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님을 말씀을 통해 심미안을 키웠다.이종원
쌍봉사의 기억
몇 년전이다. 갑자기 남도쪽이 애타게 가고 싶었다. 낮에 곡성 태안사를 들렀고 다시 쌍봉사로 향했다. 길을 잘못 들어 쌍봉사에 도착한 때는 애석하게도 깜깜한 밤이었다. 부도를 꼭 봐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해가 지면 도굴의 우려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때문이다.
스님을 찾아 갔다.
"스님. 쌍봉사 부도를 보려고 수백리를 달려 왔습니다. 꼭 올라가게 해 주세요."
"보고 싶으면 봐야지요."
잔잔한 미소를 보이시며 선뜻 허락하신다. 야심한 밤에 아이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쏴쏴" 거리는 대숲 소리가 섬뜩했지만 부도를 만나려는 나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조금 올라가니 어슴푸레 부도가 손짓하고 있다. 천년을 그 자리에서 서 있는 부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댔다.
"아… 이 곳이 가릉빈가 부분이구나. 풍성한 사자상도 느껴진다. 사천왕상의 갑옷 좀 봐라. 배흘림 기둥에 서까래도 있네."
혼자 주절거리다 보니 어느덧 난 신라의 석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끝으로 느끼는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내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그 감동을 한아름 안고 산을 내려 왔다. 한밤중에 산에 오른 내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그 때까지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깜깜한데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안 보여서 손끝으로 느끼고 왔습니다."
"마음으로 느꼈으면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합장을 하시고는 바람처럼 휭하니 사라졌다. 참 묘한 경험이었다. 그후 스님께서 내게 주신 마지막 말씀은 내가 우리 유물을 바라보는 화두가 됐다.
"마음으로 느꼈으면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 후 나는 그 화두를 들고 우리 유물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깊게 그리고 넓게 보는 심미안.' 이것이 내가 쌍봉사에서 배웠던 교훈이다. 이렇게 쌍봉사에 늘 빚을 져 왔는데 다시 찾을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