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자거라, 네 슬픔아>/마산문화문고 제공현대문학
"어려서부터 내 손이 밉고 크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여간해서는 사람들 앞에 손을 보이지 않았다. 내 손은 늘 주머니에 들어가 있거나 가방 끈 같은 걸 잡고 있었다."('손' 몇 토막)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체 중 어느 한 부위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열등하게 느껴지는 그 신체 일부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묘한 버릇도 생기가 보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 손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기더니 손의 생김새로 그 사람을 파악하려 들더니 이제는 사람이 가진 것 중에서 손이 가장 마음에 든다. 크고 밉다고 여겨 탁자 위에도 잘 올려놓지 않았던 손을 이리 부려먹으며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한다." ('손' 몇 토막)
그 열등감은 종종 까닭없는 반항과 묘한 갈등의식으로 드러나기도 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의 그 부분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처럼 신체의 일부를 보고 상대편의 속내까지 파악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열등감을 어른이 되면서 훌훌 털어내 버린다. 그리고 한때 그렇게 "밉고 크다"고 생각했던 그 '손'이 오히려 자신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때부터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부끄럽게 여겼던 그 '손'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지난 해 3월, 다섯번 째 소설집 <종소리>(오마이뉴스 2003년 3월 5일자) 를 펴낸 작가 신경숙(41)이, 국내외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진 유명 사진작가 구본창(51)의 사진을 담은 사진 에세이집 <자거라, 네 슬픔아>(현대문학)를 펴냈다.
이 책은 모두 3부에 표제작이 된 '자거라 네 슬픔아'를 포함, '저 아까운 비', '노을', '담배에 대한 생각', '피아노 배우는 남자', '묘지 앞에서의 입맞춤', '누군가 홀로', '백미러 속 풍경', '발톱이랑 숨기고' 등 36편의 축축한 산문들이 노을에 길게 드리워진 작가의 실루엣처럼 흔들리고 있다.
지난 해 5월부터 3개월 동안 <문화일보>에 '흔들리는 것을 위하여' 란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이 산문들은 모두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의문스럽고 비밀스럽기만 했던 신경숙의 물무늬 같이 자잘한 속내가 숨김없이 잘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울어도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녀는 목놓아 울었다. 울려고 바다에 나왔던가 보다. 처녀의 울음소리가 파도소리를 이기기도 했다. 배가 통통거리는 소리, 바닷물이 밀리는 소리 사이사이로 처녀의 울음소리가 계속 되었다. 우는 처녀는 바람 부는 날이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그곳의 목초지 같았다. 배가 다시 먼 바다를 돌아서 우리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우는 처녀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에서 내렸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자거라, 네 슬픔아' 몇 토막)
도시와 사람들을 피해, 자신을 유폐시키기 위해 내려간 제주도. 배삸을 함께 치른 그 처녀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간 바다. 그 바다에서 목놓아 울던 서울 처녀. 방에서 재워주겠다고 하자 "왜 울었는지 그런 거 묻지 않으면요!" 라고 말하던 처녀. 식당에 마주앉아 전복죽을 먹고 자신의 호텔에 재워준 그 처녀.
눈과 코와 입이 너무도 반듯해 얼굴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던 그 처녀. 제주도에 온 뒤 가장 깊은 잠을 잤던 그날 새벽, 처녀는 메모지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떠나고 없다. 그 순간 달겨드는 고요. 그 고요 속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르는 것들과 합쳐지는 기분을 느낀 작가는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