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누워 책을 읽어요

[전시]<사람을 닮은 책 책을 닮은 사람>

등록 2004.01.05 00:46수정 2004.01.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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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20년도 더 된 영한사전이 있다. 표지가 너덜거려 파란 테이프까지 붙였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손때가 묻어서 그런지 흠뻑 정이 들었다.

난 단어를 찾을 때마다 항상 바를 '正'자 표시를 해두었다. 어떤 단어에는 '正'자가 무려 5개가 있는 것도 있다. 그 단어만 무려 25번이나 찾았다는 얘기다. 한 획씩 그려 넣을 때마다 내 단단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원망을 했다. 그런 사전이었으니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책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이 있어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책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이 있어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이종원

누구나 이렇게 추억이 깃든 책 한 권씩은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은 참 소중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컴퓨터나 인터넷이 책을 대신하면서 예전의 추억거리들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 추억거리를 끄집어내고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전시회가 하나 있다. 금호미술관에서 한창 전시중인 <사람을 닮은책 책을 닮은 사람>이다.

혹시 대중 목욕탕에서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 보라. 참 재미있는 공상이 아닐까? 그 공상이 미술관에서 실현된다.

망한 책방에서 가져온 기억
망한 책방에서 가져온 기억이종원

'망한 책방에서 가져온 기억'이란 작품이다. 우리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방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들이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해 책 한 권씩 거저 집어 가게 했다.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실제 망한 책방의 책을 통채로 트럭에 싣고 왔다고 한다.

"좋은 책들은 먼저 온 관람객들이 다 집어 갔겠네요."
"잘 뒤지면 읽을 만한 책이 많습니다."
"책 다 집어가서 하나도 남지 않으면 어쩌지요?"
"글쎄요. 망한 책방 찾으러 다녀하는데…. 그런 책방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소파에 시가 그려져 있다.
소파에 시가 그려져 있다.이종원

예쁘장한 소파에 책에 관련된 시를 그려 넣었다. 누구나 책 읽다가 잠든 적이 있을 것이다.

'책과 내가 하나가 된다.
물론 의자와 내가 하나가 되면서 말이다.
그러니 책은 나이며 잠이며 의자이다.'



제목이 '숨쉬는 책' 이다. 책에 물이 담겨져 있고 풀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책에는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제목이 '숨쉬는 책' 이다. 책에 물이 담겨져 있고 풀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책에는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이종원

책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오아시스엔 물 대신에 책을 넣어 두었다. 타는 갈증을 책으로 풀어 보라는 의미란다.
책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오아시스엔 물 대신에 책을 넣어 두었다. 타는 갈증을 책으로 풀어 보라는 의미란다.이종원

이 곳의 책은 국내 굴지의 출판사에서 5천여 권의 책을 기증 받았다고 한다.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재기증할 예정이란다.

하얀 벽지는 아이들 몫이다.  이것 역시 글쓰는 행위이며 창작이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화책의 글자를 지우고 자신이 직접 대사를 적어 넣을 수 있는 코너도 있다.
하얀 벽지는 아이들 몫이다. 이것 역시 글쓰는 행위이며 창작이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화책의 글자를 지우고 자신이 직접 대사를 적어 넣을 수 있는 코너도 있다.이종원

7살 아이가 만든 책이다. 정형화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자유 분방한 생각들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멋진 책인가?
7살 아이가 만든 책이다. 정형화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자유 분방한 생각들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멋진 책인가?이종원

제목이 '상속받지 못한 자'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제목이 '상속받지 못한 자'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이종원

계란과 계란판에도 깨알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글이 새겨져 있어 망원경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책장으로 로봇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하전시관의 테마는  '물 속에 지은 도서관'이다. 대중목욕탕을 만들어 놓았다. 탕엔 물이 가득 찼고,  욕조가 있고, 때를 미는 침대도 놓여 있다. 어디든지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책을 읽으면 그만이다.
지하전시관의 테마는 '물 속에 지은 도서관'이다. 대중목욕탕을 만들어 놓았다. 탕엔 물이 가득 찼고, 욕조가 있고, 때를 미는 침대도 놓여 있다. 어디든지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책을 읽으면 그만이다.이종원

이 전시를 기획한 김지영씨는 "책을 꼭 학교나 도서관에서 읽으란 법이 없지요. 꼭 앉아서 읽으라는 규칙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이지만 가장 책을 접하기 힘든 공간인 목욕탕을 소재로 삼았고 그 곳에서 편안히 책을 읽으라는 의도에서 이 테마를 만들었습니다."

- 어떤 의도에서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까?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아이들이 쪼그려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아직도 책이 꼭 필요한 것을 느꼈지요. 그리고 가장 편안한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재미 있는 책잔치를 만들자는 의도에서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 관람객의 반응과 하루 관람객은?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다양한 곳에서 책읽는 기쁨을 얻어가지요. 주말에는 대략 500여 명이 찾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책 기획을 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이번 전시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이종원

팸플릿 한 구석에 적힌 글이 가슴에 남아 이 곳에 옮겨본다.

이 곳에 와서 책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책과 뒹굴어보세요. 어느 순간에 문득 책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 올 것입니다. 물론 전시회를 다 보고 나면 또 새로운 질문이 생기겠지요.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사람을 닮은책 책을 닮은 사람>

1) 전시기간: 2003.12.19- 2004. 2 .28

2) 시 간: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 11시 개관)

3) 휴 관: 매주 월요일, 설 연휴(1/21-23)

4) 관람료: 개인 5천원/단체 20인 이상 4천원

5) 장 소: 금호 미술관 (경복궁 동쪽 담장) 02) 720-5114

6) 가는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풍문여고 정문앞을 지나 백상기념관 돌담길을 따라 '란' 사진실을 끼고 삼청동 길 200m 가면 우측에 있음(주차 공간은 협소하니 차를 가져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덧붙이는 글 |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onol4

덧붙이는 글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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