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아버지를 살려낸 눈물겨운 가족사랑

등록 2003.12.14 06:47수정 2003.12.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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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화목한 사랑의 가족들 (큰딸은 빠졌음)

화목한 사랑의 가족들 (큰딸은 빠졌음) ⓒ 김재경

찬바람에 어둠이 내려 깔리는 저녁 7시 제보자인 이준화 통장과 함께 달안동 샛별 아파트 서정배(53), 권영복(50) 부부와 1남 3녀가 사랑의 씨실과 날실로 알콩달콩 행복을 엮어가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서정배씨는 4년 전 간암판정을 받았다. 둘째 딸의 간을 이식 받아 새 삶을 찾기까지에는 드라마보다 더한 아픔과 진한 가족애가 꿈틀대고 있었다.

서씨는 충남 논산에서 부농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에 두고 온 필통을 찾으러 나갔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이었다.

아들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자꾸만 눈에 밟혀왔다. 아들을 떠나보낸 아픔은 1990년에 안양으로 생활 터전을 옮기게 된 동기가 되었다. 취업도 하고 자리를 잡아가며 불임 수술한 부분을 풀어서 아들도 낳았다.

이젠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재잘거리는 아들 또래만 보아도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팍에 아들을 묻고 맨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괴로울 때마다 술을 마셨다.

자꾸만 피곤해지고 몸이 무거워지며 혈색까지 검게 변해 갈 무렵 더 는 견딜 수 없어서 병원을 찾았다. 알코올성 간염이었다.


치료를 받으며 잠시 회복하는 듯 했지만 계속한 폭음 때문에 병은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발전했다. 직장을 사직하고 거의 매일 자포자기 상태에서 좌절하고 또 절망했다.

두문불출 상태로 '부인에게 유일한 재산인 집을 명의이전하고, 수렵용 총이라도 구할까? 어떻게 하면 편히 죽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재산을 축 내지 않아야 남은 가족들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내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지만 잇몸에서 피가 나오고 다리가 붓고 혈색을 잃어가며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마장에서 일하던 부인은 붉은 반점을 보며 남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부인 역시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속을 끓이며 전전긍긍하다가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한달이면 4명의 환자가 간이식으로 새 삶을 찾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희망이 일렁거렸다.

자녀들에게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상태를 얘기하자 놀란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서로 간을 제공하겠다고 앞다투어 나섰지만 혈액형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 아버지 혈액형은 A형이라 하는데 가족들은 B형이었다.

일단 전 가족이 출동해 혈액형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아버지의 혈액형은 가족들과 같은 B형으로 판명이 났다.

4자녀 모두가 수술에 적합한 조건이었지만 서로 간을 제공하겠다고 둘째 딸은 말없이 직장을 사직했고 셋째 딸(경기대·3년)은 학교까지 휴학하고 나섰다.

a 간을 제공한 둘째딸과 아버지

간을 제공한 둘째딸과 아버지 ⓒ 김재경

아들(중·3)은 어려서 제외되었고, 왜소한 딸들 중 체력이 좋은 둘째 딸 서명옥(26)씨가 간 제공자가 되었다. 수술실에 부녀가 나란히 들어간 오전 7시 가족들은 수술실 밖에서 기도하며 장장 12시간 30분(수술시간)을 간이 녹아 내릴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이 한 달보다도 길게 느껴질 무렵 딸이 먼저 나왔다. "명옥아! 명옥아!" 소리쳐 불러보았다. 눈을 떴다 감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부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이 빨랐던 딸은 정신이 들며 링거 병을 들고 아버지의 병실을 찾았다. 부녀는 서로 부둥켜 않고 말없이 울었다. 진한 사랑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남편은 간병인에게 맡기고, 딸의 간병을 하던 권영복씨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술 후 목이 마르다'는 남편에게 초보 간병인이 우유와 물을 생각 없이 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위가 터지고 복수가 차 오르며 2차 수술을 하게 되었다. 재차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둘째 딸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간이식 수술 일주일만에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2차 수술을 하고 눈을 감은 채 나오는 남편을 보며 살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며 권영복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 달이면 퇴원할 것을 세 달이 지나서야 남편은 병실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서정배씨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 두문불출하던 폐쇄적 삶에서 벗어나 친구도 만나고 인라인을 타며 부인과 산책도 즐기는 생활이 그저 꿈만 같다. 한 계단 한 계단 17층 아파트까지 걸어 오르며 다시 찾은 삶이 보람되고 한없이 감격스럽다.

자녀들은 "예전에는 한없이 엄격해서 말도 못하던 아빠의 약한 모습을 보며 더욱 더 가까워 졌어요. 이제 우리 아빠 80세까지는 사셔야죠"라며 행복해 한다.

서씨는 "나를 수술한 강남성모병원의 김동구 박사는 환자들 사이에서 신의 손이라고 불려요. 흔히 암이면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식 수술을 해 보니까 겁낼 일이 아니더라고요. 수술 후 1년 정도 지나면 90%는 정상적으로 회복된대요"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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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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