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고 편지 쓰는 아버지

[아버지 문화 바로잡자] ⑦ 아들에게, 딸에게, 아내에게...

등록 2004.01.02 14:34수정 2004.01.0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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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좋은 대화의 방법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리고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평소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편지만큼 좋은 수단이 있을 수 있을까.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이 아들 바다에게, 오석봉 부산YMCA 좋은 아버지모임 회원이 아내에게 새해에 쓰는 편지를 소개한다.

청년이 된 아들 ‘바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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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옥

사랑하는 우리 바다에게

바다야 먼저, 합격을 축하한다. 이제 네가 대학생이 되는구나. 애썼다. 그리고 지난 부부 송년 모임 때, 집 치우고 유리창 닦고 엄마·누나와 함께 부엌에 꼬박 붙어 서서 음식 만들고 나르느라 고생한 것,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구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감동했다고들 하셨지만 무엇보다 내가 너무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단다.

그동안 너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못 나누지 못한 점, 그리고 너의 의견을 얘기하고 네 주장을 펴는 것을 버릇없이 말대꾸한다고 오해한 점은 아빠가 사과하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식도 흥분하고 화낼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한 것 같구나.

이제는 나보다 키가 더 커 헬스클럽으로 운동하러 갈 때에는 네가 아빠의 보호자처럼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아빠 옷 좀 빌려달라고 부탁할 때는 이제 내 아들이 커서 옷도 나눠 입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 무엇보다 기쁘단다.

독수리 타법을 아직도 못 벗어나, 자주 네 신세를 져야할 때, 손재주가 없어 뭘 고치는 것도 네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미안한 한편으론 자식 키워 놓으니 좋은 것도 많다는 대견스러움에 즐겁기도 하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없는 용돈에 아빠 운동화까지 사주다니, 고맙구나 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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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이제 대학생이 되는 너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사람이 진정한 성인인지 그리고 어른이 되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를 명심했으면 하는 거란다. 이제까지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나 성적, 컴퓨터와 게임 같은 것으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오갔다면 이제는 술과 귀가시간, 여전히 부족한 용돈과 이성교제 같은 문제로 입씨름을 벌일 일이 생기겠지.

언젠가는 우리 품을 떠날 너이기에 언젠가는 모든 것을 네 결정에 맡기겠지만 어떤 것은 아직도 엄마, 아빠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한다.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이제 어른 못지 않지만 심리적, 사회적으로 법적, 도덕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네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네 주장을 펴고 너의 권리를 강조하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만 명심해주렴.


바다야, 새해의 해가 떠올랐다. 2004년은 너에게 유난히 중요하고 의미 깊은 365일이 되겠지? 네 인생에 있어서 둘도 없는 황금기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다. 그 365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5년 후, 10년 후의 네 모습을 그려보며 밤 새워 고민해 보아라.

바다야, 오늘은 문득 네 아빠의 아버지,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내가 고2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막내아들의 술 한 잔을 못 받아보시고 돌아가신 셈이지, 바다야, 대학 들어가면 아빠와 함께 술도 한잔 나누자. 그리고 이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친구 같은 아빠와 아들로서, 매일매일 성장하는 사람이 되자.

바다야, 나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마.
새해 복 듬뿍 받으렴.

사랑하는 아빠가


강학중 소장은…㈜대교 대표이사를 역임하다 2000년 1월부터 한국가정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 (사)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감사와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엄마·아내로 살아온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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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옥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당신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펜을 들었습니다.

엊그제 지나가 버린 우리의 결혼 11주년 기념일…. 둘째놈 재롱잔치를 핑계삼아 장미꽃 11송이를 당신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내 모습이 싫었지만, 당신이 기쁘게 받아주어 고마웠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사랑하는 당신과 우리의 분신, 경이와 준이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결혼을 반대하시던 어른들을 설득하는 일을 포함해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된 이후에 당신이 나와 아이들에게 베푼 사랑에 비하면 내 사랑은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결혼 직후 1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할 때도 당신은 언제나 학교에선 좋은 선생님으로 인정받았고, 가정에선 좋은 엄마가 될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요.

내가 교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맞벌이를 시작한 후 오늘까지 당신은 억척스럽게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잘 소화한 훌륭한 배우였습니다. 기나긴 ‘인생극장’에서 맡겨진 저마다의 배역에 따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야만 하는 단막극인 까닭에 어설픈 내 연기로 인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연습 기회마저 없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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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둘째를 낳고 겪었던 아픈 기억이 특히 잊혀지질 않는군요. 둘째까지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낳아 퇴원했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 당신과 둘째가 갑자기 심하게 아파 119구급차까지 불러 응급실에 재입원한 후 완치될 때까지 신은 내게 많은 고통과 더불어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주셨답니다.

특히 황달이 심해 신생아실 인큐베이터 속에서 삶에 대한 끈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던 아이 상태가 악화되어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아픈 당신과 날 불러놓고 최악의 경우의 예까지 들어가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낮에는 고3 담임으로서 학생들과 정신 없이 보내고, 밤엔 아픈 당신의 병실에서 당신과 둘째의 완쾌를 기도하며 지새웠던 날이 두 달 동안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당신과 둘째가 건강을 되찾게 되어 퇴원하던 날, 당신의 두 손을 잡은 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왜 그토록 참을 수 없었는지….

IMF로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그 시절 부산 YMCA에 다녔던 큰아이 때문에 결성된 ‘좋은 아버지 모임’은 부족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밖에서 성공한 아버지보다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가 됩시다!’라는 구호 아래 해마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가족행사를 해오면서 내 자신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한 달에 한번씩 당신의 요리실습 후에 맛보는 영양 만점, 사랑 만점의 요리를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서 언제나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당신이야말로 좋은 엄마, 착한 아내지만, 난 여전히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기엔 부족한 점이 많군요.

오늘따라 당신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답니다.
“여보∼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오.”

오석봉 교사는…부산예문여고(화학)에 재직중이며 1999년부터 ‘부산YMCA 좋은 아버지모임(http://father.ce.ro)’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과학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인터넷사이트 ‘오석봉의 에피소드 과학사(http://inepisode.com.ne.kr/)’를 운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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