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부자집과 당시에 보기 힘든 양변기이종원
현부자집
벌교터미널에서 산길로 올라가면 현부자네 집이 나온다. 길 양편으로는 친일의 상징으로 심었다는 벚나무들이 서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 벚나무에 대해 ‘스스로 기구함을 감내 할 수밖에 없는 사꾸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집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원을 이루고 있는 대숲이 작고 낮은 한 채의 기와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그 기와집들은 현부자네 제각과 부속 별장이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데 없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산줄기가 경사를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문득 다리 쉼이라도 해야겠다는 듯 중턱 조금 아래에다 펑퍼짐한 평지를 이루어 놓고는 다시 아래로 내리 뻗친 것이다. 그러니 그 터는 후덕한 부인네가 치마폭을 펼쳐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 올리는 형상이라는 것이었다. '
현부자네 집은 지금은 안채도 쇠락하고 문간채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수리가 한창이다. 누마루가 있는 문간채와 박석을 쌓은 기단, 문간채 앞에 배치한 연못 등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한옥을 기본 틀로 삼고 일본식을 가미한 양식이다.
마루는 조선식, 천장은 일본식이고 사방으로 둔 퇴를 따라 돌아가면 안채에 설치된 화장실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 당시엔 구경조차도 하기 힘든 양변기가 놓여있고 목욕탕까지 보였다. 건물마저 일본식을 따르고 있다.
소화의 집
| | 소설 <태백산맥>을 달달 외운다고? | | | 보성군 지역경제과장 위승환씨 | | | |
| | ▲ 위승환씨 | | | 성경을 달달 외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태백산맥>을 달달 외고 통달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이번 <태백산맥> 문학기행 안내를 맡아주신 위승환씨다. 소설 속에서 숨겨진 이야기와 작가의 진솔된 메시지까지 걸쭉한 남도사투리로 막힘 없이 풀어낸다.
소설을 너무 잘 알았기에 한 때 안기부와 경찰서에도 많이 불려 다녔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원래 <태백산맥>은 위승환씨 소설인데, 조정래씨가 대필한 것 아닙니까?"라고 농삼아 말했을까.
과거는 흘렀어도 역사와 문학은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이렇게 향토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 | | | |
'저녁 어스름과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무당 월녀의 집에 들어선 정참봉이 처마 밑에 서서 젖은 옷을 털며 비가 개이기를 기다리지만 좀체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은데다 월녀의 권유도 있고 해서 못이긴 채 양반의 체통을 접고 무당 집 방에 들게 된다.
비를 맞아 추웠던 탓인지 저녁 먹은 게 탈이 난 정참봉은 한밤중에 월녀가 풀어준 된장 물을 먹게되고, 월녀가 등을 두드려준 때문인지 트림을 하게 되어 속이 편해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밤에 월녀와 몸을 섞게 된다. 그리고는 소원대로 임신을 하게 된 월녀는 주변의 소문을 피해 멀리 남원까지 가서 몸을 풀어 딸 소화를 얻게 된 것이다.'
그 후 중풍으로 말도 못한 채 반신불수로 누워서만 사는 월녀가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딸 소화와의 사랑을 눈치채지만 끝내 '술도가 집 아들과 딸 소화의 관계'를 밝히지 못한 채 '안 돼야…'를 속으로 무수히 되뇌이며 눈을 부릅뜨고 죽어간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다.
개인의 감정이 이념과 봉건사고를 뛰어 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던 것이다. 소화의 아픔을 반영한 것일까? 집도 온데 간데 없고, 무너진 담벼락만 힘겹게 남아 있다.
진트재
'멀리로 바라보이는 벌교읍은 절로 감탄이 흘러나올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서북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어져 나간 산들과 동남쪽으로 긴 자취를 끌며 펼쳐진 들판과 포구, 그 가운데 감싸이듯 시가지는 아스라하게 멀었다. 그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의 경치'
벌교지구 계엄 사령관으로 부임하던 국군장교 심재모는 구룡쪽에서 진트재를 걸어올라 마루에 서서 벌교를 처음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진트재 터널 입구에서 안창민과 하대치가 순천행 군용열차를 기습하고 군수품과 무기를 탈취해 조계산으로 옮기는 내용이 묘사되었고, 마동리 터널은 염상진이 조성면을 기습함에 따라 심재모가 조성을 긴급 지원하기 위해 철길을 따라 병력을 지휘, 구보 행군하던 곳으로 각각 그려졌던 곳이다.
벌교역
새로운 권력이 가장 먼저 밟는 곳이 바로 벌교역이다. 국회의원, 계엄사령관, 경찰서장이 부임 할 때마다 권력의 추종자들은 그들에게 아부를 해야만 했고, 어떤 때는 민초들이 수모를 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형 염상진을 증오했기 때문에 빨갱이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깡패 염상구. 그러나 형이 죽고 시신이 경찰서에 걸렸을 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시신을 끌어내린다. 형의 시신을 거두면서 핏줄이 이념보다 진하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려, 그려, 니가 사람이다. 하먼, 느그 성인디."
형제는 달리는 기관차처럼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총부리를 겨누었다. 결국 형의 죽음으로 형제는 화해하게 된다. 이토록 남과 북의 이념적 비극을 형제의 양면을 빗댔다. 결국, 작가는 핏줄이 이념을 뛰어 넘는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