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아, 사람아> 통해 본 중국 지식인과 젊은이의 모습

등록 2003.12.28 23:55수정 2003.12.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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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람아 아, 사람아

사람아 아, 사람아 ⓒ 정호갑

이 소설은 격변하는 중국의 현대사에서 정치적 시련을 겪은 두 남녀가 마침내 자기의 영혼을 흔드는 사랑을 제대로 찾아 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요즘 나의 책 읽기는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의 힘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과연 중국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찾으려고 애쓴다. 단순히 땅 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중국의 힘을 말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국을 먹었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도리어 중국화 하지 않았는가? 먹히고서 도리어 먹어 삼키는 그 힘! 그 힘을 흔히 문화라 한다. 그런 문화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줄곧 나는 중국의 힘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 속에서 내가 찾은 중국의 힘은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젊은이의 당당함이다.

현대 중국 지식인들의 삶 또한 우리나라 지식인의 삶처럼 많이 힘들었다. 서양 열강과 일본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시기를 거쳐 좌우 대립 그리고 1949년 모택동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고 1957년 계급투쟁과 1966년 노선투쟁을 거쳐 왔다.

이렇게 이어지는 투쟁은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어 자기의 가치를 지니고 사는 것을 힘들게 한다. 유혹의 달콤함 그리고 뒤쪽의 검은 그림자 사이에서 지식인들은 갈등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자기 합리화에 빠져 이상을 등지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다. 이 소설에서도 지식인들의 삶의 황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왜 이렇게 긴장되어 버리고 말았나? 계급투쟁으로 지고 샌 결과야! 나 같은 경우는 몇 년 전만 해도 아내에게마저 진심을 말할 수가 없었어. 대의를 위해서는 자기 혈육도 버린다는 것이 무서워서. 지독한 거라구! (404쪽)

모략과 맹목적인 아부만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 이러한 가운데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와 책임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조국과 인민을 조소하지 말고, 우리들이 하는 일에 찬물을 끼얹지 말고, 우리들의 희생을 방해하지 말고! 무의미한 희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 (430쪽)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가운데 중국인은 노예근성과 나태의 덩어리란 말에 우파 분자로 단죄당해 온갖 어려움을 다 겪고 가까스로 명예가 회복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손 유예가 내뱉은 말이다. 지식인으로서 나라와 민중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지식인의 책임감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 간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의 희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 또한 희망적이다. 호 젠후의 <마르크스와 휴머니즘>의 출판이 시 류의 방해로 어려워진다. 손 유예가 호 젠후에게 시 류와의 타협을 권하자 호 젠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조적 속박을 깨뜨리는 거지. 시 류의 환심을 사는 것이 아니야. 나는 시 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원한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아. 그가 어떻게 생각하건 그것은 그 개인의 문제야. 나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그와의 대립을 설명하려는 생각은 없어. (425쪽)

그는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관습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개인의 목적 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관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습을 깨뜨려야만 희망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바로 지식인이 지녀할 책임감 있는 태도이다.

격변하는 갈등 속에서 자기의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국과 민중을 생각하는 지식인.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지식인. 이러한 지식인이 얼마나 존재하는가가 바로 그 나라의 힘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국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당당한 모습이다.

과거에는 가치 있는 사람이었어. 전쟁 때 그는 용감했지. 그리고 추접스러운 일면, 가식적인 일면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5, 60년대에는 훌륭한 간부였다고 해도 좋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의 가치는 공산당원이 어떤 식으로 비열한 인간으로, 사상이 경직화된 인간으로, 도량 좁은 인간으로 타락할 수 있는가, 그 실례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에 불과해.(43쪽)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 시 류에게 그의 아들 시 왕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진심으로 충고하겠어요. 사퇴원을 내시는 것이 어떨까요? 당은 허가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최선입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능력과 덕망에 비하여 권력이 너무 크고, 지위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109쪽)

아들로서 그저 입혀주고 먹여주고 키워주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넘어 사회와 국가를 위해 아버지에게 과감하게 용퇴를 권하는 아들. 철모르고 버릇없는 아들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의 경직된 사상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아버지께 아들로서 드리는 고언. 이런 아들이 있다면 어찌 사회가 부패할 수 있겠는가?

또 한편으로는,

호 아저씨와 결혼 해. 내가 엄마 때문에 내 감정을 희생시키는 것을 엄마가 원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엄마가 나 때문에 엄마의 감정을 희생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아. (443쪽)

주인공인 손 유예가 자기의 딸 때문에 호 젠후와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을 때 딸이 엄마에게 보낸 쪽지다. 이렇게 부모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부모의 삶을 존중할 줄도 아는 젊은이 또한 바로 사회의 희망이다.

그리고 또 하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

두 분들 세대처럼 저희는 우유부단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에는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언제까지는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두 분들 세대의 어깨 짐이 너무 무겁지 않으신가요. 저희들은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394쪽)

미래의 중국을 이끌어 갈 젊은이로서 지고 가야할 짐을 거부하지 않는 그들이 있는 한 중국의 미래는 밝다. 오늘 중국의 힘은 과거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와 국가에 대해 책임감 있는 지식인 그리고 당당함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젊은이가 존재한다면 그 나라의 힘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의 책 읽기는 분명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좋은 책은 읽은 사람에 따라 받아들어지는 뜻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의 책 읽기가 변명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중국의 힘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책을 읽어 보련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것들을 모아 중국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사람아 아, 사람아! (리커버 특별판)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다섯수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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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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