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집 마당의 눈을 다 치우신 아버지께서는 언덕배기 큰길 입구까지 눈을 치우셨지요. 눈 치우는 소리가 차츰 멀어질 무렵 이불에서 빠져 나와 마루에 나와 서면 하얀 겨울 풍경에 말끔하게 쓸려진 마당이며 구불구불 이어진 길의 곡선이 확연히 드러나곤 했지요. 그 풍경의 끝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새 길을 열고 계셨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시골집에서 아버지를 따라 눈을 치웠습니다. 넉가래를 들고 눈을 밀었습니다. 아버지가 뒤에서 빗자루로 남은 눈을 쓸어내십니다.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보내고 어른이 된 나에게 울도 담도 없는 시골집 마당은 손바닥만한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넉가래를 들고 눈을 치우다보니 왜 그렇게 넓게만 느껴지던지요. 어느새 이마며 목덜미에는 땀방울로 흥건히 젖어들더군요.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께서는 힘들면 쉬엄쉬엄 하라면서 오히려 손동작은 빨라지십니다. 넉가래질 몇 번에 힘겨워하는 아들 녀석이 안돼 보였나 봅니다. 조금이라도 더 쓸어내서 땀 삐질삐질 흘리는 아들 녀석 힘을 덜어주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 수 없는 탓에 넉가래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넉가래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