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요새 땡 잡았다며?"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25>공장일기(17)

등록 2003.12.24 15:59수정 2003.12.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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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출기

사출기 ⓒ 동신유압

"또 부서 이동이가?"
"생산부장이 지시하는데 낸들 우짜겠능교."
"요번에는 어느 부서고? 요번에는 좀 괜찮은 부서로 가야 될 낀데."


그해 겨울, 내가 또다시 부서 이동을 당한 곳은 사출실이었다. 그 부서는 사출기로 여러가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아주 깔끔한 곳이었다. 게다가 기계가 완전 자동화되어 있어, 다른 부서처럼 직접 제품을 깎고 다듬는 그런 곳과는 180도 달랐다. 나는 공장생활 몇 년 만에 가장 좋은 부서에 배치된 셈이었다.

당시 사출실의 구성인원은 계장 1명과 나 외에 십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성 노동자 십여 명에 남자라고는 단 둘뿐. 하지만 계장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을 몇이나 둔 30대 후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출기에 금형을 셋팅하고,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내가 여성 노동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설명이 일어로 되어 있으니…."
"나도 이 기계가 들어올 때 일본 사람한테 배웠으니까, 너도 그 기계를 만지려면 일본어를 공부하든지 알아서 해."

나는 이 때 일본어를 약간 공부했다. 지금은 까막눈이 되고 말았지만. 왜냐하면 기계가 전부 일제인데다 부서장인 계장도 사출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회사 자료실을 뒤져 사출기와 관련된 책(온통 일어로 범벅이 된)을 몽땅 가져와 스스로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출실 입구에는 '출입통제구역'이란 붉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로 인해 사출실 출입은 공장장의 결재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계장 이외에는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아마도 그때가 나의 공장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나는 아예 사출기에 대한 책까지 썼다. 게다가 부서장인 계장이 갑자기 공장을 그만 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직책없는 부서장이 되었다. 또한 공장에서도 애매하게 부서장 노릇를 하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공장에서 사출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니 요새 땡(행운) 잡았다며?"
"땡은 무슨 땡. 계장이 그만 두고 나이(나니까) 생산부장이 맨날 내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해싸서 미치것다카이."
"니 그라다가 막 바로 계장이 되는 거 아이가?"

그랬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매일 사출실에서 생산하는 일일생산량을 생산부장에게 직접 보고해야만 했다. 그리고 사출실의 모든 업무도 나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도 많아지고 바깥 외출 기회도 많았다. 또한 사출실에서 내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물나도록 배 고픈 봄날
작업장 밖에서는
용접불에 당달봉사 된 검은 햇살이
칲조각으로 번뜩이며
우리들 핏기 없는 살 태우는 데
손가락 하나 잘린 그 머스마가
자꾸 생각 나
그 머스마 만나
검은 사랑 나눌 수 없어
어지러워

하루에도 열서너 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열너댓 번은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그러다가 그만 프레스실에서 일하는
그 머스마를 남몰래 그리워하게 되고
왠지 바보스런 그 머스마는
눈치도 없어
자꾸 어지러워


머스마야
이리 끈질기게 바이트처럼 악쓰며
질경이 같이 밟히고 버림 받아도
병든 가슴에 푸른 꿈들 살아있다
버림받은 노동자의 하늘
새파랗게 펼쳐져 있다

(이소리 '첫사랑' 모두)


그랬다. 그때 나는 늘 노트를 한권 들고 다녔다. 그 노트는 내가 문득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메모하기도 하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일종의 일기장 역할을 했던 그런 노트였다. 또한 그 노트에는 나의 약속시간과 장소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어, 그 노트를 펼치면 곧 내 모습을 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누군가가 그 노트를 훔쳐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늘상 책상 안에 똑바로 넣어둔 노트의 위치가 자꾸만 바뀌어져 있는 것이었다. 거꾸로 넣어두면 똑바로 되어 있고, 똑바로 넣어두면 거꾸로 되어 있었다. 분명히 사출실 안에 있는 부서원 중 누군가가 내 노트를 훔쳐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상하네. 누가 내 책상을 뒤지나? 점심만 먹고 오모 책상 안이 자꾸 엉망으로 변해가(변해가지고) 있노."

"누구는 좋겠다. 그래도 매일 같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그런 사람이 다 있으니."

뒤에 알고 보니, 내 노트를 훔쳐보는 사람은 늘 일을 꼼꼼히 잘하는 열여섯 살의 이쁜 소녀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 쌍꺼풀이 예쁘게 진 그녀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가 한창 호기심이 많을 그런 나이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저어기~ 오늘 저녁에 시간을 좀 내 주모 안되겠습니꺼."
"와예? 머슨 일이라도 있습니꺼?"

그런데, 그녀는 그게 아니었던 같았다. 그녀는 나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루는 내가 마악 퇴근을 하려는데, 깉이 일하는 그녀의 이모가 나와 커피 한 잔을 하자는 것이었다.

"갸가(걔가) 그 쪽을 마음 속으로 디기(몹시) 좋아하고 있어예."
"그, 그기 머슨(무슨) 말입니꺼?"

"나이 차도 많이 나고 하이(하니까) 그쪽에서 갸를 큰오빠처럼 잘 다독여 주었으모 좋겠심니더. 한창 크는 아(아이) 마음에 상처 받게 하지 말고예."

그때 나는 그녀의 이모 말에 그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고개를 쉽게 끄덕인 죄 아닌 죄(?)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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