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서 '사인' 받고 엽기수석엔 '퇴짜' 맞고

[현장] 12일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 첫 날 풍경

등록 2004.01.12 15:04수정 2004.01.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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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당의장과 신기남 이미경 이부영 김정길 상임중앙위원들이 12일 우리당 당사에서 열린 첫 회의에 앞서 손을 모아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정동영 당의장과 신기남 이미경 이부영 김정길 상임중앙위원들이 12일 우리당 당사에서 열린 첫 회의에 앞서 손을 모아 결의를 다지고 있다.이종호
# 장면 1. '남대문 시장'으로 새 지도부 첫 회의 첫 말문을 열다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 구성 후 첫 상임중앙위원 회의가 12일 오전 10시 여의도 중앙당사 4층 상임의장실에서 열렸다. 민생현장 방문차 남대문 시장에서 막 도착하자마자 열린 회의라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입가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정동영 의장에 대한 남대문 시장 상인들의 사인 공세로 한껏 고무된 데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의 눈빛을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난 터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날 회의에는 수십명의 취재진들과 당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상임의장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외투를 맞춰 입은 5명의 새 지도부가 상임의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좋은 취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기자들의 자리 싸움이 시작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부 당직자들은 "창당 이후 이렇게 기자가 많이 몰리긴 처음인 것 같다. 정말 뭔가 되려나 보다"라고 흥겨워했다.

오전 10시 10분께 이들 새 지도부들은 '국민을 위한, 민생을 위한 개혁경쟁에서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라는 구호를 제창하며 새 지도부 첫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 5명의 새 지도부들은 '남대문 민생현장 방문'에 대한 소감을 화제로 말문을 열었다.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은 오전 남대문 현장 방문 길에 구입했던 액세서리를 회의에 참석한 당직자들에게 나눠주자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액세서리 공장이 우리 지역에 많이 있는데 최근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나갔다"며 소규모 재래산업의 산업공동화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정동영 당의장이 12일  당사에서 열린  첫 상임중앙위원회의에 앞서 이미경 중앙위원이 남대문시장 방문때 사온 액세서리를 구경하고 있다.
정동영 당의장이 12일 당사에서 열린 첫 상임중앙위원회의에 앞서 이미경 중앙위원이 남대문시장 방문때 사온 액세서리를 구경하고 있다.이종호
이에 정동영 의장은 "남대문 시장을 다녀온 소감을 먼저 얘기한 뒤 인사문제와 당 진로와 운영방안을 논의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가장 먼저 소감을 밝힌 김정길 상임중앙위원은 "내수가 어렵고 시장이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내수 경기활성화 방안을 정부 쪽에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남대문 시장 상인연합회 대표와 얘기를 해서 설연휴 전에 재래시장의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 재래시장 대표와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고 소개한 뒤 "재래시장과 관련된 법령, 시행령이 어떻게 재래시장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지 파악해 어려움을 풀어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은 "오늘 다행히도 우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정동영 의장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서 있는 모습들, 많은 기대를 건다는 말씀들, 정치를 잘 해달라, 부패정치를 끝내달라는 요구가 생계에 대한 요구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고 말했다.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우리 각자 일 잘 할테니 정치인들도 잘 좀 해 달라, 서로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 남대문 시장 꽃집 아주머니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약간의 과장을 섞은 투로 "몽골기병의 신속, 기동성을 주장하는 정동영 의장의 지휘방침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다니겠다"고 말해, 다른 위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정동영 의장은 정식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택시 기사식당, 지방대학 도서관 등 민생현장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

정 의장은 "오늘 남대문 시장에서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설 전에 전국의 대형 재래시장 대표자 회의를 소집하겠다"며 "당 정책위가 주관해서 과연 어디가 막혀있고, 어디가 가려운지, 법안과 시행령을 그 분들이 직접 살펴보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가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13일에는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택시 기사식당'을 방문하고, 청년실업과 관련 지방대학 도서관을 찾아갈 생각이라며 "우리는 싸움판 정치의 명수가 아니라 민생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현장정당, 민생정당, 경제정당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국민여러분께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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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당의장이 12일 노무현대통령의 축하인사를 전하기 위해 당사를 방문한 유인태 정무수석으로부터 축하난을 전달받고 있다.
정동영 당의장이 12일 노무현대통령의 축하인사를 전하기 위해 당사를 방문한 유인태 정무수석으로부터 축하난을 전달받고 있다.이종호
# 장면 2.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방문 "이제 집에 가서 애나 봐야지"

오전 11시 25분. 새지도부 첫회의가 끝날 무렵 예정보다 늦게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열린우리당 상임의장실을 찾았다. 새 지도부의 출범을 축하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와 축하 난을 선물하기 위함이었지만 정작 대화는 유 수석의 출마 문제로 옮아갔다.

