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Actually] O.S.T.배성록
전형적 크리스마스 시즌 필름인 <러브 액츄얼리>는 <노팅힐>,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통해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거물로 떠오른 작가 리차드 커티스(Richard Cutis)의 감독 데뷔작이다.
리차드 커티스는 본래 사회 비판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몇 편의 TV 시트콤을 통해 이름을 날린 인물인데,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며 영국 중산층 백인 사회의 '안전'하고 '따스'한 로맨스를 주로 그려내고 있다.
<노팅 힐>이 감독보다는 작가 커티스의 아우라가 짙게 드리운 영화였던 때문인지, <러브 액츄얼리>는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임에도 관객들에게 극히 익숙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미 <노팅 힐>을 통해 선보인 영국식 유머와 뽀샤시한 영국 마을의 풍광, 그리고 사회적으로 위험시될 요소를 단호하게 거세한 기품있고 유쾌한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구성 때문에 흑인과 백인의 결혼이나, 포르투갈 여성과의 사랑, 정신장애자, 에로 배우 등을 곳곳에 배치하지만,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중산층 백인들이다. 이들의 세련된 영국식 억양, 시도때도 없이 눈이 내리는 비현실적인 겨울 풍경, 선하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은 '비판의식 없이 감상'하기에 딱 적합한 '시즌 필름'으로서의 위력을 더한다.
휴 그랜트, 엠마 톰슨, 콜린 퍼스, 앨란 릭맨, 로라 리니, 리암 니슨, 키라 나이틀리와 같은 당대의 톱스타들을 비롯하여 클라우디아 쉬퍼, 데니스 리차드, 로완 앳킨슨이 카메오 출연하고 있다. 흡사 리차드 커티스의 광활한 인맥을 과시하는 것만 같은 호화 캐스팅이다.
다양한 출연자들과 등장인물 만큼 사운드 트랙 또한 이에 못지 않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낭만을 부각하는 러브송과 캐롤을 중심으로, 영화 곳곳에서 관객의 즐거움을 자아냈던 명곡의 커버가 고루 담겨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빌 나이히가 퇴물 로커 빌리 맥으로 분해 영화의 도입부를 웃음바다로 만들어낸, 영화 속 차트 1위 곡 'Christmas is All Around'이다. 이 곡은 트록스(The Troggs)의 1960년대 고전 'Love is All Around'를 커버한 것으로, 이미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웻웻웻(Wet Wet Wet)의 리메이크로 사용되기도 했던 곡이다. 가사 가운데 'Love'를 'Christmas'로 살짝 바꾸고 올드 팝의 흥취를 더한 빌리 맥의 버전은 오히려 웻웻웻의 그것보다 더 오리지널에 근접해 보인다.
장면에 가장 적합한 곡을 배치하는 커티스의 감각은 다이도(Dido)의 'Here with Me'나 노라 존스(Norah Jones)의 'Turn Me On'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노라 존스의 곡은 영화 속 낭만적 무드를 극대화하며 '음반으로 들을 때는 별로였는데 영화 때문에 좋아졌다'는 사례를 무수히 낳을 법하다.
무엇보다도 엠마 톰슨의 눈물 연기와 어우러지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Both Sides Now'는 음반의 백미이다. 이 곡이 중요한 것은, 다른 등장인물들은 스테레오타입이나 배우 자체의 이미지가 대부분인 반면에 엠마 톰슨이 맡은 카렌의 슬픔에는 많은 관객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었는데, 여기에 조니 미첼의 노래가 크게 공헌하고 있는 때문이다. '아직도 조니 미첼을 듣나?'하는 남편의 물음에 자신의 신세 한탄을 섞어 대답하는 카렌의 처지와 조니 미첼의 노래는 너무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슈가베이브스(Sugababes)의 'Too Lost In You' 역시도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적 동요를 드러내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10대 소녀의 무구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캐롤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또한 영화 막바지의 들뜬 축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권 문제 때문인지 영화 속 휴 그랜트의 멋진 댄스를 부른 포인트 시스터즈(The Point Sisters)의 'Jump'가 걸스 얼라우드(Girls Aloud)의 버전으로 실려 있다. 또한 영화 속 가장 매력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일 결혼식 축가 씬에 사용된 어번 소울 가수 린든 데이비드 홀(Lynden David Hall)의 'All You Need Is Love' 커버 역시 영화 속의 오르간 편곡과는 달리 그루브한 리듬 위에서 펼쳐진다. 영화 속 노래들보다는 확실히 듣는 맛이 떨어지는 두 트랙이다.
또한 사운드 트랙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영국 못난이 청년이 미국 땅을 밟는 순간 울려퍼지는 산타나(Santana)의 'Smooth'는 다소 진부한 선택에 속한다.
어쨌든 리차드 커티스가 적합한 음악을 적소에 배치하는 감각을 가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온후한 로맨틱 코미디와 낭만적 러브송의 밀접한 관계 덕분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사운드 트랙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영화의 관객이라면 몇몇 장면들의 유쾌함과 감동을 떠올리며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닭살스러움 때문에 직접 보지 않은 이라도, 적절하게 선정된 18개의 노래들에는 별다른 불만을 갖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런 영화는, 이런 노래들은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비판하기 싫어진다. 연말 아닌가. 왠지 모르게 눈도 내릴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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