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 조병우 선생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정홍철
대책위원회는 구인사에서 천도제를 집도했으며 송광호 의원(한나라당,제천ㆍ단양)과 이건표 단양군수와 유족 분향이 이어졌다. 추도식은 참사개요 및 경과보고와 함께 이 군수, 송 의원, 채의진 상임대표(전국 유족회)의 추도사로 무고하게 숨져간 영혼을 위로했다.
또한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통합특별법’에 대한 경과보고와 함께 추모시를 낭독하고 진혼곡이 불려졌다. 이어 위령제 참석자들은 곡계굴 내부를 답사했다.
증언에 따르면 “1951년 1월 20일 오전 10시경 느티마을 주민 등 피난민 400여명이 은거하고 있던 곡계굴에 연합군 공군기로 추정되는 5~6회 저공 정찰 비행 후 약10분 뒤 서쪽으로부터 4대의 폭격기가 뒤 따라와 굴 입구에 기름통을 투하하고 약30분 동안 수 천발의 기총사격을 가하여 삽시간에 마을 집들은 불타 온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굴 입구는 불바다가 되었다. 이로 인해 370여명의 양민이 몰살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