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야산이 더욱 정겹습니다

새해 처음으로 산에 오르다

등록 2004.01.12 16:30수정 2004.01.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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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처음으로 산을 찾았습니다. 등산복 차려 입고 등산화 챙겨 신고 폼 나게 해발 천 몇 백m의 유명한 산을 오른 것이 아닙니다. 입던 옷 그냥 입고 운동화 챙겨 신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야산을 찾았습니다.


이기원
사실 알고 보면 유명한 산이 될 수도 있었는데 아깝게 된 산이지요. 바로 옆이 장릉입니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한 골짝 벗어난 산이지요. 장릉은 단종의 명성과 함께 영월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적지로 자리잡았지만 거기에서 한 골짝 벗어난 야산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 이름 없는 야산일 뿐이지요.

이름 없는 야산이란 말도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영월군에서 편찬한 "아름다운 영월의 명산"이란 책자에 의하면 발산 또는 삼각산 등산로에 포함된 산입니다. 하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은 다른 이름을 붙였습니다. 금몽암이란 암자를 산자락에 품고 있어 금몽암 뒷산이라고 부릅니다. 금강이니 태백이니 하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것도 아닌 한낱 금몽암의 뒤에 있는 산일 뿐입니다.

장릉을 에워싸고 있는 울울창창 소나무 숲이 장릉 주위에만 있으란 법 없지요. 오히려 사람들의 발길 뜸한 야산에 있는 소나무는 더욱 생기가 있습니다. 그 소나무 숲을 따라 조그만 오솔길이 나 있습니다. 그냥 운치 있고 오르기 쉬운 만만한 길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급경사를 만들어 사람들의 숨을 헐떡이게 하고, 때로는 내리막길을 마련해서 가쁜 숨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할 줄도 아는 길입니다.

이기원
넉넉한 산자락 만큼이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안합니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쉬엄쉬엄 올라가도 하산을 서둘러야 할 일이 없습니다. 오르다 힘들면 낙엽 두둑히 쌓인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긴 한숨 몰아쉬며 땀 식힐 여유도 있습니다. 무거운 배낭도 필요없고 값비싼 등산복이며 등산화도 필요 없습니다. 조그만 PET병에 시원한 물만 가득 채워 들고 올라가면 충분합니다.

이름 없는 야산을 오르면서 생각해봅니다. 이름에만 온통 시선을 빼앗기고 관심을 집중시키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를 말입니다. 물론 그 이름이 이름값을 할만한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요. 하지만 명성에 비해 알맹이가 보잘 것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름 없는 것의 의미을 느낄 수 있는 한해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것의 의미을 간직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름 없는 야산이 제게 준 교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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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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