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 배가 잠시 쉬고 있다느릿느릿 박철
교동에 들어와 산 지가 꼬박 7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교동에 들어와 살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예까지 오게 되었다고 대답하면 기자들은 더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내가 교동에 무슨 특별한 사명을 갖고 온 줄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교동에서 목회하고 있던 후배 윤 목사의 전화였습니다. 윤 목사가 대뜸 "형, 교동에 와서 목회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목회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만7년을 넘게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후배가 나를 불러 주어서 교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교동에 오기 바로 직전에 사실은 기존의 제도권 목회를 그만두고 처가의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같이 농사가 몸에 배지도 않고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무슨 농사꾼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내가 하도 집요하게 그 문제에 집착을 했더니 아내도 선선히 내 생각을 따라 주었습니다.
마침 처가 쪽에서 시골에 남에게 도지를 준 논과 밭이 있으니, 내 힘으로 할 만큼만 농사를 짓고 어느 정도 목에 풀 칠 할 정도가 되면 작은 수도원 공동체, 일종의 가톨릭의 피정의 집 같은 걸 하고 싶었습니다. 장인 장모께서도 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잘 될 줄 알았던 일이 어찌된 영문인지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기 다 적을 수도 없겠고 결국은 일이 틀어져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조금 허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