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의 '꽃'이라니요?

[인터뷰]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 파출소장 이오숙씨

등록 2004.01.15 09:17수정 2004.01.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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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숙 소장은 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파출소장이다.
이오숙 소장은 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파출소장이다.이수정
“여자가 소장이니 많은 분들이 기억을 잘 하시더라고요. 기억을 잘 한다는 것은 교육 내용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많은 분들이 여성 소방관을 생소하게 느끼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저는 돈독한 팀워크 형성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전 북부 소방서 궁동 파출소 이오숙(37) 소장은 19명의 대원을 이끄는 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 파출소장이다.

유치원, 양로원 등 화재 예방 교육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그녀는 인기인이 된다. “화재를 예방하려면 난로에 불을 끄고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와 같은 교육 대상자의 수준에 맞춘 말투와 밝은 표정은 노인과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제복을 입고 길을 가다가도 “우리 유치원에 또 오세요.”, “언제 또 올거야~”라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의 인사가 쇄도한다.

약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타인의 신변을 지켜야 하는 소방관의 삶을 시작한 지난 88년에만 해도 여성 소방관은 ‘소방의 꽃’으로 불릴 만큼 보호를 받는 입장이었다. 민원 처리 및 직원 복지 업무 등의 사무가 그녀의 주된 활동이었지만 지난 2001년 소장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현장에 나가 화재진압을 진두지휘하고 각종 단체의 안전교육을 맡고 있다.

소방 교육 스케줄을 점검하는 이 소장.
소방 교육 스케줄을 점검하는 이 소장.이수정
“소방서 내에서의 사무도 중요하지만 저는 현장을 오가거나 시민들을 만나가는 활동이 더 즐거워요. 여성 소장이기에 있는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도 대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어 더욱 좋아요.”

그녀는 얼마 전 출동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쓰레기 소각 중이었고 “이렇게 쓰레기를 태우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됩니다. 앞으로 쓰레기는 봉투에 넣어 버리세요”라는 훈화로 현장을 마무리 하려던 찰나였다.


현장에 있던 술 취한 시민이 “아줌마~ 아줌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라고 반문해 온 것. 당황스럽거나 불쾌했을 법도 한 당시의 상황을 그녀는 호탕한 웃음으로 마무리 했다. 그리고 소방서로 돌아오는 길에 대원들과 한바탕 웃음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평범한 소방관으로 살아온 그녀가 불현듯 소방위 승진 시험을 보고자 마음먹은 것은 한 분야에 ‘목표를 세우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소장직도 여성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겐 돌아가는 것이 없다는 주관’은 그녀를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 만들었다.


며느리, 아내, 엄마, 소방관, 장녀 1인 5역을 담당해야만 하는 그녀에게 도전은 무모했던 것일까. 현장 활동이 거의 없어 이론만으로 공부해야 했기에 더욱 어려웠던 지난 2000년의 첫 시험은 그녀에게 고배를 안겨줬다.

이 소장의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
이 소장의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이수정
“큰 기대를 안 하고 본 시험이에요. 그런데 주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면서 위로를 해 줬는데 너무나도 창피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간은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노력하면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달려온 그녀는 이듬해 있는 시험에서는 당당히 합격점을 받았고 2001년 10월 1일부터 지금의 위치에서 대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대원들이 있기에 처음 소장으로 취임해 올 당시에는 주변에 “나이 많은 대원들이 어린 여자 소장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몰라?”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문제 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대원은 삼촌처럼, 어린 대원은 동생처럼 대했기에 대원들도 그녀가 이끄는 대로 믿고 따를 수 있었다. 대원들과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에서 가능했다.

“지금까지 잘못했던 부분보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도 제가 우리 대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직무수행에 있어 정도(定道)를 걸으면서 여성이기에 더욱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개척해 나가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장이 돼야죠. 그렇게 되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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