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라면을 먹는 사람들

2004년 1월 1일 지리산 노고단 풍경

등록 2004.01.01 16:27수정 2004.01.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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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연인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연인 ⓒ 박상규


사람들은 새해 첫날 첫 식사로 무엇을 가장 많이 먹을까.

a 결혼 12주년을 맞아 지리산을 찾은 부부

결혼 12주년을 맞아 지리산을 찾은 부부 ⓒ 박상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아침이면 온 가족이 모여 흰 떡국을 먹는 게 일반적이다. 굳이 떡국이 아니더라도 새해 첫 식사는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긴 음식을 먹고 싶기 마련이다.

a 젊은 연인의 사랑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젊은 연인의 사랑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 박상규


새해 첫 식사로 라면을 먹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 달가운 음식은 아니지만 라면 한 그릇으로 새해를 웃으며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지리산 노고단을 찾은 사람들이다.

a 가평에서 온 젊은 농부 조성근씨

가평에서 온 젊은 농부 조성근씨 ⓒ 박상규


2004년 1월 1일 노고단에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새벽부터 오른 사람들은 모두들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비록 짙은 구름과 안개로 지리산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보지 못했지만, 새해 첫 식사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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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라면 한 그릇으로 몸도 녹이고 배도 채운다

라면 한 그릇으로 몸도 녹이고 배도 채운다 ⓒ 박상규


평소 하루 20-30개 팔리던 컵라면이 오늘(1일) 오전에만 700개가 넘게 팔렸으며,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노고단 산장 관계자는 밝혔다. 노고단 산장 취사장에는 라면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주변에는 라면의 구수한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a 노고단은 라면 향기로 가득하다

노고단은 라면 향기로 가득하다 ⓒ 박상규


새해 첫날 첫 번째 식사로 라면을 먹는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사람들은 저마다 그런 '기막힌' 사실을 몰랐다며 웃음을 띠었다. 결혼 12주년을 맞이해 노고단에 오른 정순태(43)·강석순(39) 부부는 라면을 다정하게 먹으며, "새해에도 술술 맛있게 넘어가는 라면처럼 달콤한 부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a 아이들도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도 맛있게 먹는다 ⓒ 박상규


똑같은 라면을 먹고 있는 취사장 풍경 속에서도 유독 다정 다감하고 더욱 맛있게 먹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젊은 연인들이다. 이들은 서로 뜨거운 라면을 먹여주기도 하는 애정을 과시해 기자는 물론이고 노고단을 찾은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a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 ⓒ 박상규


곧 결혼을 하게 될 애인과 함께 경기도 가평에서 온 젊은 농부 조성근(32)씨는, "평소에 라면은 거의 먹지 않는데 지리산에서 먹으니 이상하게 맛있다"며 새해 첫 식사를 라면으로 한 자신이 재미있다며 웃었다.

a 아주머니들의 웃음이 경쾌하다

아주머니들의 웃음이 경쾌하다 ⓒ 박상규


2004년 1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는 사람의 행렬과 라면의 향기가 끊기지 않고 있다. 한 그릇의 라면에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가 끊기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의 '오버'의 끝은 어디인가
밤 11시에 지리산 노고단에 오른 사연

도보여행 중인 난 원래 지리산 노고단이 아닌 구례의 작은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31일 저녁 <오마이뉴스> 편집부로부터 새해맞이 풍경을 전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난 그야말로 '오버'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배낭도 없이 옷도 부실하게 입고 손전등에 의지해 캄캄한 지리산에 올랐다. 오직 노트북 하나 들고 오르는 지리산에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발이 휘날렸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산길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하며 '오버'하는 나를 자책했다.

노고단 산장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소식을 전한 후 추위에 떨며 '오버'한 내가 참 웃겨 한동안 웃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전화와 내 '오버'가 결합해서 난 결국 노고단 산장에서 노트북 음악을 들으며 서른살을 맞이했다.

많이 추웠는데, 우연히 지리산 종주를 하는 친구녀석을 만나 털모자와 털장갑 마저 빼앗겼다. 그래도 지리산에서 새해를 맞게 되어 기분은 유쾌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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