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이다

[시와 함께 살다1] 새해에는 높이 날기보다는 낮게 내리겠습니다

등록 2004.01.02 15:42수정 2004.01.0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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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이다


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이다.

잔디밭에 내려앉아
풀잎 사이에 숨은 벌레들을
열심히 쪼고 있는 새의
저 가느다란 다리에 실린
생명의 무게!

날개는 날아오름으로써
그 무게를 벗어나지만
다리는 땅을 딛고
그 무게를 지탱한다.

그러니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개를
부러워 말라.

새들을 살리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정철용 시 "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이다" 전문, 200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날을 가족들과 함께 해맞이로 시작하고 집에 돌아와 올 한 해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년처럼 그냥 작심삼일로 그칠 결심일랑은 아예 하지 말아야 되겠지요.

체중 감량의 목표나 규칙적인 새벽 운동 계획처럼 매년 되풀이되었지만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새해 결심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일년 내내 게으름 부리다가 신춘문예 앞두고서야 허둥지둥 반짝 준비해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원고를 보내는 허황된 명예의 추구도 이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올 한 해를 살아갈지 큰 밑그림으로 그려보고, 그 밑그림 위에 하루 하루가 제각기 나름대로의 표정과 색채를 지닐 수 있도록 하나씩 공들여 색칠해 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a 하늘을 나는 갈매기. 새의 긴 날개도 그 아래 다소곳이 모은 가느다란 두 다리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 새의 긴 날개도 그 아래 다소곳이 모은 가느다란 두 다리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 정철용

괜한 욕심으로 닿지도 못할 높은 곳에 목표를 세워 놓고 무모한 날갯짓을 하다가 1주일도 안되어 추락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요? 몸은 따라 주지 않는데 마음만 앞서, 이루지도 못할 꿈을 세워 놓고 그것이 좌절되자 우울해 했던 것이 어디 작년뿐이겠어요?

흔히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학문이나 정신의 비상에나 해당되는 일이지 1년의 삶의 계획을 세우는 자리에서는 썩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새들의 생태를 살펴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력이 아주 좋은 새들이 아니라면, 높이 나는 새는 굶어죽기 십상이지요.

뉴질랜드에서 살다보니 여러 가지 종류의 새들을 아주 쉽게 만나게 됩니다. 참새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심에까지 날아들어 가로등에 떡하니 앉아 있는 갈매기의 모습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잔디를 깎아 놓으면 어김없이 내려와 짧아진 잔디밭에 드러난 벌레들을 콕콕 쪼아대는 새들은 검은지빠귀들입니다.

한국의 까치와는 조금 모습이 다른 이곳 까치도 눈에 잘 띄고, 살짝 치켜든 귀여운 꼬리 때문에 '부채꼬리(fantail)'라고 불리는 작은 새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반짝거리는 무지개 빛 우단을 곱게 차려 입은 듯한 뉴질랜드 토종새 투이(tui)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입니다.

주택가 산책길을 걷다 보면 연못에서 올라온 청둥오리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쫓아오기도 하고 이상한 울음소리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놓아 기르는 공작새들도 가끔씩은 만날 수 있습니다. 다리가 잘 발달된 경계심 많은 뉴질랜드 새 푸케코(pukeko)도 보입니다.

a 가로등 위에서의 휴식. 하늘을 나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어서 때때로 새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가로등 위에서의 휴식. 하늘을 나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어서 때때로 새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 정철용

이곳에 살면서 이처럼 여러 가지 새들을 가깝게 보게 되면서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라는 사실이지요.

바닷가에서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몰려드는데, 그들이 모래밭에 흩어진 그 먹이를 쪼아 먹기 위해서는 긴 날개가 아니라 튼튼한 다리가 필요합니다.

가끔씩 다리 하나를 다친 갈매기들도 보았는데, 그런 갈매기들은 늘 뒷전이 되더군요. 그런 갈매기들에게는 아무리 먹이를 던져주어도 소용없습니다. 양쪽 다리가 모두 성한 갈매기들이 달려들어 먹이를 중간에서 다 가로채기 때문이지요.

잔디밭에 내려 앉아 지렁이나 작은 벌레들을 쪼고 있는 검은지빠귀 같은 새들도 다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먹이를 쉽게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새들의 날개만 부러워할 뿐 그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이는 다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분명 날개가 필요할 테지만, 그 날아오르는 힘의 근원인 에너지는 다리가 없이는 확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립니다.

a 하늘보다 땅이 더 친숙한 푸케코의 튼튼한 다리. 그렇다고 날개를 아주 접은 것은 아니다.

하늘보다 땅이 더 친숙한 푸케코의 튼튼한 다리. 그렇다고 날개를 아주 접은 것은 아니다. ⓒ 정철용

나도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배경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새의 날개만 보았지, 그 날개 아래 숨기고 있는 다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은 생각도 안한 채, 저 높은 하늘만 바라보고 무모한 날갯짓을 하곤 했지요.

작심삼일(作心三日)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입니다. 물론 높이 날아갈 수 있는 날개도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날개가 없을 경우에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kiwi)처럼 멸종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요. 꿈이 없는 사람은 날개가 퇴화된 키위의 운명과 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날갯짓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다리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해 우선 우리는 땅을 딛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부터 튼튼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지금, 나는 높이 날기보다는 낮게 내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새들을 살리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이듯이, 나의 일년을 살리는 것은 저 하늘의 흰 구름이 아니라 착실하게 밟아나가는 이 검은 땅 위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시 한 편에 제 삶의 이야기나 생각을 담은 글들을 쭉 이어서 써왔는데, 새해부터는 <시와 함께 살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읽었던 시집 속의 좋은 시뿐만 아니라 직접 제가 쓴 시들도 가끔씩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시 한 편에 제 삶의 이야기나 생각을 담은 글들을 쭉 이어서 써왔는데, 새해부터는 <시와 함께 살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읽었던 시집 속의 좋은 시뿐만 아니라 직접 제가 쓴 시들도 가끔씩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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