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해를 가슴에 품으며

뉴질랜드에서 해맞이로 한 해를 열었습니다

등록 2004.01.01 04:52수정 2004.01.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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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르릉, 찌르르릉. 새벽 5시. 평소 같으면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자명종 시계 종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아내와 딸아이를 깨우고 외출 준비를 서두릅니다. 지난 토요일에 가진 첫 가족회의에서 새해 첫 날을 해맞이로 시작하기로 했거든요.

오클랜드의 동쪽 지역에 있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까지는 차로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구경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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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생각해 보니,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때도 새해 첫날을 해맞이로 시작한 적은 없더군요. 동해안 낙산의 바닷가나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에서 해돋이를 구경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것은 새해 첫 날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갑신년 새해는 해맞이로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5시 30분쯤 집에서 출발, 15분을 달려 우리가 해맞이를 할 뮤직 포인트(Musick Point)로 연결되는 입구의 문 앞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바닷가로 돌출해 있는 절벽인 뮤직 포인트는 그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평소 아내와 함께 자주 가곤 했던 드라이브 코스인데, 새벽에 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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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받으며 푸른 잔디밭이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길을 걸어가는 기분은 몹시도 상쾌했습니다. 새벽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있는 새들의 요란스런 수다도 즐겁게만 들렸습니다.

마침내 눈앞이 확 트인 멋진 전망 지점을 발견해서 그리로 걸어가고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되돌아 나오고 있더군요. 가까이 마주치자 나는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왜 돌아가세요? 해뜨는 거 보러 오신 것 아닌가요?”

딸아이보다 조금 커 보이는 아이들 두 명과 함께 온 그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벌써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하늘은 벌써 환하게 밝았는데, 해가 뜨는 기미는 영 안보여서 그냥 돌아가려고 그런다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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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그래서 저는 어제 신문에서 확인한 해뜨는 시간을 알려주었지요. 오클랜드의 해뜨는 시간이 6시 4분이니 이제 10분이 남았을 뿐이라고요.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해돋이를 기다렸습니다. 그곳에는 그들과 우리 가족들 외에는 없더군요.

6시가 되자 바다 저편 수평선에 길게 가로 놓여있는 섬의 중심부가 발그레한 것이 마치 섬이 꾸는 꿈을 엿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 해가 막 떠오르면 새해 소원을 큰 소리로 말해. 그래야 소원이 이루어진대.”

이윽고 새해 첫 해가 섬이 꾸는 꿈속에서 빠져나와 그 눈부신 황금빛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큰 소리로 소원을 말해야 할 아이들이 조용합니다. 다들 '와' 하고 탄성만 지를 뿐 그 누구도 소원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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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나라이니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의 첫 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감격이 소원 대신에 말을 잊게 하는 탄성이 되어 나온 것이지요.

나도 소원을 말하는 대신, 고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새해에 어김없이 얼굴을 맞대고 나눴을 새해 인사를 지난 3년 동안 그들과 나누지 못했으니까요.

마침내 완전히 떠오른 해가 바다에 황금빛으로 길게 물길을 만듭니다. 갑신년 새해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 물길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이 힘찹니다. IMF 때보다도 훨씬 힘들고 어려웠다는 지난 한 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는 듯이 새는 하늘을 힘차게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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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마음의 반쯤은 고국에 두고 살아가는 이곳의 교민들에게도 새해는 저 황금빛 물길처럼 다가오기를 빌면서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돌아오기 전에 우리와 함께 해맞이를 한 그 아주머니와 두 아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새해 첫 날입니다. 한국보다 4시간이 빠른 이곳 뉴질랜드에서 맞이한 새해 첫 해맞이를 한국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전해드리면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새해 첫 날입니다. 한국보다 4시간이 빠른 이곳 뉴질랜드에서 맞이한 새해 첫 해맞이를 한국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전해드리면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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