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9일자 사설중앙닷컴
'하향 평준화식 학력저하'라는 지적을 앞장 서 해온 게 바로 <조선>이었다. <조선>이 내세운 학력저하론의 근거는 대부분 서울대 교수들의 발언이었다. <조선>과 서울대가 같이 치른 'TEPS 시험 결과가 엉망'이며, 신입생에게 '한자평가를 했더니 읽지도 못하더라', '수학 기초능력도 없는 서울대생들이 많다'(2002년 말 시리즈 '학력 떨어진 대학생들')는 식의 보도가 주류를 이뤘다.
이는 '학력저하'를 뒷받침하는 의미 있는 근거라기보다는 일부 대학의 판단에 치우친 캠페인성 보도였다는 게 교육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올 2월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OECD교육지표 2002'의 PISA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2000년 시험 당시 고교 1년생, 현 대학 1학년생)은 30여 개 선진국 가운데 읽기, 수학, 과학 세 영역 평가에서 각각 6등, 2등, 1등을 차지했다.
성기선 카톨릭대 교수와 강태중 중앙대 교수 공저인 '평준화 정책과 지적 수월성 교육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2001)란 논문은 "평준화 제도가 오히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놀랄만한 사실은 지금까지 평준화를 주제로 한 어떤 연구결과에서도 '하향 평준화'를 입증할만한 실증적인 증거가 발견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발표된 '학력과 성취도'에 대한 이 같은 실증 연구를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앵무새 보도... 무책임한 사실 왜곡"
이런 형편에서 서울대 신입생 '낙제' 현상은 이들에게 촛불과도 같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낙제 현상을 놓고 '고교 평준화의 병폐'를 보여주는 좋은 물건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서울대의 태도다. 다른 대학이라면 신입생 낙제 현상에 대해 숨기기 바빴을 것이다. 대학 이미지를 구기는 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대는 어쩐 일인지 시험이 처음 실시된 4년 전부터 '낙제 비율'을 언론에 여봐란 듯이 공개하고 있다.
때론 서울대 교수 몇몇은 신문의 '시론'란에 나와 '학력저하론과 평준화'에 대해 한숨을 내쉬기까지 한다.
이런 서울대 태도에 심성보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정책위원장(부산교대 교수)은 "일부러 서울대가 최고 일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준 높은 문제를 낸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면서 "시험은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 등 고급사고력을 묻느냐, 아니면 단순 지식을 묻느냐 하는 문제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난이도와 낙제 정도가 조절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원대 사범대학장을 지낸 최현섭(사회교육학부) 교수는 '학력저하의 원인이 평준화 때문'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엉터리 인과론"이라고 몰아세웠다.
"평준화 30년 동안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럼 경제성장의 원인이 평준화 때문이냐.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라면 이런 말도 인과론으로 연결이 될 법하다. 평준화와 학력저하는 상관이 없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연구 결과인데도 언론이 앵무새처럼 말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정확한 진단 없이 처방하는 의사처럼 일부 언론은 단편적인 사실을 갖고 전체로 확대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면서 "모든 문제를 평준화 탓으로 돌리는 평준화 회기론은 무책임한 사실 왜곡"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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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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