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박세일 정개협 위원장이 국회기자실에서 국회 정개특위의 정치개혁입법 처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치개혁법안을 입안해 국회 정개특위에 제출했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위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 이하 정개협)는 23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정치개혁입법 논의에 대해 "상당히 왜곡되어가고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 정개협이 제안한 정치개혁입법 원안을 그대로 국회가 수용해 줄 것을 재차 촉구했다.
박세일 위원장을 비롯한 정개협 소속 위원 5명은 이날 정오께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뜻에 따라 철저한 정치개혁을 이뤄나가겠다는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논의과정은 상당히 왜곡돼가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은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정치권에 불리한 조항은 외면하여 결국 개혁과는 동떨어진 개악된 정치관계법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서 네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첫째,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의 핵심과제라 할 수 있는 고액후원금 제공자의 신원공개에 대해서는 수용하면서 정작 이러한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후원금 영수증 선관위 제출 의무화를 반대하여 이 제도자체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더불어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돈세탁방지제도 강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둘째, 돈쓰는 선거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도입된 당원행사에서 식사 및 교통편의 제공금지, 당원 등에 대한 활동비 명목으로 금품제공 금지 등 현실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돈 먹는 하마'라 불리우는 지구당의 폐해를 지적하며 완전폐지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실제 돈이 들어가는 당원행사나 당원에 대한 금품제공 등을 막자는 제도에는 반대하는 모순된 태도라 할 것입니다.
셋째, 선관위 조사권 강화, 선거부정 내부고발자 보호, 금품 향응을 제공받고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적발된 유권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부정선거 및 돈선거 감시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어야 할 개혁과제들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넷째,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려 정치의 질을 높이고 정책정당화를 추구하기 위해 각분야의 전문 정책능력과 직능 대표성이 있는 인재들의 정치참여를 확대하자는 제안은 수용되지 않은 채 지역구 의석수를 오히려 늘리자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더욱이 선거연령을 인하하라는 젊은 유권자들의 요구와 비례대표 여성할당을 50%로 의무화하자는 여성계의 일관된 요구를 외면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 할 것입니다."
특히 박세일 위원장은 '지역구 199석, 비례대표 100석'으로의 비례대표 증원을 토대로 한 의원정수 수정안이 지역구도 완화는 물론 정치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지역구 의석만을 증대시키려는 야 3당 논의방향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줄어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직능과 직종 대표성"이라며 비례대표의 증원에 협조해 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기존 전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차이점에 대해 "전국구는 당 지도부가 공천을 받아 만들면 되므로 투표가 필요없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는 각 정당이 전문가를 모셔서 명부를 작성해 이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밀실공천 의혹을 발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정당명부에 등록된 인사들은 적대적 상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쟁을 일삼을 수 없고 비례대표 득표를 높이기 위해 정책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장점도 덧붙여 설명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열린우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관련 "지역내 소지역주의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고 "전국별 비례대표가 적당하며 이것이 곧 지역주의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개협 위원인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개특위가 정개협안을 이렇게 묵살할 것이었다면 정개협을 뭐하러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약속했던 것처럼 정개협 안이 국민의 여망을 받고 있다면 전향적으로 수용해서 제대로 처리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도 "정치권이 시간이 급하다고 하는데 연내에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우리가 마련한 안, 당리당략 반영되지 않은 이 안을 받아주는 것"이라고 정개협안의 전폭적 수용을 촉구했다.
[1신: 낮 12시18분]
한나라당-우리당 당론 변경... 선거법 처리 새 변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23일 오후 2시 열리는 본회의가 끝난 직후 전체회의를 열고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선거구 인구상하한선 등의 쟁점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당초 쟁점들을 둘러싸고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 야 3당과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의견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됐지만, 23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당론을 수정해 정개특위 전체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열린우리당이 23일 오전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야 3당의 합의로 비례대표 의원의 증원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전체 의석수를 현재 273석으로 동결해야 한다"며 수정당론을 제시했다. 열린우리당은 그간 비례대표 의원을 현행 46석에서 72석으로 늘리는 것을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해 왔으나 원내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왔다.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이날 "어제 농성을 하면서 의원정수에 대해 토론한 결과, 지역구 의석 227석을 유지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관철되지 않는 한 비례대표까지 46석으로 동결해 전체 의석수를 273석으로 동결한다는 것을 수정당론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의장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당론을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했다. 그는 "원래 우리가 주장하던 중대선거구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어제 의총에서 도농복합선거구제를 제안했다"며 "소선거구제로 당론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도농복합선거구제로 지역구를 227석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오전 운영위을 열고 현행 비례대표 의석수(46석)을 유지하는 것을 새로운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는 '현행 의석수(273석)는 유지하되 늘어나는 지역구 의원수만큼 비례대표 의원수는 30석으로 줄인다'는 기존 당론을 수정한 것이다.
이경재 정개특위 간사는 운영위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비례대표 의석수는 현행 46석으로 유지하기로 결론내렸다"면서 "다만 지역구는 16석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시민·사회·여성단체의 반발"을 당론수정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간사는 "현재의 선거구제를 흔들어놓으면 안된다"면서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열린우리당의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첨예한 쟁점이 됐던 비례대표 의석수 증감 여부와 관련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현행 유지'로 당론을 수정함으로써 선거법을 비롯한 정치관계법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