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하고 옴마는 젊어지는 기 싫나?"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24>새알

등록 2003.12.22 14:55수정 2003.12.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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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지팥죽 속 '새알'의 추억과 함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동지팥죽 속 '새알'의 추억과 함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 이종찬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12월 22일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다. 하지만 하얀 새알이 동동 구르고 있는 붉은 동짓팥죽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제 거실에서 팥을 고르고 있던 장모님께서도 올해는 팥죽을 쑤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왜요? 하고 물어보니, 애써 팥죽을 쑤어 이웃집에 나눠주더라도 먹지도 않고 그냥 버리기 때문이란다.

"니는 새알로 맨드는 기 아이라 아예 닭알로 맨드나?"
"새알은 나이만큼만 묵어야 된다 캤다 아임미꺼?"
"그라모 새알로 많이 묵어가(먹고) 장개(장가)도 안 가고 빨리 할배가 되뿌고 싶나?"
"그기 아이고예. 열 개만 묵어모 배가 고푸다 아입니꺼. 그라이 새알로 크게 맨들어뿌야(만들어야) 되지 않겠심미꺼."

내가 어릴 적에는 해마다 동지가 되면 작은 설날이라 해서 집집마다 가족들이 큰 상 주변에 둘러앉아 새알을 빚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새알도 귀떡(송편)처럼 잘 빚어야 나중에 이쁜 색시를 얻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찹쌀 반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치 누군가에게 빌듯이 싹싹 돌렸다. 미래의 이쁜 새색시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당시 아이들은 누구나 새알 빚기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새알을 빚다가 새알만한 크기의 찹쌀가루를 어머니 몰래 슬쩍 입에 넣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물에 적당히 반죽이 된 새알가루는 그냥 먹어도 참으로 맛이 있었다. 또한 반죽이 적당히 된 새알가루는 진흙처럼 무엇을 만들기에 참 좋았다.


"야가(얘가)~ 야가~ 새알로 맨들라 캤더마는 와 입으로 가져가노? 그라다가 나중에 배 아푸다꼬 난리 칠라꼬 그라나."
"그냥 묵어도 맛만 좋은데예."
"나중에 새알로 니 나이보다 쪼매 더 줄끼니까 인자 고마 묵어라."
"그래가꼬 나이로 더 묵어뿌모 우짤라꼬예."
"니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안 캤나?"

그렇게 새알이 커다란 밥상을 하얗게 뒤덮을 때면 부엌에서는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팥죽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쯤이면 우리들은 어머니께서 상 위의 새알을 어서 커다란 무쇠솥에 넣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산새알처럼 잘 빚어진 하얀 새알을 자꾸만 입으로 가져갔다.


"후여~ 후여~"
"옴마(엄마)! 그런데 와 아까운 팥죽을 베륵방(벽)에다 자꾸만 뿌리쌓노?"
"그래야 우리 집에 일년 내내 잡귀가 못 들어온다 아이가."
"와? 잡귀는 팥죽을 겁내나?"
"그기 아이고 잡귀들이 붉은 이 팥죽자국이 지 핏자국인줄 알고 놀래가(놀라서) 얼씬도 못한다 아이가. 안 그라모 와 이 아까운 팥죽을 뿌리쌓것노?"]

그랬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동지팥죽이 끓고 나면 제일 먼저 동지팥죽을 그릇에 조금 퍼내 집안 곳곳에 뿌렸다. 싸리대문에서부터 부엌, 창고, 마루, 방에 이어 심지어는 소 마굿간과 통시(화장실)까지에도 팥죽을 조금씩 뿌렸다. 그렇게 해야 우리집에 잡귀가 일체 들어오지 못한다는 일종의 믿음에서였다.

마을 어머니들도 그렇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 때문에 늦가을에 새롭게 발라놓은 깨끗한 벽과 방문에도 붉은 팥죽자국이 부적처럼 덕지덕지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어머니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계셨다.

"베륵방(벽)에 팥죽 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데, 우짜꼬?"
"고마 그대로 놔두뿌라."
"기분이 이상하거마는."
"그기 다 너거들 잘되라꼬 그라는 기다."

그랬다. 벌건 팥죽이 벽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동지팥죽을 먹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우리들은 새알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서로 눈을 흘겨가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새알을 더 주지 않고 쌀알이 든 벌건 팥죽만 한그릇 퍼 주셨다.

"옴마! 팥죽 말고 새알 좀 건지도라."
"야가~ 야가~ 그리 묵다가는 너거 아부지하고 너거 옴마는 나이가 더 줄어들것다."
"와?"
"새알로 너거 아부지나 너거 옴마 나이만큼 못 묵으니까 그렇지."
"그라모 아부지하고 옴마는 젊어지는 기 싫나?"

오늘은 동지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도 두 딸들을 데리고 그때처럼 하얀 새알을 큰 상 가득히 빚고 싶다. 그리고 커다란 솥에 팥죽을 끓여 어릴 때의 내 어머니처럼 후여~ 후여~ 하면서 집 주변에 뿌리고 싶다. 그리하여 그렇게 뿌려지는 동지팥죽 속에 한 해를 보내고, 희망 찬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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