에 대한 기사에 유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 얼굴을 다트판으로 만든, <미러>지의 편집자 피어스 모건은 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나에 대한 기사가 지나쳤다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그 때 마음에 상처를 몹시 받게 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그것을 쓴 신문기자들도 자신들이 지나쳤다고 인정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베컴, 나의 축구 나의 인생>에서는 그의 어린시절과 성장기를 중정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책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가슴 벅찬 순간들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의 고민들, 그리고 언론으로 다쳤던 마음들을 털어놓으며 한번 더 자신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우 겸 스포츠 저술가로 알려진 톰 왓트가 정리한 그의 인터뷰와 가족간의 단란한 모습을 스케치한 내용은 그 위에 더해진 일종의 팬서비스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쓴 건가?’하고 의구심을 품게 될 여지가 충분할 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책에서 베컴은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컵 이후 무수히 쏟아져 나온 태극전사들의 자서전과 히딩크와 관련된 서적들은 어떠한 현상에 대한 분석이나 회고에 그쳤다는 평가를 잊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한 스포츠 스타의 어두운 라커룸을 방문하는 행운을 잠시 동안 만끽할 수 있도록 한 사려 깊은 문장을 통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레알 마드리드의 하얀 유니폼 때문인지 키는 더욱 크게 보였다. ”유니폼이 왜 이렇게 큰 거야?“ 흥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나는 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만족감이 온몸을 감싸 안는 동시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드디어 나,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 구단에 와 있다.”

유럽 최강의 클럽팀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16강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요즈음이다. 멋진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지배’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데이비드 베컴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얻게 될 만족감은 더 커질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 - 마이 사이드

데이비드 베컴.톰 왓트 지음, 임정재 옮김,
물푸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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