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품위 있고 풍요롭게 노년을 보내시는 어머니가 늘 부러웠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아버지가 물려주신 상가 건물 한 층에서 혼자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살고 계셨다. 자식들이 고기 한 근 사가면 갈비 한 짝으로 갚아주셨고, 월급쟁이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옷 해 입으라며 척척 돈을 주시는 어머니이셨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시고, 삼남매는 장지(葬地)에서 돌아와 모여 앉는다. 그들 앞에 상가 건물의 새 주인이 나타나고, 당황한 자식들은 혼란에 빠져 이리 저리 흔들린다.
잔액이 하나도 남지 않은 저금 통장에,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 옆의 낯모르는 영감님까지…. 자식들은 견디지 못하고 통장 거래 내역을 조사하게 되고, 그들 앞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복 동생이 나타난다.
자식들의 충격과 의혹, 원망 속에서 하나하나 밝혀지는 어머니의 생활. 돈은 '삼베 자루 속에 든 물 빠지듯이' 큰아들 집 평수 넓히는데, 작은 아들 주식 투자에, 딸네 가게 개업에 골고루 건너갔던 것. 다만 배우자들을 통해 어머니가 몰래하셔서 당사자들만 몰랐을 뿐이다. 아니 때로는 눈치 챘으면서도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심장병이 있어 일년에 한두 차례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도 자식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았던 어머니. 자기 약값이 무서워 보름치 약을 한 달에 나누어 드시던 어머니. 평생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해 외로웠지만 남들 앞에서 늘 금슬 좋은 부부로 행세했던 어머니. 자식들이 상처 입을까봐, 또 아버지를 원망할까봐 이복 아들의 존재마저 홀로 끌어안으신 어머니.
이제라도 자식들에게 이복 아들도, 비어버린 통장도 모두 다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권하는 동네 후배에게 어머니는 혼잣말하듯이 말씀하신다.
"돈 있을 때까지만 살지, 뭐."
자식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 수 없어 상가 건물까지 자식들 몰래 일찌감치 팔아치운 어머니는, 돈 있을 때까지만 살겠다는 그 말씀 그대로 건물을 새 주인에게 비워주기로 한 바로 전 날 세상을 떠나신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시던 동네 후배를 이모라 부르는데, 이 이모는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가진 돈 다 주고 나서 빈털터리가 돼 지금은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하며 홀로 사는 분이다. 자신의 경험을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며 돈주머니를 꽉 쥐고있으라고 충고하지만 어머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신다.
노인대학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가진 돈을 자녀들에게 언제 물려주는 게 좋을지 여쭤보면, 보통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끝까지 꼭 쥐고 있어야지, 절대 물려주면 안 돼. 물려주고 나면 늙은이는 보나마나 뒷방 차지거든."
"아니, 그래도 당장 자식 목숨이 넘어간다는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나. 어차피 줄 거라면 꼭 필요할 때 줘야 두고두고 고맙다는 말이라도 듣지."
물론 이것도 다 집 한 채라도 있고, 가진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의 이야기다. 대다수 어르신들이 물려줄 재산은커녕 자식들이 주는 얼마간의 돈으로 근근이 노년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인복지를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심심찮게 물어오신다. 노년기에 가장 중요한 돈은 어떻게 관리하는 게 제일 좋으냐고. 물론 재산 관리야 그 쪽 분야 전문가들이 있으니 내가 나설 것은 없겠고, 나는 그저 내가 어르신들과 생활하며 얻은 기본적인 원칙을 말씀드릴 뿐이다. 일찍 서둘러 물려주실 필요는 없다고.
그러면서 돈을 자식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그러기 전에 그렇게 얻어지는 관심과 사랑을 진짜 원하고 있는지 꼭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고 권한다. 여기서도 솔직한 내 본심은 '도구' 대신 '미끼'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어머니의 죽음을 먼저 보여주고, 어머니의 생활과 생각에 대한 계속되는 의문들을 이어서 배치함으로 긴장감을 유지해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미덕이 있다. 또한 정혜선, 여운계 두 연기자의 노련한 노년 연기와 양미경, 한진희, 강석우 같은 연기자들의 자연스런 역할 소화로 보는 사람이 부모와 자식의 실제 상황으로 여기게 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후회하는 자식들의 눈물에 같이 울 수 있었다.
다만 의사의 몇 마디 이야기로 아무도 몰랐던 어머니의 병원 입원 사실과 약값이 무서워 벌벌 떨었던 어머니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큰아들의 반성과 후회의 언행이 지나치게 빠르며 과장되게 느껴지고,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기만 하던 작은 아들의 반성과 후회 역시 갑자기 튀어나와 보는 사람의 속도와 맞지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점잖은 큰아들, 성격 급하고 단순한 작은 아들, 교양 있고 계산적인 큰며느리,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막하는 푼수기 있는 작은 며느리, 거기다가 처가의 재산에 욕심을 내는 사위까지, 인물의 설정이 너무 틀에 박힌 듯했다. 추리소설처럼 하나씩 더해지는 어머니의 지나간 시간에 대한 궁금증으로 긴장을 잘 유지해 나갔지만, 때론 인물들의 전형성이 그것을 깨뜨리기도 했다.
마지막 딸의 독백처럼, 어머니는 빈털터리 어머니를 모시느라 자식들이 불평하고 서로 미루는 추한 모습 보이지 않게 해주시려고 정말 그렇게 가신 것일까. 그러나 그 누가 있어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몸만 자신에게로 온 남자와 한 평생 살면서 사랑을 얻기 위해 가슴앓이를 했던 어머니는,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싫어 자식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가진 것 다 주리라 결심했지만 어디 생이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던가.
아, 그러고 보면 누구는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고, 누구는 주고 또 주어도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줄 것 없는 부모는 줄 것이 없기에 간섭할 것도 없어 자유를 주기도 하며, 주어도 사랑을 얻지 못하는 부모는 그 또한 준다는 우월감으로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니 이 얼마나 공평하며 정직한 인간사인가.
자기 몸으로 낳았으면서도 결국 짝사랑에 머무는 부모의 숙명을 담아 드라마 제목이 '짝사랑'이다. '짝사랑'을 벗어나 '사랑'에 이르려면 단 한 가지, 사랑 역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될 것을. 자식을 품어 낳고 길러도 그것을 모르는 부모가 많은 것은 역시 그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노년기의 재산 관리와 관련해 부모님 세대는 부모님 세대대로, 또 자녀 세대는 자녀 세대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만나 참으로 반갑다. 이 드라마의 녹화 테이프는 앞으로 내가 만날 노인대학 어르신들과의 이야기 마당에 귀한 교재로 쓰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SBS TV 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짝사랑〉/ 2004. 1. 16 오후 11시 05분 방송 / 전보경 작, 김경호 연출 / 출연 정혜선, 양미경, 여운계, 한진희, 강석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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