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시루로 결혼식 부조를 한다고?

정성을 다해 콩나물을 키우던 우리 어머니

등록 2004.01.15 01:19수정 2004.01.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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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호기심이 많아 사진관을 운영하면서도 아이디어를 특허 출원해 실용화 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 사람의 아이디어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느꼈던 애로를 편하게 개선하는 실용적인 것이 많았다.


언젠가 그분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메뉴판을 새롭게 만들어 특허출원해 직접 사업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이 개발한 메뉴판은 벽에 거는 것이었다.

기존의 메뉴판은 대부분 종이에 인쇄하여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기 때문에 보기 흉했다. 하지만 그 새로운 메뉴판은 알루미늄에 금형으로 음식 이름을 새기고 사진까지 인쇄한 후 몇 개씩 세트를 구성해 걸어 놓는 방식이었다. 미관상으로도 보기가 좋았고 값도 저렴하여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초기에 사업이 잘되는 것 같았으나 몇 달 후 사업을 정리했다. 왜 그만두냐고 물었더니 한국 음식은 종류가 많기 대문에 금형에 들어가는 투자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밝은광선에 비친 깨끗한 콩나물
밝은광선에 비친 깨끗한 콩나물김훈욱
그러면서 그 분이 예로 든 것이 콩나물로 만든 음식이었다. 콩나물 국밥,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로스, 콩나물 밥, 콩나물 해장국, 콩나물 라면 등등 정말 수없이 많았다. 이것을 불고기, 갈비 등으로 확대하면 셀 수 없을 만큼 기하 급수적으로 종류가 많아져 메뉴판 제작에 들어가는 금형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여러 형태로 조리한 콩나물 반찬을 먹기 때문에 콩나물이 우리에게 유용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반찬이 아닌 음식으로도 이렇게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워했다.


겨울에 콩나물을 키우는 까닭

이처럼 콩나물의 쓰임새가 많다 보니 나의 어릴 적 겨울은 콩나물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이유가 좀 독특하다. 농촌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에 결혼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겨우내 콩나물을 키웠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연은 이랬다. 결혼 축의금으로 현금을 준비하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결혼식을 치를 집에 미리 콩나물을 한 동이를 부조하겠다고 말씀했다. 그렇게 보름 전쯤에 이야기 하고 나면 어머니는 콩나물을 키울 준비를 하셨다.

보름 전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콩나물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혼식 부조가 결정되면 어머니는 콩나물 콩을 정성스럽게 키질을 해서 먼지를 날려보내고 돌이나 벌레 먹은 콩을 골라냈다.

참고로 콩은 흰콩이라 불리는 노란콩과 파란콩, 생김새는 파란콩 같지만 파란콩보다는 작은 녹두가 있지만 모두 쓰임새가 다르다. 노랑콩은 두부를 만드는 데 쓰이고 녹두는 숙주나물로도 쓰임새가 있지만 쇠고기 국을 끓일 때 많이 쓰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콩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흰콩보다는 작고 녹두보다는 큰 콩나물 콩으로 키운 것이다.

콩나물을 키우는 정성

이렇게 정성스럽게 콩을 다듬고 나면 콩나물 시루의 바닥에 대나무 가지를 깐 후 그 위에 콩을 적당하게 깔고 위에는 대나무 잎을 곱게 덮어 준다.

대나무를 덮어 주는 것은 바가지로 물을 부을 때 콩이 이리저리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따뜻한 윗목에 물통을 놓고 그 위에 막대기를 받친 후 콩나물 시루를 놓는다.

작게 포장된 녹두
작게 포장된 녹두김훈욱
이런 다소 복잡한 준비가 끝나면 시간에 맞춰 물을 줘야 한다. 이 시간을 맞추려고 어머니는 주무시다가도 일어나 바가지로 물을 주셨다. 때문에 나는 잠결에 물 흐르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아련히 들으며 잠을 자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장에라도 가시면 시간이 되면 콩나물에 물을 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시간을 맞춰 물을 주는 것은 너무 자주 물을 주게 되면 웃자라게 되고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뿌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콩나물이 너무 웃자랄 것 같으면 밖에 두어 성장을 늦추었고 너무 햇빛을 많이 받으면 파랗게 변하기 때문에 물에 젖은 수건을 둘러 햇빛을 가렸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부조를 하기로 한 결혼식 당일 날 가장 먹기 좋은 상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잔칫날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콩나물 시루를 머리에 이고 잔치집에 전달하신 다음 하루 종일 일을 도와주고 오셨다.

이런 과정은 설날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설날에는 이렇게 키운 콩나물을 차례상에 올렸고 남는 것은 저녁에 이웃들과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해서 나눠 먹곤 했다.

"콩나물 파는 사람은 부자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우는 것이 바로 콩나물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콩나물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이 들려 온다. 콩나물을 비료를 사용하여 키운다거나 사람에게 좋지 않은 농약을 사용하다 들켰다든지 하는 말이 들릴 때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갔는데 아내가 다른 물건 값은 깎으려 들지 않으면서 콩나물 값만 무조건 깎으려 들었고 그게 먹혀 들지 않자 억지로 한 웅큼 더 집어 온 일이 있었다. 돌아오면서 값을 깎으려면 값비싼 것을 깎고 콩나물은 깎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요즘 콩나물 파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예요."

아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콩나물 장수들이 부자라는 말이 나에게는 참으로 반갑게 들렸다. 제발 그 콩나물 장수들이 몸에 나쁜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내 기억의 어머니처럼 정성스럽게 콩나물을 키워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퇴근 길에 작게 포장한 녹두를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올라 이번 설에는 숙주나물을 키워 볼까 하고 사 왔는데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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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일반 관광으로 찾기 힘든 관광지, 현지의 풍습과 전통문화 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생활정보와 현지에서의 사업과 인.허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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