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잠겨만 있거나 열려만 있으면 가치없어요"

등록 2004.01.06 16:29수정 2004.01.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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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주일 째입니다. 2층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화장실 문을 잠궈 놓은 지 말입니다. 아마 청소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출입해서 화장실을 더럽힐 것을 염려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겠지요.


잠겨만 있는 2층 화장실문. 일주일째 사용을 못하고 있다.
잠겨만 있는 2층 화장실문. 일주일째 사용을 못하고 있다.이상호
이 때문에 2층에 세 들어 살면서 2층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늘 불편하게 1층이나 혹은 3층 화장실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1층 화장실은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1층 화장실은 아예 잠금 장치가 부숴져 있어서 큰 볼일을 볼 때에는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정 급하지 않으면 다른 곳을 이용하게 되죠.

아주머니는 2층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모두 화장실 열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짐작해서, 문을 잠그시는 아주머니의 배려가 저에게는 아예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화장실 열쇠를 받지 못한 저는 지금까지 누군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잠금장치가 고장난 1층 화장실 문.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잠금장치가 고장난 1층 화장실 문.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이상호
그렇다고 해서 늘 열려 있는 1층 화장실 문이 반가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화장실 문은 필요에 따라서 잠글 수 있어야 합니다. 매우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사용할 때만큼은 잠그는 것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늘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서야 아직도 화장실 문을 달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화장실은 문을 열어 놓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지간하면 1층 화장실을 피하지만, 상당히 다급한 경우는 이용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 문을 두 손으로 누른 상태에서 볼일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신경은 밖으로 가득 쏠려 있게 됩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화장실 문은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사용할 때에는 잠글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의 1층 화장실과 2층 화장실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모두 어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진리는 많은 세상사에도 적용되는 원리인 것 같습니다. 반도체 기술은 전기가 흘러야 할 때 흐르고, 흐르지 않을 때에는 흐르지 않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죠. 만약 지구상에 무조건 전기가 흐르기만 하는 전도체만 있거나, 아니며 무조건 전기를 흐르지 않게 하는 비전도체만 있다면 우리에게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푸른 신호가 들어오면 가고, 빨간 신호가 들어오면 멈출 수 있는 것 역시 그러한 원리이겠지요. 무조건 달리면 사고가 나고, 무조건 서 있기만 하면 교통의 흐름이 없어질 것입니다. 갈 때 가고 설 때 서기만 하면 세계에서 교통사고 1위라는 오명은 없어지겠지요.


기자들이 하지 않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해야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가집니다. 무조건 말이라고 뱉어내거나, 써야 할 말도 쓰지 않는 언론이라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만 제대로 지키는 언론들이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조·중·동이라는 용어도 없었겠죠.

국회의원들의 체포동의안 역시 사용할 때만 사용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풀어놓아야 소용이 있는 법률안이 될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법을 국회만 열리면 체포되지 않는 탈출구로 사용하니, 이것은 늘 잠겨 있는 화장실 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는 사용할 때 문을 잠글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늘 열려 있는 국회의원을 거의 뽑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사용하려고 해도 늘 잠겨져 있기만 하고, 자신들이 필요하기만 하면 언제나 열려 있기만 했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 열린 것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 사람이 사용할 동안은 사용권을 인정해 주어야 하겠지요. 그 사용권은 잠글 수 있음에서 출발합니다. 화장실 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잠금 장치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워낙 새벽에 일을 하시는지라 언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반드시 문을 그냥 열어 놓으라고 해야겠습니다. 2층 화장실은 문만 열어 놓으면 잠글 수도 있는 화장실이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는 배려만 있으면 1층 화장실에 비해서 훨씬 좋은 화장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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