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편견 버려야 희망 싹틉니다

15년째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돕고 있는 근로자들

등록 2004.01.05 17:50수정 2004.01.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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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봉급으로 생활하는 공장 근로자들이 모여 15년째 꺼져 가는 소아암·백혈병 어린이의 '생명'과 그들의 소중한 '꿈'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뛰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고통받는 소아암·백혈병 어린이와 '더불어 한 세상'을 꿈꾸는 60여 직장 400여 명의 근로자 모임 '더불어 하나회'(http://www.nanura.org)다.

'더불어 하나회'는 마산과 창원 지역의 삼성중공업, 현대정공 등 30개 공장 근로자 43명으로 지난 '90년 출발한 순수 민간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후원단체다.

당시 몇몇 근로자들이 방송에 보도된 백혈병 투병 중인 딱한 어린이의 처지를 보고 작은 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첫 출발이라고 한다. 91년 3월에 백혈병 어린이 후원회로는 전국 최초로 사회단체 등록을 한 바 있으며, 지금은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산하 단체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이 먹고살기에도 힘든 월급을 쪼개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은 회비, 양말·오징어 판매수입, 치료비 마련을 위한 거리 음악회 수입 등으로 지금까지 총 227명의 소아암·백혈병 어린이에게 4억9800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해왔다.

그리고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치료에 절실히 필요한 헌혈 행사도 매년 실시하고 있는데, 지난 한 해 동안 총 26회 헌혈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했다.


'더불어 하나회' 안병익 회장(삼성중공업 근로자)
'더불어 하나회' 안병익 회장(삼성중공업 근로자)황원판
이 모임 회장은 경남 거제시 신현읍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생산부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안병익(安秉翼·43)씨. 안 회장은 현재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부회장 일도 맡아 환아를 위해 뛰고 있다.

10여 년 전 쪼들리는 가정형편 속에서도 회사로부터 받은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금 1천만원 전부를 백혈병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소아암·백혈병 치료 전문의가 없어 서울·대전·부산 등으로 '원정 치료' 가는 어려움을 겪던 경남에 전문의를 모셔 진료 공백을 해소한 주역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지난 2001년에는 백혈병 환아 보름이(당시 11세, 창원시)의 마지막 꿈인 가수 조성모씨와의 만남을 백방으로 노력해 이뤄줬을 뿐만 아니라, 지난 6월부터 전국 최초로 소아암·백혈병 환아 '인터넷 학습방'을 운영하여 학교생활에 뒤지지 않고 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등 환아의 '치료'는 물론, 환아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꿈'을 펼치도록 돕고 있다.

지난 12월 31일 기자가 창원공설운동장 안에 있는 '더불어 하나회'를 찾았을 때가 저녁 늦은 시간이지만, 6평 남짓한 조그만 사무실에는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일반인들 같으면 흔히 망년회 등으로 즐겁게 보낼 시간이지만, 안 회장과 부인 김미정씨는 환아(患兒) 지원 관련 사무와 홈페이지 관리, 방송출연 준비 등 여러 가지 협회 일을 고민하며 무척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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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장애물은 '불치병'이라는 편견

먼저, 2004년 새해 소망을 물어보았을 때 안 회장은 우선 일반인들의 소아암·백혈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소아암과 백혈병은 발견 즉시 충분한 치료를 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습니다. 새해에는 제발 소아암·백혈병이 '불치병'이라는 편견부터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죽을병에 큰 돈 들여서 뭣하나'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환아 가족들도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저조하고, 국가적인 투자가 저조한 것도 이런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백혈병 환아들의 부모들과 대화해보면 '불치병에 걸린 애에게 재산을 다 팔아 넣을 거냐'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잘못된 편견 속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애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새해에는 이들의 꺼져 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살리기에 국가·사회적으로 많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사회의 편견은, 한 백혈병 환자 어머니가 안 회장 앞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할아버지마저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치료에 많은 돈을 들이고도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 주위의 눈치 속에서도 우리 환아들의 편에서 지켜주시는 후원회 안 회장님 및 기타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경남 창원에서 혜진 엄마 드림."


'더불어 하나회'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거의 완치되어 가는 혜진이(여·12·창원) 엄마 감사편지의 일부
'더불어 하나회'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거의 완치되어 가는 혜진이(여·12·창원) 엄마 감사편지의 일부

소아암·백혈병 치료비 '전액' 보험적용 돼야

그리고, 소아암·백혈병 어린이를 위해 어떤 도움이 제일 절실한가에 대해 묻자 '치료비'를 돕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아들의 '치료비'를 돕기 위해 많은 자선단체에서 노력하지만 많은 치료비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역부족입니다. 국가의 제도적인 해결 노력이 요구됩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많은 나라들이 15세 이하 아동들의 난치병은 국가가 무료로 치료해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재정 여건과 국민건강보험료 부담 등 현실적 여건상 완전 무상 치료는 어렵더라도, 소아암·백혈병 환자의 각종 검사비, 수술비, 약품비 등을 모두 보험급여 항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최근 경남 창녕의 한 백혈병 여고생의 경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의료보호 1종' 대상자지만, 약품의 95% 정도가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어서 3개월 치료비만 무려 7100만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의료보호제도'가 환자치료에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시로 촬영해야 하는 MRI(자기공명영상)와 같은 경우도 보험 혜택이 없어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감기 등 가벼운 질환에 대한 보험 혜택은 줄이더라도,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는 중증 질환에 대한 급여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소아암·백혈병 환자의 치료비는 전액 보험 적용 되도록 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 생활에 뒤지지 않게 '공부' 돕는 것도 중요

