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멀리 워싱턴에 있는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께서 해괴한 발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12월 27일자 칼럼 '4월 총선으로 결판내야’에서였다. 이는 조선일보가 역시 '4월 총선 올인'에 접어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한판 도박을 제안한 것이다. 패자는 승자에게 무조건 승복하자는 조건도 제시했다.
김대중은 “4월 총선의 결과를 국민투표의 성격으로 간주”한다는 전제에서 “노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승리하면 당연히 그는 재신임 된 것”으로 보고, “반대세력은 그것이 ‘나라의 운명’이려니 하고 한발 물러서서 통상적 비판과 반대의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반대로 노 정권이 과반수 득표, 또는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하면 그는 ‘지금의 노무현’에서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서 ‘반대세력’이란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 등을 지칭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패배하면 ‘통상적 비판과 반대의 수준’을 지키겠다고 한 점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그 수준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 된다.
정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언론(인)의 탈을 쓰고 정치 행위를 해온 점에 대해 이렇게 고백할 정도로 둔감하다니. 그러니 ‘한-조동맹’이니 한나라당의 ‘당보(黨報)’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김대중은 이 부분에 대해 더욱 더 용감하게 부연하고 있다. 반대세력은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의 선에 머물고 있지 않으며, “그 반대에는 경멸과 무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 “그 반대에는 사상적 적대감과 나라의 장래에 대한 불안이 겹쳐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마치 정치적 적대세력 사이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신(혹은 조선일보)과 한나라당을 일심동체로 보고 하는 말이다. 김대중과 조선일보는 늘 그 선(線)을 넘었으며, 노무현 정권을 경멸하고 무시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김대중의 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이것은 새로운 제안이라기보다는 노무현의 총선 전략에 대한 응전이며, 따라서 ‘도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김씨는 노 정권이 패배할 경우 “그는 거국내각을 구성하든지, 참모진을 개편해서 ‘반대’에 승복하고 ‘다른 노무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구상을 제안했다. 비록 극우논객의 구상이긴 하지만 회피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 모두들 이미 총선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패했을 경우 다른 뾰족한 대책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반대세력’이 패할 경우, 그것을 ‘나라의 운명’으로 승복하고 ‘통상적 비판과 반대의 수준’을 지키는지, 김씨와 조선일보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감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총선에 패하고서도 승복하지 않고 “또 다시 정계개편이다, 선거부정이다 해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선거 결과에 물타기를 시도하는 재래식 정치게임”을 벌일 때 김씨와 조선일보가 이를 꾸짖으며 바로잡기에 나서는지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은 이 도박판에서 유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의원후보 개개인에 연연하지 말고 정당 위주로 심판해 이번 총선에서 무언가 좌우간에 결말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제안이다. “이처럼 내편 네편으로 극렬하게 갈려 드러내놓고 욕하며 싸운 적이 없다”는 김씨의 ‘역사 망각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개혁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기를 꺾을 때도 됐다고 본다.
김대중과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권의 패배와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다. 누차 말해왔지만 조선일보는 보수 기득세력의 헤드쿼터요, 중앙과 동아는 그 아류다.
다시 ‘조중동’과의 한판 대접전이 벌어질 참이다. 이 싸움이 4월 총선으로 결판이 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는 유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김대중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김씨의 기우인 ‘나라 걱정’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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