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의 한 학년 마무리

등록 2003.12.31 15:27수정 2003.12.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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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이었습니다. 먼저 방학을 한 내가 녀석의 등교시간에도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으니 녀석은 아마도 부러웠나봅니다.

“아빠는 방학했는데 나는 왜 학교 가야 돼? 초등학교가 방학을 더 늦게 하는 건가?”

가방을 메고 나서며 녀석은 그렇게 볼 멘 소리를 했습니다.

“진형아, 차 조심해라.”

제 엄마가 가방을 메고 나서는 녀석에게 늘 하던 대로 한 마디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엄마, 걱정하지 마” 했을 녀석이 오늘따라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엄마, 꽃은?”

"응, 이따가 엄마가 가져갈게."

아내와 아이가 주고받는 말이 제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저만 왕따를 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이가 등교한 후 아내에게 묻자 아내는 웃으며 자초지종을 들려주었습니다.

“어제 진형이 녀석이 집에 오더니 갑자기 꽃을 사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는 왜 갑자기 꽃을 사야겠느냐고 물었답니다.

“응, 우리 내일 모레 방학이잖아. 선생님께서 일 년 동안 우리를 가르쳐주느라고 힘드셨거든. 그래서 꽃을 선물로 드려야 해.”

녀석은 똘망똘망한 소리로 그런 말을 했답니다. 아내는 녀석의 말뿐만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대견해서 꽃을 사 주기로 했다는 겁니다.

마침 방학 전날이라 아이들이 학급 학예회를 하는 날이랍니다. 그래서 엄마들 몇이 모여 아이들 간식으로 떡을 주기로 했답니다. 어쩐지 아내는 어제부터 식혜를 만든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저는 나 먹으라고 식혜를 담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아내는 늦둥이네 반 아이들 먹이려고 식혜를 담았던 것입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아내는 식혜를 담은 통을 들고, 미리 사다 놓은 백합 몇 송이도 가지고 학교로 갔습니다.

한참 후에 아내는 환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늦둥이와 함께였지요.

“진형아, 선생님께 꽃 드렸니?”

내가 묻자 늦둥이 녀석이 대답을 하려는데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 저는 진형이에게 전해주고 떡을 나누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게 다가와 ‘아까 진형이가 제게 하는 말 못 들으셨지요? 어찌나 똘똘하게 말을 잘하는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곁에 있는 진형이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 어떤 말을 했는데?”

그러자 녀석은 갑자기 차렷 자세를 하면서 선생님께 한 말을 주워 섬겼습니다.

“선생님 일년 동안 우리들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2학년이 돼도 선생님을 잊지 않을게요. 2학년이 되어서도 선생님을 또 만나고 싶어요.”

그런 녀석의 말을 들으며 아내는 더 환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입학 할 때는 코찔찔이에 아무 것도 모르던 녀석이 일 년 사이에 저렇게 의젓해 진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정말 선생님이 고마워요.”

아내의 말대로 진형이 녀석은 담임 선생님을 무척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를 친자식처럼 챙겨 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학습과 생각을 이끌어 주기도 했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 무렵 제가 쓴 기사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부모님 발 씻어 드리기나 어깨 주물러 드리기 같은 생활과 밀착된 교육을 하시기도 했고, 도전 20곡처럼 아이들의 욕구를 끌어내서 동요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아주 재미있어하며 집에서도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되 풀어내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아이들이 세상과 처음 맞닥뜨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틀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당황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낯섦을 막아주는 병풍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골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냈습니다. 십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는데, 책보를 메고 달리던 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 가을날의 새벽이 되살아납니다. 보리소골 초입의 개울 가로는 아름드리 밤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었습니다. 저는 밤이 익을 무렵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안개 자욱한 개울가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개울 가 풀섶에 떨어진 알밤을 줍기 위해서였지요.

풀섶을 뒤져 찾아낸 알밤은 큰 것들은 어린 제 손에 가득 차고도 넘치기도 했습니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그 알밤을 줍다 보면 어느새 다른 친구들도 밤나무 아래에서 알밤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 알밤은 우리가 구워 먹고 생으로 먹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주머니 가득 덜렁이며 십리 길을 우리와 함께 등교하여 선생님의 책상 앞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쑥스러워 하며 몰래 선생님께 내밀던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을 나는 늦둥이 녀석의 얼굴에서 새삼 발견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녀석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학교에 대한 즐거움과 재미를 계속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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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교사이며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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