또, 안 회장이 전국에서 최초로 지난 6월부터 초·중등 환아 '인터넷 학습방'을 운영하게된 배경을 묻자, "교육은 학생들의 '꿈'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문제이며, 학습 의욕이 높은 환아가 치료성과도 높더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환아들의 '치료'와 함께 한명 한명의 소중한 '꿈'을 강조하는 안 회장
환아들의 '치료'와 함께 한명 한명의 소중한 '꿈'을 강조하는 안 회장황원판
"치료만 하면 되지 공부는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는 그들의 '삶'이고 '꿈'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학습의욕이 높은 환아가 치료성과도 더 높은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소아암·백혈병 등으로 치료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집중 치료기간이 평균 3∼5년 이상 소요됩니다. 하지만 치료기간 동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워 또래 친구들보다 성적이 뒤떨어져 공부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칫 이것이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기도 하지요.

그래서 희망하는 환아들이 인터넷으로 부족한 학력을 보충하여 학교 공부에 정상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현재는 저희 '더불어 하나회'에서 자체적으로 인터넷 학습방을 운영할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8명의 희망학생을 대상으로 유료 인터넷 학습방 이용료 일부와 인터넷 회선 비용, 학습 교구재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터넷학습으로 부족한 점은 과목별 '학습 도우미'를 통하여 화상, 전화, 메일, 팩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있습니다. 또 2∼3개월에 한 번 정도는 학습자와 환아의 만남을 주선하여 서로의 '친밀감'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저희 단체에서 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환아 대상 '인터넷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장기적인 치료를 요하는 환아들이 총 수업일수의 1/3 이상 결석할 경우 유급이 되어 학습 기회를 놓치고,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되는 '또래 친구'를 잃게 되는 문제에 대한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소풍' 등 정서적인 지원 프로그램 필요

끝으로, 지금까지 지원했던 환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에 대해 묻자, 전국 백혈병 아동 후원회 중에서는 처음으로 '환아 마지막 소원 들어주기'로 가수 조성모씨를 만나게 해줬던 '보름'이라고 했다.

"2001년 2월 어느 날 창원의 한 환아 보호자로부터 색다른 도움을 요청 받았습니다. 보름이(당시 11세, 창원시 소답동)의 마지막 소원인데, 좋아하는 가수 조성모씨를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MBC방송국, 삼성그룹, 조성모 팬 사이트, 경남신문 게시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여 약 1개월 뒤인 3월 26일에 조성모씨가 보름이 집을 방문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3개월이 지나서 보름이는 가수가 준 인형을 꼭 안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어린아이에게 가수를 만나는 것은 소중한 '꿈'을 이루는 것이었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환자 및 가족,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소풍 나들이를 하는 이유를 묻자, "봄소풍 때 함께 갔던 아이가 가을 소풍 때 안보일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며, "병상에서 힘든 투병을 하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실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풍' 등 정서적으로 환자를 돕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소풍 후 한 환자 어머니가 안 회장께 보내온 편지를 읽어주는 것으로 대신 설명했다.

환아들의 즐거운 진해 해군사관학교 '소풍' 장면
환아들의 즐거운 진해 해군사관학교 '소풍' 장면

"안병익 회장님, 회원님 여러분께

… 이 아름다운 날에 우리 아이들을 초청하시어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루하루가, 매시간이 아이의 얼굴표정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우리의 생활입니다. 이런 저희에게 아이의 티없는 웃음이 주는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5살인 지희는 한 번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같이 어울리는 단체 놀이를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는 어렸고, 조금 커서는 병이 그 아이의 그런 자유를 속박해버렸습니다.

항상 사람이 적은 곳, 또 웬만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려는 마음에 저희 아이는 그런 놀이를 접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저희에게 그날의 소풍은 다른 세계의 한 면을 접해본 듯한 그런 상태였습니다.

…부산에서 한 지희 엄마가"


안 회장과 자원봉사자들의 병원 방문 장면
안 회장과 자원봉사자들의 병원 방문 장면

끝으로 안 회장은 "우리 사회에서 소아암·백혈병 환자는 그 수가 적고, 환자 당사자가 어려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설 수 없으며, 가족들도 표면적으로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라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많다"며, 앞으로 환아 보호자와 후원자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돕기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받을 때가 아플 때라고 한다. 매일같이 항암제 주사를 맞는 환아들의 애절한 새해 소망이 "안 아픈 주사, 부작용 없는 주사"라고 할 정도니, 매일 같이 이 주사를 달고 있는 이들의 아픔이 오죽하겠는가? 그것도 사랑하는 자녀가 이런 깊은 병에 걸려 있다면 부모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소외'되고 '무관심'해지기 쉬운 이들 고통받는 소아암·백혈병 환아들의 꺼져가는 '생명'과 소중한 '꿈'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 발벗고 뛰고있는 '더불어 하나회'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희망을 발견한다.

특히 월급으로 가족들 돌보기에도 벅찬 근로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박봉을 쪼개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나섰기에 이들의 선행이 더욱더 값지고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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