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저의 행복한 친구입니다

등록 2003.12.31 17:38수정 2003.12.3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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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왠지 빨간 날이 많아 보입니다. 특히 주중에 빨간 날이 하루씩 끼어 있으니 일주일도 금방 지나가는 듯합니다. 오늘,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력을 쳐다봅니다. 보내는 12월이 아쉬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12월 31일 이후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올해는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구나 싶은 마음에 허전해지는 건 당연하고요, 내년엔 더욱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무엇보다도 내년에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을 생각하면 잠자다가도 어쩌나 싶어집니다. 친구들 중엔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이가 있기도 하지만 꼭 남의 일같이 생각되더니 이제 저에게 부모라는 의미가 더 와 닿을 일이 곧 생기게 되니 마음이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이 초조해 지는 요즘입니다.

딸아이를 쳐다보면 아직 너무 어려 걱정입니다. 어쩌다 보는 사람들은 많이 컸네, 어른스럽네, 하며 한마디씩 힘을 실어주지만 늘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저로서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기 같아만 보입니다.

밥도 떠 먹여야 먹고, 옷도 입혀줘야 입게 되는 어린 아기가 자기 등만한 가방을 양어깨에 메고 보조가방이라는 것을 들고 등교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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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전 어느날 열이나서 물수건을 올렸더니 아픈시늉을 해 너무 우스웠다. ⓒ 김순희

며칠 전의 일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듯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머리가 아프다며 누우려고만 했습니다. 머리를 짚어보니 약간의 미열이 있었습니다. 그냥 체했나 싶어 매실 한 잔만 마시게 하고 잠을 자게 했지요.

예전 같으면 병원이다 약국이다 쫓아 다녔을 테지만 단순히 체했을 거라고만 여기며 그날을 보냈습니다. 새벽녘, 딸아이는 열이 심해졌습니다. 남편과 전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번갈아 가며 딸아이를 돌보았습니다.

다음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라 남편이 시간을 내 병원에 데려갔고, 약을 먹였습니다. 체한 게 아니라 감기였습니다, 참으로 무심한 엄마였습니다. 하루 약을 먹이니 또 괜찮아 보여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아프고 난 뒤, 저녁에 TV를 보는데 딸아이가 무어라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한참 TV드라마에 정신이 없던 전 귀찮게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딸아이가 내던진 한 마디가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머리 아프다고 할 땐 잘 해주더니 다 나으니 이젠 내가 아무 것도 아니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아프다고 하면 정말 신경 써 가며 간호해 주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날 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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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구석구석 마다 딸아이의 사랑의 메모가 붙어있다. ⓒ 김순희

그런 딸아이가 요즘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석구석 집안 곳곳에 메모지에 무어라 적어 붙여 놓습니다. 기분이 우울해 보이면 '엄마, 웃으세요'라고 써놓기도 하고 책상 앞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적어놓기도 하고 아무튼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메모지가 붙어 있습니다.

쓸데없이 종이 낭비한다고 야단을 쳤을 테지만 요즘은 그냥 가만히 둡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나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아지니 그걸 어떻게 야단치겠습니까?

주위 사람들이 흔히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딸이지만 어머니께 제대로 해드리는 게 없어 '딸은 소용없다'라고 생각을 해왔기에 그다지 필요한 존재라곤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를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어떻게 키울까 싶어 전전긍긍하던 딸아이의 어린시절, 아이에게서 해방(?)되고픈 마음이 더 간절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 미안해집니다.

어느 순간, 딸아이는 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잔소리하지 않는 저 대신 남편에겐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하는지 꼭 제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여겨져 처음엔 남편이 저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속으론 너무나 흐뭇했답니다.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딸아이의 잔소리 때문에 남편은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딸아이라서 그런지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아무튼 그런 딸아이와 전 사이좋은 친구처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얘기가 통합니다. 힘들다고 하면 어느새 뒤에 와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냉장고에다 작은 메모지를 붙여놓기도 하고, 핸드폰 충전기 뒤에도 무어라 메모지를 붙여 두기도 합니다.

‘엄마,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메모지가 정말 군데군데 붙어 있어 더 힘을 줍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지금 딸아이가 없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아차, 정신을 차립니다.

어릴 적, 전 어머니의 정다운 딸이 되질 못했습니다. 늘 아버지 편에서 어머니를 외면하면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나 말씀은 모두가 옳은 것이라 여겼고, 어머니는 늘 그런 아버지 밑에 고분고분한 사람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한번도 어머니의 편에 서서 어머니의 외로움을 담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다른 친구들 어머니보다도 더 늙어 보이는 어머니를 오히려 원망했습니다. 그저 일밖에 모르는 분, 말을 해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분으로만 여겼던 그 시절이 너무 원망스러워집니다.

제게 있어 딸아이가 행복을 나누는 친구라면 어머니에게 있어 전 어떤 딸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철이 들면서 결혼해 딸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진정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요즘이지만 제대로 딸 노릇 한번 하지 못한 것에 가슴아파옵니다.

지금에라도 열심히 사랑하고, 어머니의 편에 서서 이해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렇게 맞추어가려 하지만 조금은 어색하고 더 발전적이지 못하고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외로웠을 어머니의 마음을 느낍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아이를 사랑하듯 저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아직까지 전해주려 하는 어머니의 그 사랑을 저 역시 사랑합니다.

2003년을 보내며, 오늘은 어머니를 찾아가서 행복을 전해주는 친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밝은 새해엔 늘 웃음을 전해주는 딸로서 그 역할에 충실해야겠습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우리 해인이가 보다 더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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