화제 전환의 빌미는 유 수석이 먼저 제공했다. 유 수석은 정동영 신임 의장에게 대통령이 보낸 난을 선물하자마자 농반진반으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정동영 의원 보다 나이 먹은 사람을 이번에 징발할 생각하지 마라"며 이른바 청와대 수석급 인사의 '징발설'에 쐐기를 박으려 했다. 정동영 의장보다 다섯 살이나 위인 자신의 '총선 차출설'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했다.

그러자 정동영 의장이 "충북의 민심이 열화와 같이 유 수석 빨리 청와대를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출마를 부추겼고, 꼬마민주당 선배인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유 수석이 자꾸 '나는 이제 40대한테 뭘 해야하겠다'고 했는데 책임지고 내가 아직 있으니까 유 수석은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고 '엄포'를 놓으며 영입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유 수석은 손사래를 치며 "어제 TV를 보면서 이제 집에 가서 애나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며 출마 의사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오히려 유 수석은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 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가벼운 '언행'을 문제 삼으며 "비공식적으로 대통령하고 만난 것을 언론에 벌린 사람은 면회 금지를 시켜야 한다. 당에서 단단히 좀…"하고 당부했다.

다음은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들과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간의 대화록 전문이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정동영 의원 보다 나이 먹은 사람 이번에 징발할 생각하지 마라."

정동영 상임의장 "오늘 아침에 남대문 시장에 노란 점퍼를 입고 갔다. 느낀 것이 우리당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더라. TV, 신문을 본 사람도 많아서 경선 이벤트가 우리당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부영 상임중앙위원 "설 전에 주요 재래시장 상인대표들을 모시고 민심도 알고 경기동향도 알 겸 뭐가 재래시장 발전에 장애가 되는지 법령과 시행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 대해 바라는 것도 많더라."


이미경 상임중앙위원 "현실적으로 많이 나오는 얘기가 10만원권 지폐였다."

정동영 "소비 진작하려면 10만원권 지폐를 발행해야 하는데 정치인 때문에 어렵다더라."

이미경 "아니면 '차떼기'로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신기남 상임중앙위원 "정동영 의장이 들어와 더 소통이 되지 않겠나. 세대가 같지 않나. 같이 학교도 다니고."

유인태 "어제 TV를 보면서 이제 집에 가서 애나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웃음)

정동영 "그러면 여기 계신 선배들이 섭섭해 한다."

유인태 "그러면 섭섭하게 계시고…."

정동영 "나는 학교 다닐 때 유인태, 이철 선배를 따라다니다가 혼이 났다. 민청학련 지도부 아닌가. 본인은 물론 사형도 받았지만. 애꿎은 후배들 고생시키고."

유인태 "한나라당 갔을 때 공개적으로 물어보더라. 출마할 것이냐고. 엉겁결에 내 시대가 간 것 같더라고 했는데 어제 그걸 다시 확인했다. 어제 보니 (내 시대가) 진짜 갔더라."

이미경 "아니 왜 그러나."

정동영 "충북의 민심이 열화와 같이 유 수석 빨리 청와대를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유인태 "거기도 빨리 젊은 사람 찾아라. 40대로."

이미경 "청와대 안에서 정신은 가장 젊은 것 아닌가."

유인태 "어제 당에서 혹시 뭘 원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전당대회는 당적이 없기 때문에 민주당 전당대회 때 조순형 대표가 꽃다발 하나 안 보내냐는 말이 있었다. 전당대회는 안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 왜 우리당에는 보냈냐고 하기에 창당대회였다고 했다."

이부영 "유 수석이 자꾸 '나는 이제 40대한테 뭘 해야하겠다'고 했는데 책임지고 내가 아직 있으니까 유 수석은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

유인태 "형님이야 계속 계셨고. 현업에 계속 계셨으니까."

이부영 "딴소리 하지마. 유 수석 문제는 내가 챙기고 책임질테니까. 무슨 소리를 해도 제대로 듣지 마라고."


정동영 "아침에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에 전화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지도자 회의를 대통령께서 연두기자회견을 할 때 질문이 나오거나 하면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진표 부총리가 이런 말을 했다. 일자리를 위해서 대타협, 대화합을 해야 하고 이것을 정당이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정말 경제 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오늘 아침 남대문 시장을 갔는데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정말 경제정당이라는 표방에 걸맞는 알맹이를 채우도록 노력하겠다. 정무수석이 채우는데 도와달라."

유인태 "대통령도 연초부터 주로 관심이 그쪽에만 가 있는데 열린우리당에서 청와대에 와서 밥 먹고 간 사람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정치에만 관심을 쏟는 것처럼 돼 일이 잘못 꼬였다. 비공식적으로 대통령하고 만난 것을 언론에 벌린 사람은 면회 금지를 시켜야 한다. 당에서 단단히 좀…."

정동영 "청와대에서 정무수석도 정치 얘기를 하지 말고 일자리 얘기만 민생 얘기만 하면 청와대에서 나온 얘기가 전부 그쪽으로 될 것 같다."

김정길 상임중앙위원 "이제 정무수석 할 일이 없게 생겼다."

유인태 "원래 할 일이 없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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