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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도 했고, 학기말 성적 입력도 대충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연말을 핑계삼아 강사들이 모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과정에서, 성적 이의신청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성적 입력을 마무리하고 난 지금, 벌써부터 성적에 관한 학생들의 부탁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말 그대로 '이의신청'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을 조금만 더 올려달라'는 부탁이 많다. 채점에 문제가 있거나 성적 합산에 실수가 있으면 당연히 바꾸어 주어야 하지만, 부탁성 전화에 대해서는 참으로 난감하다. 특히 공감이 가는 이유가 제기 될 경우에는 거절을 하면서도 미안할 때도 있다.
부탁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역시 감정과 연민에 호소하는 것이다. '어부로 일하면서 등록금 보내주시는 부모님 때문에라도 학사경고만큼은 안 된다'면서 매달리는 학생의 부탁에 선배 강사는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4학년들은 주로 취직 때문에 학점을 어느 정도 이상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적을 올려 달라고 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이것 때문에 장학금을 못 받게 되었다면서 성적을 조금만 더 올려 달라고도 한다. 특히 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최루성 이유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심지어는 부모님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선배 강사 한 명은 모 대학 교수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질색을 했다고 한다. 자기 아들이 그 선배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다음 학기 학과선택시 그 학생이 원하는 학과에 가려면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으로까지 찾아오겠다는 것을 말리느라고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탁은 실제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와 같이 철저히 상대평가를 해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그 학생보다 잘한 학생의 성적을 끌어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들을 미리 학생들에 알려줘도 매 학기 몇몇은 꼭 전화를 한다.
간혹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과정보다 결과에만 치중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동시에 수업의 성실도나 시험 등과 같이 바꿀 수 없는 결과를 놓고도 교수에게 '부탁'만 하면 될 것 같은 청탁성 문화가 아직 대학사회에 존재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좋은 성적이나 장학금, 그리고 취업의 성공과 같은 결과는 성실한 과정을 통해서 이룰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성적을 올려 달라는 부탁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고, 실제로 그 이유가 수긍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떠하든 '성적 좀 올려달라'는 말은 밟은 과정에 비해서 더 많은 결과를 요구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성적은 학생들과의 안면이나 부탁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채점 결과와 제출한 레포트, 그리고 수업 시간의 발표와 성실도 등이 합산된 점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정당하지 못한 과정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사회에서 학생들은 소수이지만 정당하지 못한 과정이라도 결과만 좋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성적조절을 부탁하는 학생은 전체 학생들 가운데 아주 일부이다. 심지어 부모까지 동원하는 경우는 이렇게 강사들이 모였을 때나 회자될 정도로 극히 드물다. 그러나 매년 한 두 명으로부터 성적 상향 조절의 부탁은 늘 있는 일이어서, 성적이의신청 기간에는 핸드폰을 켜 놓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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