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여성 인권, 사회인식 바꿔야 "

[인터뷰] 광주전남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지기 최지영씨

등록 2004.01.07 15:06수정 2004.01.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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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후

지난해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최지영(25)씨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직장으로 1월 개설예정인 광주전남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이하 쉼터)를 택했다.

대학 재학중 선후배들과 소모임을 결성해 토론과 연구활동을 통해 여성문제에 관심을 키워온 최씨는 지난해 광주전남 여성단체들이 실시한 광주지역 성매매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그때의 인연이 최씨를 쉼터로 연결시켜 줬다.

성매매 실태조사에 나선 최씨는 무엇보다도 성매매 업소의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최씨는 "한 건물 지하에 있는 이발소를 알리기 위해 그 건물에 무려 10개의 삼색등이 미친듯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쉬쉬하지만 음성적으로는 엄청난 규모를 가진 산업으로 자리잡은 성매매 문제에 대해 최씨는 "근절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직업'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인권이 철저히 유린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때문.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 사례를 접한 최씨는 특히 업주의 강요에 의한 극단적인 여성성(性)의 상실 강요를 문제로 지적했다.

"생리 중인데도 불구하고 솜으로 틀어막고 손님을 받거나 낙태수술을 받고 몸 추스를 여유도 없이 영업을 강요당했다는 증언, 손가락 하나가 절단돼 없어진 성매매 여성에게 연유를 물으니 도망쳤다가 붙잡힌 과정에서 손가락을 잃게됐다는 증언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말하는 최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최씨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인권사례는 바로 '돈의 논리'다. 최씨는 "남녀가 자유롭게 성을 주고받는 것은 찬성한다"면서 "그러나 돈이 매개가 돼 성을 사고 파는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돈이 지불된 순간 성매매 여성은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해도 좋은 상품'으로 전락해 여성의 주체적 의사를 내세울 공간이 원천봉쇄된다는 것.

최씨는 성매매 여성들을 비뚤어지게 바라보는 시각도 새해부턴 고쳐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무슨 인권침해 운운이냐'는 주장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성매매가 직업이고 여성들이 노동자라고 봐야하는데, 노동자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일을 하고 그만둘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하지만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자유가 없기 때문에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안 된다."

야간에 상근하며 쉼터를 관리하는 일을 맡은 최씨는 성매매 피해여성으로부터 구조요청이 오면 그 여성을 데려오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하는 일도 하게된다. 구조활동에는 공권력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공권력을 바라보는 최씨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실시한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일부 경찰과 업주들의 결탁을 밝히는 증언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전직 '보도방' 운전기사를 인터뷰했던 최씨는 운전기사에게서 듣고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그 아저씨가 '우리는 경찰과 연결돼서 단속을 나와도 사전에 미리 연락해주기 때문에 걸릴 염려는 별로 없다'며 '경찰과 끈이 있으니 굳이 조직폭력배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이 놀랐다"고.

최씨는 "대부분의 경찰들이 성매매 근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그러나 극히 일부의 잘못으로 공권력 전체가 파렴치범으로 매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찰은 내부의 부패한 조직원을 색출해 엄벌에 처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영씨는 성매매 문제의 원천과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씨가 지목하는 성매매 번성의 원천은 이중적 성의식과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최씨는 "남성들은 사회생활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에 가게 된다는 논리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자신의 뜻이 확고하다면 충분히 거부할 수 있고 자신의 욕구 또한 조절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에 편승해 성매매 여성 인권유린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룸살롱에 가서 술 마시고 '2차' 가는 것이 최고의 접대문화로 자리잡은 세태도 반드시 고쳐야 할 과제로 최씨는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의식에 대해 최씨는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천사형과 요부형으로 나눠 결혼상대로는 정숙한 여성을, 만나서 즐기기 위해서는 섹시함만을 우선적으로 갖춘 여성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 아니냐"면서 "아이들이 즐겨보는 동화나 집안에서 훈육하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은연중 이런 논리가 주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처럼 여성을 수단이나 객체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양성평등에 관한 올바른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사례들을 접하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고민하면 화가 날 때도 많다고 한다. "돈 때문에 성매매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말도 안되는 벌금이나 선불금, 연대보증, 심지어 카드수수료까지도 여성에게 부담지우는 업계구조 때문에 목돈도 못만지고 결국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경우를 보면 열이 오른다"고 최씨는 말했다.

최씨는 성매매 문제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우리 사회와 성구매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나라에서 할 일이 아주 많다"며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최씨는 "고민 끝에 탈출한 여성이 갈 곳이 없어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을 막기 위해서는 피해 여성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창업지원, 직업교육 그리고 재정적 지원을 하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시절, 이론적으로 접한 여성문제에 대한 지식을 사회에 나와 본격적으로 활용할 준비를 하는 최씨에게 2004년은 여러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최씨는 "직접적인 경험도 없고 아직은 여러모로 미숙한 점이 많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 할 생각"이라며 쉼터에서 맞는 새해 각오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쉼터 관련 상담 및 구조요청 062) 225-6078>

덧붙이는 글 <쉼터 관련 상담 및 구조요청 062) 225-6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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